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선, 정두리, 송아영... 이 세 여자는 '발칙'하지도, '과격'하지도 않다. 그들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들의 주장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은하선, 정두리, 송아영... 이 세 여자는 '발칙'하지도, '과격'하지도 않다. 그들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들의 주장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 SBS


'발칙하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단어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하는 짓이나 말이 매우 버릇없고 막되어 괘씸하다."

이번에는 '괘씸하다'를 찾아본다.
"남에게 예절이나 신의에 어긋난 짓을 당하여 분하고 밉살스럽다."

앞서 찾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타인, 그것도 아마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습을 묘사해놓았다.

20일 방영된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의 제목은 그래서 '구리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송 초반,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정두리씨가 카메라를 향해 직접 한 말이기도 하다.

"제목이 너무 구린 것 같아요. 아 진짜 아닌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안 볼 것 같은데, 이 프로" - 12월 20일 자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 중에서

그녀가 제목을 '구리다'고 평가한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발칙하다는 단어의 뜻을 짚어보면, 페미니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들을 '발칙하다' 규정하는 제목에 '구리다'는 반응은 어쩌면 당연하다.

제목이 구리다는 출연진의 불만에도 어쨌거나 다큐멘터리는 대중적으로 꽤 잘 알려진 페미니스트 3인(<젖은 잡지> 편집장 정두리,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 행위 예술가 송아영)을 데려다 놓고 그들의 주요 활동을 요약하여 보여준다. 여기엔 평소 페미니즘 관련 이슈에 관심이 있는 시청자라면 이미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이 많다.

여성의 욕망을 광장으로 끌어낸 세 사람

 여성운동 단체 '페멘(FEMEN)'의 시위 모습.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 화면 갈무리.

여성운동 단체 '페멘(FEMEN)'의 시위 모습. 화면 갈무리. ⓒ SBS


독립잡지 <젖은 잡지>의 편집장 정두리씨는 남성들에게는 '2014 미스 맥심 콘테스트'의 우승자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우승자의 특권인 표지 모델을 거부했다. <맥심>이 지난 9월호에서 여성 납치와 살해가 연상되는 표지와 함께 '이런 게 진짜 나쁜 남자'라며 조롱하는 투의 문구를 실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했고, 미디어를 통해서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정두리씨는 단순히 표지모델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구미호 분장을 하고 생간과 함께 사진을 찍어 이를 패러디한다. 맥심의 표지가 그랬듯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돕던 남자 제작진의 맨다리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은하선씨는 여성들의 섹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 <이기적 섹스>의 저자이다. 책에 대해 은하선씨는 "여성들이 순결 이데올로기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은하선의 오르가슴 투나잇'이라는 모임도 진행한다. 모임에 참석한 여성들은 "나는 섹스를 좋아한다", "남편과 섹스하는 것보다 자위가 더 좋다"며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앞의 두 사람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압되던 여성의 욕망을 끌어내는 작업을 한다면, 송아영씨는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사회운동을 실천하는 경우다. 그녀에게 영향을 준 건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여성운동 단체 '페멘(FEMEN)'이다. 페멘은 '여성의 무기는 가슴'이라는 기조 아래 기습적으로 상의를 벗고 '토플리스(TOPLESS)', 즉 반라 시위를 한다. 송아영씨 역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며 2014년 7월 광화문 광장에서 토플리스 시위를 했다.

박철민으로 인해 그들이 더 과격하게 보였을 뿐

 "우리는 남성중심적 시각에 익숙해져 있다"는 은하선씨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배우 박철민의 모습.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 화면 갈무리.

"우리는 남성중심적 시각에 익숙해져 있다"는 은하선씨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배우 박철민의 모습. 화면 갈무리. ⓒ SBS


제작진은 세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놓는 것으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들을 한 곳에 불러놓고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한다. 충분히 가능하고 그럴싸한 전개다. 문제는 제작진이 이 모임의 진행을 전형적인 40대 한국 남자에게 맡겼다는 점이다.

진행을 맡은 배우 박철민은 다큐멘터리 내의 발언과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페미니즘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박철민씨는 "남성 위주의 시각에 익숙해져 있다"는 은하선씨의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우리 남자들은 어떻게 하면 내 사랑하는 여자가 행복할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받아친다.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사회가 계속되었으므로 여러분들이 답답하고 꼬인 것을 인정하지만,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다"라는 발언에선 페미니스트를 '발칙하다'고 규정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보는 느낌이다. 우리는 보통 '꼬였다'는 표현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렇다고 그에게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두리씨가 만드는 <젖은 잡지>가 그 안에 포함된 선정적인 화보들로 오히려 성 상품화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박철민씨의 질문에 정두리씨가 "성 상품화가 왜 나쁘냐"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는 불가피하니 다른 시선으로(능동적으로) 하고 싶었다"고 답하자 당황한 듯 "(성 상품화) 좋지"하고 말을 얼버무린다.

제작진이 썼을 내레이션의 일부도 페미니스트를 다루겠다는 다큐멘터리엔 걸맞지 않다. 예를 들어 은하선씨를 두고는 "20대 여성이 성에 대해서 왜 이렇게 '과격한' 생각을 갖게 된 걸까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의 '여성이 남성이 원하는 섹스에 맞춰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 '여성도 자신의 욕망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당연하다. 결코 과하지도 격하지도 않다.

다큐멘터리는 페이스북 코리아의 성차별적 행보에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나선 송아영씨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페이스북 코리아가 '메갈리아' 페이지는 계속해서 삭제하면서도 여성혐오를 일삼는 '김치녀' 페이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이용자들의 문의에도 묵묵부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용인 가능한 사고방식 안에서 만들어져 한계를 지니는 결과물이다. 페미니스트는 발칙한 존재, 여성이 주체적 섹스를 말하는 것은 과격한 것으로 정의되는 것이 바로 그 한계다. 방송 말미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박철민씨의 해설이 온전히 와 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칙한 그녀들>이라는 제목을 '구리다'고 말한 정두리씨. <SBS 스페셜-발칙한 그녀들> 화면 갈무리

<발칙한 그녀들>이라는 제목을 '구리다'고 말한 정두리씨. 화면 갈무리 ⓒ SBS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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