지난 4일, KDB생명 2015~2016 여자프로농구에서는 사상 유례가 없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삼성생명이 이날 KEB하나은행과 용인 홈 경기에서 52-51로 승리하며 경기를 치른 두 팀을 비롯, 경기가 없던 신한은행과 KB스타즈까지 무려 네 팀이 9승 10패를 기록하며 5할도 채 되지 않는 승률로 공동 2위에 자리한 것이다. 말 그대로 WKBL의 하향 평준화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지난 시즌까지 리그 통합 3연패를 달성한 우리은행이 9할이 넘는 승률로 선두를 달리며 독주하는 사이 중위권 4팀은 서로 물고 물리며 남은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 두 장을 두고 다투는 형국이다. 최근 들어 경기력이 상승하는 최하위 KDB생명도 이들에게는 무서운 존재다. 중위권 4팀은 서로 간의 상대 전적에도 신경이 쓰이겠지만 KDB생명이 점차 '고춧가루 부대'로 변모하고 있어 순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경기 전적만 놓고 보면 숨 막히는 접전,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를 자주 연출하고 있지만 팬들과 관계자들은 속이 쓰리다. 리그 평균 득점은 지난 시즌 대비 1.5점 이상 떨어졌고 3점 슛 성공률과 자유투 성공률도 더욱 심각하게 저하됐다. 수비농구가 득세하는 리그 환경에서 저득점 경기가 속출하고 득점원들은 한정되어 있다. 외국인 선수들과 KEB하나은행 혼혈 선수 첼시 리(센터, 186cm) 정도를 제외하면 각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은 수년간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그리고 그 선수들도 시간이 흘러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는다.

선수들의 평균 기량 하락과 만성적인 선수 부족

리그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과거보다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진다면 육성과 발굴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물론 2013~2014 시즌부터 WKBL도 프로야구나 남자프로농구(KBL)의 D리그처럼 퓨처스리그를 운영하고 있어 최소한의 선수 육성 체계는 갖추어 놓았다. 퓨처스리그 원년 MVP였던 KDB생명 김소담(센터, 186cm)을 비롯해 우리은행 이은혜(가드, 168cm) 등 여러 선수가 퓨처스리그에서 경험을 쌓고 기량을 갈고닦아 1군 무대에 진입해 좋은 활약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역사가 짧고 당장의 순위 경쟁에 목을 매야 하는 1군 무대 환경을 고려할 때 팬들의 인내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매 시즌 신인왕 경쟁에서 이른바 '중고 신인'들이 득세하는 국내 프로야구 현실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더욱 근원적인 문제로 들어가보자. 프로무대에서는 즉시 전력감이 부족하지만 유망주의 산실이 되어야 할 여고 농구에서는 절대적으로 선수 숫자가 부족하다. 작년 여고부 마지막 대회였던 제9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경기한 여고 농구부 한 팀의 인원은 6~9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우승팀이 총 6명의 선수로 구성된 박지수(현 3학년 센터, 195cm)의 분당경영고였다. 농구공을 처음 잡았을 때부터 경기 위주로만 뛰어야 하는 현실에서 프로 입문 후에도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들이 많다. 문제는 단순히 일시적인 프로리그 하향 평준화가 아닌 한국여자농구 전체 시스템의 결함이다.

시간을 거슬러 29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986년 12월의 농구대잔치 때에도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1년 전인 1985년에 3점슛 제도를 처음 실시한 이후 맨투맨 수비와 '토털 바스켓볼'이 화두가 되었다. 체력소모는 더 심해졌지만 당시 13개였던 여자 실업팀 중 10분 이상을 뛴 선수는 팀당 5~7명이 전부였다. 실업 팀 관계자들은 "쓸만한 선수가 모자란다"며 여고 졸업선수를 뽑아봤자 기본기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선수가 대부분이어서 경기에 내보내도 허수아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거의 30년 전의 일이지만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있다면 현재 프로팀 수와 당시 실업팀 숫자 정도겠지만 지금도 김천시청, 사천시청 등의 실업팀이 있고 당시엔 전무하던 대학팀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여자농구계, 중장기 발전 계획 세워야

가장 상위 무대인 여자프로농구의 하향 평준화 문제는 사실 매우 고질적이고 뿌리 깊은 한국여자농구 전체의 문제임을 농구계 전체가 절감해야 한다. 당장 국제경쟁력을 보아도 아시아권에서 항상 강적이었던 중국은 물론이고 WNBA(미국여자프로농구)까지 진출한 도카시키 라무(센터, 192cm)를 앞세운 일본에게도 추월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엘리트 체육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저변 확대 필요성은 종목에 따라 크든 작든 한국 스포츠계가 숙명처럼 여기고 풀어야할 난제인 것은 사실이나 지금부터라도 아마협회와 프로연맹이 협조하여 중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같은 겨울철 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경쟁 관계이고 큰 신장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공통점을 가진 배구계는 어떠한가. 대한배구협회는 작년 10월에 '202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남자부 고교-대학 14명의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고 지난 3일부터 '스피드배구 특별훈련'에 들어갔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겨냥해 국제경쟁력 향상과 신예 선수를 조기 발굴하기 위한 것이다.

프로배구 주체인 한국프로연맹(KOVO)은 올해로 8년째 해마다 많은 돈을 투자해 유소년 배구교실과 'KOVO컵 유소년 배구대회'를 열어 2014년에 27명, 작년에는 30명의 엘리트 선수를 배출했다. KOVO는 올해 50명까지 꿈나무 선수 발굴목표를 늘린 상태다. 대한농구협회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론 WKBL도 작년 오프시즌에 유망주 10명을 미국 로스앤젤로스로 보내 스킬 트레이닝을 받게 했다. 이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최근의 여자프로농구 하향 평준화 경향은 단순한 리그의 경기력 저하나 팬들의 재미 문제가 아니다. 한국여자농구의 미래에 명백한 적신호가 켜졌음을 뚜렷하게 인식해야 한다. 야구나 축구처럼 주말리그 활성화를 시도한다든가 하는 기본적인 발상부터 시작해서 발전방향을 토론하고 십년대계를 세운다는 목표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농구의 국제경쟁력과 프로리그 경기력은 더욱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여자농구계 전체의 각성과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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