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나를 초대해줘<오스칼과 이엘리>

나를 초대해줘<오스칼과 이엘리> ⓒ 씨네그루㈜다우기술


하얗게 흩날리는 눈과 더불어 차갑게 식은 마을에 한 소녀와 노인이 이사를 온다. 거의 불이 꺼진 빌라에 혼자 무언가를 하던 오스칼의 방은 환하다. 마침 그 소년의 눈에 옆집에 이사 온 소녀가 눈에 띈다. 그녀의 이름은 이엘리, 단 몇 번의 만남으로 오스칼과 이엘리는 마음을 나눈다. 새하얗게 쌓인 눈을 홀로 밟으며 외롭게 지내던 오스칼에게 등장한 소녀 이엘리의 존재는 컸다.

오스칼은 학교에서 몇몇 인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매일 뒤에서 속으로만 보복을 꿈꾸는 12살 소년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둘이 살며 가끔 아빠가 사는 곳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다 오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오스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품는 적대감과 복수심으로 품에 지니고 다니는 작지만 날선 칼은 그가 지닌 마음을 대변해준다.

절대 누구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던 오스칼의 마음에 묘한 매력을 지닌 소녀 이엘리가 들어오게 된다. 오스칼의 가슴에 이엘리의 존재가 깊이 와닿기 시작할 그 무렵 마을엔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소녀와 노인

차갑고 고요한 작은 마을에 동요가 일 것이라는 예감은 오스칼과 이엘리의 만남 때문만이 아니었다. 날 선 추위에도 추워 보이지 않는 기묘한 소녀 이엘리의 곁에 그녀를 지키는 한 노인이 있었다.

무언지 모를 비밀을 안고 있는 듯 보이는 노인의 연이은 엽기적인 행각으로 인해 영화는 공포영화의 껍질을 처음 벗겨낸다. 낮과 밤의 행적이 다른 노인의 눈빛에서 얻어지는 절실함은 분명 이엘리를 향한 것이었다. 이엘리를 지켜주던 노인의 마지막 밤이 오기 전, 그 날의 시작에서 노인은 이엘리에게 말했다.

"오늘 밤 만큼은 그 아이 만나지 말아줘."

그 말에 측은한 듯 바라보며 노인의 뺨을 어루만지던 이엘리와 그 날 밤 오스칼이 아닌 노인이 있는 곳에 찾아갔던 이엘리는 분명 같았지만 다르기도 했다. 왜 그 날 밤만큼은 오스칼을 만나지 말아달라고 한 건지 알 것 같았던 노인의 마지막 모습은 공포영화의 잔인한 연출 덕분에 꽤 충격적이었다. 그런 공포적 장치에도 노인의 마지막이 충격보다 슬픔으로 다가왔던 건 노인의 사랑의 시작도 마지막만큼이나 저렇게 슬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래된 붉은 열정을 지닌 노인의 사랑을 먹고 이엘리는 그저 노인의 마지막을 바라보기만 했다.

빛을 잊고 추위도 잊었지만

마을의 여러 사건의 중심엔 알고 보면 늘 이엘리가 있었다. 핏기 없는 얼굴에 가냘픈 몸, 독특한 냄새, 날카로운 추위에 겉옷도 입지 않고 집 앞에 나와 앉아있는 이엘리의 존재는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다. 낮엔 무얼 하는지 밤에만 나와 오스칼을 만나고, 무언가를 억누르기 위해 애쓰는 모양새는, 평범한 여자아이가 아님을 드러내는 그녀의 특징이었다.

오스칼을 만나면 만날수록 불안해지는 이엘리의 속사정은 무섭기도 했지만 실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지고 사는 외로움과 슬픔이 더 컸다. 오스칼에게 "내가 평범한 여자아이가 아니라도 날 좋아할거니?"라고 애써 담담히 묻는 이엘리는 관계의 시작이 자기 선택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이 두렵고, 그 사실 때문에 벌어지는 많은 사건이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건 그녀가 정말로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한 이와 어울리는 건 상대의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관계의 진전을 위한 노력이 그녀에겐 살기위한 노력이었다. 빚도 잊고 추위도 잊었지만, 잊지 않은 건 본능처럼 엄습하는 자신의 운명이었다.

마음으로 죽이는 소년, 살기 위해 죽이는 소녀

 최근 재개봉한 영화 <렛미인>의 한장면

최근 재개봉한 영화 <렛미인>의 한장면 ⓒ 씨네그루㈜다우기술


결국 이엘리의 실체를 알게 된 오스칼은 차가운 눈만큼이나 이엘리에게 차가워진다. 그러나 이엘리가 없는 일상은 괴롭기만 하다. 학대하는 친구들, 오랜만에 만난 아빠에게서 느끼는 이질감과 소외감은 오스칼의 마음이 이엘리를 그리워하게끔 하는 장치가 된다.

다시 이엘리를 찾은 오스칼, 그의 선택에 다시 오스칼을 찾는 이엘리. 그렇지만 전처럼 살갑지 못하고 상처 주는 말만 내뱉는 오스칼에게 이엘리가 던지는 말은 평범한 오스칼과 평범하지 못한 이엘리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했다.

친구들의 괴롭힘에 매일 속으로 보복을 꿈꾸며 품에 작은 칼을 지니고 다니는 오스칼은 죽임에 관한 막연한 기대를 품고 그런 상상을 하며 현 상황을 도피하려 했다. 이엘리의 말처럼 '마음으로는 그 친구들을 몇 번 이고 죽인 적이 있다.'

사람의 피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뱀파이어 이엘리. 그녀는 말한다.

"난 살기 위해 죽여."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소년과,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소녀가 만난 것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초대

평범하지 못해 초대받아야만 상대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소녀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초대받지 못한 존재임을 느끼고 사는 소년의 만남은 거부할 수 없는 뱀파이어의 운명만큼이나 안타깝고 슬프다. 그리고 아름답다. 소외된 존재들의 합은 없던 힘도 생기게 한다. 오스칼이 괴롭힘만 당하던 소년에서 반격을 시도하는 소년으로 변화하게 된 힘도 이엘리를 만나면서부터였다.

하얗게 눈 내린 북유럽의 마을과 숲은 차갑기도 했지만 아름답기도 했다. 그 양면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 차갑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그 곳에서 사람이 산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멸의 사랑을 선택한 오스칼에게는 차갑기만 했던 그 곳에서 사랑을 품게 한 그 소녀가 평범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이엘리처럼 오스칼 역시 초대받고 싶었던 것이다.

초대받고 싶은 소년과 소녀과 만나 영원한 사랑을 하러 떠났다. 어찌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근 재개봉한 영화 <렛미인> 포스터

최근 재개봉한 영화 <렛미인> 포스터 ⓒ 씨네그루㈜다우기술



○ 편집ㅣ이병한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blog.naver.com/rnjstnswl3)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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