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 속 호랑이의 모습. 한반도 전역에 분포했던 호랑이는 일제의 소탕 작전 이후 '사실상' 멸종한다.

영화 <대호> 속 호랑이의 모습. 한반도 전역에 분포했던 호랑이는 일제의 소탕 작전 이후 '사실상' 멸종한다.ⓒ New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의 2013년 1월 발표에 따르면, 휴전선 이남에서 인간을 제외하고 최상위 포식자인 동물은 담비다. 몸길이가 35에서 60㎝ 정도인 족제빗과 담비가 멧돼지·고라니 등의 대형 포유류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집단 사냥을 통해 멧돼지까지 잡아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최상위 포식자라고 해서 담비들의 운명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담비는 멸종위기 2급이다. 1급은 현재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경우이고, 2급은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다. 멸종위기 2급이 최상위 포식자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한반도 생태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짐작할 수 있다.

만약 100여 년 전이었다면, 담비 같은 동물이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만 해도 한국은 호랑이가 적지 않은 나라였다. 호랑이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약간 작고 둥근 검정무늬가 많은 표범도 적지 않은 나라였다. 그래서 담비는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그 많던 한반도 호랑이는 누가 다 죽였을까

조선총독부의 호랑이 사냥을 묘사한 최민식 주연의 영화 <대호>에도 묘사됐듯이,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했다. 그만큼 호랑이가 많았다. 경복궁 근처의 인왕산은 호랑이 산으로 유명했다. 이 영화의 대사에도 살짝 반영된 것처럼, 호랑이는 함경도에도 많고 지리산에도 많았다. 구한 말에 '사냥 투어'를 온 외국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목포에도 호랑이가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는 왕들도 겁내지 않았다. 무서운 독재자들도 호랑이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선 태종 이방원 때는 호랑이가 경복궁에 침투했고, 세조 수양대군 때는 창덕궁에 침입했으며, 연산군 때는 국가 사당인 종묘의 담을 넘었다. 백성들은 그들 철권 통치자들을 무서워했지만, 호랑이 눈에는 그저 종잇조각처럼 연약한 인간들에 불과했다.

단군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곰보다 끈기가 약해 일찌감치 환웅 곁에서 이탈했다.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우리 역사에서 일찌감치 이탈했지만, 실제의 호랑이는 산악지대가 많은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서식하며 비록 인간을 압도하지는 못했어도 변함없이 위협적 존재로 남았다.

<대호> 속의 지리산 호랑이는 일본군과의 '전투 신'에서 인상적인 위력을 보여주었다. 호랑이 한 마리가 대규모 일본군을 쓰러뜨리고 짓눌러버리는 장면은 웬만한 무협영화 이상의 느낌을 주었다. 이 장면을 보는 관객이 '인간' 편이 되기보다는 '호랑이' 편이 되기 쉬운 것은 왜일까?

영화 속 장면처럼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한국인의 실제 삶 속에서 호랑이는 변함없이 위협적인 존재였다. 일례로 영조 10년 9월 30일 자(양력 1734년 10월 26일 자) <영조실록>에 따르면, 1734년 여름과 가을에 전국적으로 호랑이가 횡행하는 바람에 이에 관한 지방관청의 보고서가 끊임없이 한양에 올라왔다고 한다. 몇 달 사이에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만 해도 무려 140명이었다. 이런 기록은 실록에서 흔히 등장한다.

그런데 그렇게 위협적이고 그렇게 많았던 호랑이들이 100여 년 전부터 이 땅에서 갑자기 급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한반도 호랑이는 사실상 멸종 상태에 들어갔다. 이렇게 된 데는 일본 지배의 영향이 컸다.

 영화 <대호>의 한 장면. 실제 역사에서도, 일제는 군 병력과 조선 사냥꾼을 앞세워 조선의 호랑이들을 소탕했다.

영화 <대호>의 한 장면. 실제 역사에서도, 일제는 군 병력과 조선 사냥꾼을 앞세워 조선의 호랑이들을 소탕했다.ⓒ New


<대호>에서는 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총독부 경상남도장관의 비위를 맞추고자 일본군이 조선인 포수대를 동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군은 지리산 호랑이 중의 두목인 '지리산 산군(山君)'의 가죽을 노린다. 조선인 포수대로 여의치 않아 천만덕(최민식 분)이라는 전설적 사냥꾼을 영입하려 하지만, 천만덕은 "산군님은 건드리는 법이 아니다"라며 냉정히 거절한다.

결국, 일본군 특수부대가 마치 전쟁이라도 벌이듯 지리산 산군 사냥에 나서는 상황까지 초래된다. 일본군은 조선 독립군이라도 토벌하는 것 같은 비장감을 풍기며 지리산 호랑이에 대한 진압 작전을 벌인다.

제국주의의 닮은 꼴, 버펄로 학살한 미제=호랑이 사냥한 일제?

일본이 대규모 부대까지 동원해 전쟁 수준의 사냥을 했다는 것은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조선 호랑이를 멸종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이 점은 총독부가 조선인의 총기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한 동기에서도 나타난다.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데 이어 1907년 7월 31일 군대해산 조칙을 내린 지 1개월 보름 뒤인 그해 9월 3일,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제정하여 조선인의 총기 소지를 금지했다. 이렇게 조선의 군인과 민간인을 완전히 무장 해제한 상태에서 일본은 1910년에 조선의 국권을 강탈했다.

그랬던 일본이 6년 뒤에 예외 조치를 발동한다. 1913년 9월이다. 이때 총독부는 '해수 구제(害獸驅除)에 관한 건'이라는 통지를 헌병대와 경찰서에 하달했다. 이것은 호랑이 같은 사나운 짐승을 제거하는 데 협력하겠다는 조선인에게는 총기와 탄약을 빌려주라는 지침이었다.

조선인 포수들의 현장 지식을 활용하지 않고는 호랑이를 없애버릴 수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이이제이'를 연상시키듯이, 조선인 포수들을 앞세워 조선 호랑이의 씨를 말려버릴 요량이었다.

그런 시도의 결과로 총독부는 조선 땅에서 호랑이 개체 수를 급감 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반도 호랑이를 사실상 멸종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상 멸종'이란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그 후로 호랑이가 출현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야생생물 탐험가로서 한국 호랑이의 멸종 과정을 추적한 일본인 엔도 키미오는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책에서 호랑이의 멸종 원인에 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몇 년을 찾고 찾은 결론은, 바로 일본의 침략이 이 나라의 호랑이 멸종에 깊이깊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산신으로 숭배해온 이 나라에 많은 일본인이 신식의 연발총과 군총(軍銃)을 들고 밀어닥쳐 메이지 후반(1897~1911년)부터 다이쇼(1912~26년)에 걸쳐서 금세 호랑이를 멸종시켜 버렸다."

물론 총독부가 조선 호랑이를 멸종시키겠다며 노골적이고 공개적으로 떠벌린 것은 아니다. 그들은 표면상으로는 한반도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식민정책을 위한 측면이 더 컸다. 엔도 키미오는 "대일본제국의 신민(臣民)이 정착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것을 정리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총독부 입장에서는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호랑이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국경지대까지 일본인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조선총독부 입장에서 호랑이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고 엔도는 말한다.

유럽인들의 대서양 진출이 본격화되던 16세기 초반만 해도, 지금의 미국 땅에는 약 6000만 마리 정도의 버펄로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미국 땅은 '인디언의 나라'이기도 했지만, '버펄로의 나라'이기도 했다. 그런데 1875년경에는 그 숫자가 1000마리도 안 됐다고 한다. 3세기 만에 6000만 마리에서 1000마리로 뚝 떨어진 것이다.

버펄로는 목축업을 하는 인디언들한테는 꼭 필요한 동반자였지만, 미국인들한테는 가죽 외에는 탐날 데가 없는 동물이었다. 미국인들은 가죽도 얻고 인디언의 생활 기반도 약화할 목적으로 버펄로 사냥에 열을 올렸다. 미국인들은 '버펄로 한 마리를 죽이면 인디언 열 명이 죽는다'는 구호를 퍼뜨리며 버펄로 사냥을 부채질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 철도 회사들은 승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기차에 편안히 앉아 버펄로를 향해 총을 쏴보라'는 광고까지 내걸곤 했다. 버펄로 사냥을 스포츠처럼 홍보한 것이다. 그런 속에서 버펄로 사냥계의 영웅도 등장했다.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전직 군인 윌리엄 프레더릭 코디(1846~1917년)는 4000마리가 넘는 버펄로를 죽였다고 해서 '버펄로 빌'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미국인들은 버펄로 사냥을 통해 인디언들의 생활기반을 축소하고 미국 땅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했다. 일본인들이 미국인을 시늉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들 역시 한국 땅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산신처럼 떠받든 호랑이를 집중적으로 사냥했다. 한국 호랑이는 자연적으로 멸종한 게 아니라 일본 식민통치 때문에 멸종됐다.

 영화 <대호>의 포스터. 영화 속 천만덕(최민식 분)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해 나서는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영화 <대호>의 포스터. 영화 속 천만덕(최민식 분)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해 나서는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New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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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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