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고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포스터

고래는 고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포스터


최근 개봉한 <하트 오브 더 씨>(론 하워드 감독)는 단순히 고래와 항해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하트 오브 더 씨>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이 현재 위험하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주인공 오웬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 분)처럼 인식의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깨달음도 가능하지 않다.

영화 제목은 원래 '인 더 하트 오브 더 씨(In the Heart of the Sea)'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바다의 심장에서'다. 심장은 중심을 의미하고 한 가운데를 의미한다. 그 심장이 아프다는 뜻이고, 온 우주와 자연의 중심이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박노해 시인은 일찍이 이를 두고 우리 몸의 중심은 머리가 아니라 우리 몸에서 가장 아픈 곳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고래가 아픈 건 바다의 심장이 아픈 것이고, 지구가 아픈 것이다. 그곳이 중심이다.

바다의 심장이 아픈 이유는 인간 때문이다. 영화는 명백하게 얘기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부른 비극이 바로 <모비딕>의 배경이다. 좀 더 많은 기름이 필요한 건 사실 변명에 불과하다. 포경업은 산업이고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 가운데 희생 당하는 건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다.

바다의 심장이 아픈 이유는 인간

허밀 멜빌이 1851년 지은 <모비딕>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이번 영화는 소설의 탄생이 항해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 재산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작가의 비극, 그리고 N. 호손만큼이나 위대하지 못하다는 자괴감. 일등 항해사의 운명이나 작가의 운명이나 고달프긴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뛰어난 연출력과 영상미, 배우들의 열연이 삼박자를 갖추며 단연 돋보인다. 한 영화 평론가가 "강약약의 리듬을 탄 항로"라고 표현했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선장 조지(벤자민 워커 분)와 체이스의 긴장감과 극한에 처했을 때 보이는 인간미는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에식스호의 침몰을 두고 기존의 <타이타닉>이나 <라이프 오브 파이>를 연상하기 쉽지만, 영화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자연 앞에 처한 인간의 나약함을 모두 여지 없이 보여주지만, 극복과 승화의 단계는 조금씩 다르다. <타이타닉>은 과학기술의 웅장함이 보잘것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자연과 신, 종교와 인간성이라는 것을 이중적으로 표현했다. 이와 반면 <하트 오브 더 씨>는 자연의 경이를 깨닫는 과정과 인식의 전환,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과 행동을 단선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가 탄생하는 과정은 언제나 비극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자연 안에 있지만 자연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실수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행동과 결부되는지 여부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 영화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근접한다. "신은 곧 자연"이라는 스피노자는 신과 세계 사이에 질적 차이는 없다고 부정한다. 고래 한 마리가 과연 어떤 깨달음을 준다고 반론을 제기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고래와 더불어 이 큰 우주를 구성하는 전부이자 일부이다.

덧붙이는 글 리뷰입니다!
하트 오브 더 씨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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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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