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홍순관 평화를 이야기하는 '노래 운동가' 가수 홍순관의 노래는 늘 깊이가 있다.

▲ 가수 홍순관 평화를 이야기하는 '노래 운동가' 가수 홍순관의 노래는 늘 깊이가 있다. ⓒ 홍순관


하늘의 소리와 땅의 아픔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가수 홍순관씨가 지난 11월 1일 자신의 노래 이야기를 담은 책 <나는 내 숨을 쉰다>를 출간했다. <나는 내 숨을 쉰다>는 홍순관씨가 그동안 부른 노래에 대한 이야기와 지강유철씨와 나눈 인터뷰, 그리고 신학자들의 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대한 뒷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지난 3일 분당 미금역 근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나는 내 숨을 쉰다>는 책을 출간했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출판계가 다 어렵다는데 저라고 별 수 있나요? 그렇다고 죽으라는 법도 없어요(웃음). 공연에 가져가서 현장판매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조금씩 소화되고 있어요."

- 주위에서 읽어보고 뭐라고 하세요?
"노래 이야기와 인터뷰가 담겨있는데 80~90%는 인터뷰가 훨씬 재밌데요. 저와 오랫동안 지냈지만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돼 재밌다고 해요."

-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 책은 노랫말에 대한 것인데 아주 오래된 생각입니다. 누구든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래에 신학적 견해가 뒷받침돼줘야 기독교 음악이 천박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20년 전부터 했어요. 그래서 신학교에 이런 요구를 20년 전부터 했지만 이런 책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제가 쓴 거죠.

제 노랫말에 글을 쓰는 건 겸연쩍은 일인데 시간이 가면 더 안 좋아서 때가 됐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출판사 요구도 있어서 공연 때 얘기하던 걸 푼 거예요. 그리고 제 노랫말이라 객관성을 얻기 위해 신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백소영 이대 교수, 김기석 목사, 김영봉 목사 글이 있고, 지강유철씨와 인터뷰 했는데 그 분은 지휘를 전공하셨고 클래식 마니아예요. 오랫동안 저를 지켜보셨어요. 그래서 노랫말, 인터뷰, 신학자의 글 - 세 쳅터로 했죠."

- 책에 보니 노래 신학이란 단어가 있던데,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제가 만든 용어예요. 제가 항거하는 불만의 이야기일 수도 있죠. 얼마나 노래 신학이 없으면 이런 용어를 만들어 냈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노래에 신학적 뒷받침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죠. 그러나 지금까지 노래에 신학적 뒷받침이 없었으니까 노래에 신학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처음엔 책 제목 자체를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 노래가 천박해지면 교회가 망가지게 되어있죠. 항거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제목을 세게 가려 했지만, 그 이미지가 충분히 담긴 '나는 내 숨을 쉰다'로 했어요."

 <나는 내 숨을 쉰다> 표지

<나는 내 숨을 쉰다> 표지 ⓒ 꽃자리


- 현재 교회 음악이라면 'CCM', '경배와 찬양', '성가곡'이 있어요. 이것이 문제라고 보세요?
"저는 경배와 찬양이 들어올 때부터 반대했어요. 먼저 대형교회가 이걸 들여왔어요. 그야말로 신학적 연구가 미미한 상태에서 단지 미국에서 청소년들이 좋아해서 사람이 몰린다는 이유 하나였어요. 명분 자체가 노래로 성경을 말하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청소년을 끌어모으는 데에 초점이 있었죠. 동기 자체가 불순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어요. 그럼 끌어모을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은 진리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말초적 신경을 건드려서는 오래 못 가죠. 지금 그 결과가 나오죠. 또 내용상으로 보면 천편일률적인 언어들은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세상을 향한 비판이나 위로, 이끌어나가야 할 책임, 이런 것도 없잖아요.

CCM도 마찬가지죠. CCM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약자인데, 동시대의 문제가 들어가는데, 이 시대의 어떤 상황, 어떠한 사정, 이야기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거기엔 온난화 환경문제도 없고, 분단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통일을 말하지도 않지요. 또 심각한 노동문제도 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찾기 어렵습니다. 교회는 사회와 분리되어 있어 전혀 관심 없게 되는 것이지요. 역사도 미래도 다루지 않지요. 게다가 너무나 같은 종류의 노래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심각한 부분입니다."

- <나는 내 숨을 쉰다>의 부제가 '홍순관의 노래 이야기'던데.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껏 불러왔던 노래를 풀어 설명한 것이라서 그런 부제를 달았지요. 노래에 대한 뜻과 생각을 쓴 글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거기에 목사님들과 신학 교수의 신학적 견해들, 클래식 전공자인 교회 지휘자와 나눈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1989년 녹음을 시작했던 <새의 날개>부터 지금 녹음 중인 <시간은 나무처럼 느렸으면 좋겠어>라는 새 음반의 노랫말까지 25개의 노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 노래 실력이 좋아서 제작사로부터 러브콜을 많이 받으셨던데.
"30년 동안 노래했으니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제가 부산 살던 고2 때 서울에서 엄청난 기획자가 와서 소문 들었다며 학교로 찾아왔지만 단칼에 거절했어요. 왜냐면 전 미술을 했거든요. 또 포크 쪽에서도 몇 번 있었지만 제가 상업 가요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가요를 부르지 않으면 가수라고 보지 않아요. 이 세상에는 꽤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존재하는 데 말이죠. 이런 대목에선 신동호 시인의 시에 나오는 '농현은 국악엔 있고 삶엔 없다'라는 시구가 적절한 예가 될 것입니다. '도'와 '레' 사이에 수많은 음이 있지요. 다른 생각과 다른 세상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다양한 장르와 노래들이 들려지는 길이 좀 생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양한 노래가 불리고 들려지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메인과 변두리가 나누어지지 않고 그 자체로 다양한 문화로 인식되는 시대가 그리운 것이지요."

- 지금 아쉽진 않나요?
"유명한 건 껍데기 같은 것이긴 하지만 전 현장에서 공연할 때 기획과 연출을 하기 때문에 유명하면 편리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본질로 들어가면 아무 것도 아니고 오히려 편해요. 또한 유명해서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란 보장도 없죠. 그럼에도 자신은 있었어요. 하지만 체질이 안 맞아요. 거긴 철저하게 상업주위기 때문에 제가 말하려는 메시지나 행동을 가려 해야 해요. 어리석은 길을 택했죠(웃음)."

- 책에 보니 노래하는 목적이 교회개혁이라던데.
"제가 다니던 교회는 목사가 설교하는 강단에 여성이 오르지 못했어요. 여성이 오르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이건 제가 개혁을 해야겠다는 상징적 장면이고, 물론 내용으로 보면 많겠지만요. 성경하곤 동떨어졌죠.

처음 전 건축을 하려고 했어요. 지금도 개혁의 0순위는 건축이라고 보는데, 제가 젊을 땐 건축하려면 수학을 잘해야 했지만 전 미대 가려고 했거든요. 그때 본고사에 수학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예 수학을 안 했어요. 건축이 왜 중요하냐면 어떤 집에서 사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떻게 자라나고 어떤 환경에서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출발이기 때문에 건축이 제일 중요하죠. 근데 못했고, 그 대신 제가 조각 전공인데 조각은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서 노래를 한 거죠."

- 현재 한국 교회는 어떻게 보세요?
"없어져야 할 것이랄까요?(웃음). 최악이라고 봅니다. 싹 다시 시작하면 좋을 만큼 썩은 곳이라고 보죠. 그러나 또 속을 들여다보면 교회가 하는 일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숫자는 너무 적고 나머지 교회들은 워낙 비성경적이라 오히려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거죠. 좀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표현한다면,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죠. 그런 면에서 교회가 반성해야죠.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노래에 신학이 필요하죠."

- 강정, 용산참사, 팽목항 등 우리 사회 아픔 있는 곳에 가셔서 노래를 부르셨던데.
"당연한 거죠. 왜냐면 전 예수를 스승으로 모시기 때문에 그분이 이 시대에 오셔서 노래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부를 것인가의 교과서죠. 틀림없이 그분은 아픈 곳, 외로운 곳, 알아주지 않는 곳, 억울한 곳, 분통 터지는 곳에 들어가서 노래하실 거예요, 그것은 상업가요로 가능하지 않아요.

그분이 한 일도 마찬가지예요. 호사스럽게 정치적 성향을 발휘해서 했던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했던 일이기 때문이죠. 혹자는 저에게 '유명해져서 하면 되지 않냐'고 해요. 그러면 전 예수가 그렇게 하셨냐고 물어요. 아니거든요. 그래서 강정, 용산참사, 팽목항 등을 가는 건 이상한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거예요. 그러나 자본주의에 살며 그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처량한 짓이긴 해요. 그런 곳에서는 개런티도 없고 좋은 시스템도 아니죠. 그러나 누군가는 거기서 위로의 노래를 불러야 하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25주년 공연 때에 정태춘 형이 격려해준 '홍순관은 오랜 세월 그늘 속으로 들어가 그 그늘을 걷어내는 노래를 해왔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눈물 나도록 고맙고 예민하게 보아준 시선이라고 봅니다.

지금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껏 섰던 무대 중에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무대는 용산 참사 현장에서 마련해준 스티로폼 3장 위였습니다. 사실 저는 20대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한 것을 비롯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단독무대를 가진 뉴욕 링컨센터와 동숭동 아르코 예술대극장, KBS홀, 예술의 전당 등 무대에 대한 욕심이 없을 만큼 유수의 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그러나 종종 생각할 때 감흥에 젖는 무대는 '가수가 왔다고' 그토록 처절하고 열악한 현장에서도 '그러면 안 된다고' 스티로폼 3장을 깔아주었던 따뜻한 배려의 그 무대입니다."

- 그런 곳에서 노래하면 느끼는 것도 많을 것 같아요.
"언제나 현장은 스승이에요. 현장은 추상적이지 않고 거기엔 오랫동안 그 일을 해온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므로 제가 거기서 공연하는 게 큰 일 한다고 할 수 없어요."

- 새 음반을 녹음 중으로 알아요.
"신나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일이지요. 7년 만에 준비하는 거예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음반은 정규음반과 동요 음반으로 2장입니다. 모두 제 노랫길에 특별하고도 애틋한 대목이 될 것입니다.

정규음반 <시간은 나무처럼 느렸으면 좋겠어>에 실릴 레퍼토리는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감성과 스타일로 돌아가는 노래들입니다. 자본주의로 망가진 감성과 세상을 조금이라도 돌아보게 만드는 노래들로 전부 자작곡이에요. 사람들이 좋아할 거란 생각이에요.

또한 동요 음반은 20년간 불러왔는데 자작곡 음반으로 작업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동요를 부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북쪽의 아이들과 해외동포사회에서 자라나 한국 말이나 역사를 잃어버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장르인데, 끊어져서 그걸 회복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170국에 나가 있는 해외동포가 7백만 명이에요. 그러나 한글학교에서 배우는 걸 보면 형편 없고 한국을 이해하는 건 기껏해야 한국 드라마나 영화예요. 하지만 그런 걸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유유히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시를 노래한다거나 감성을 노래한다거나 풍습을 노래하는 거에요. 그래서 음반제목도 <엄마나라 이야기(Tales of Mother Land)>입니다.

지금 생각하는 꿈은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있는 동포사회를 찾아가 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항공료죠. 엄청 들어서 이 일에 기업이나 정부의 스폰서가 절실합니다. 다른 건 안 바라고 비행기만 태워주면 공연할 거예요."

- 언제쯤 새 노래를 만날 수 있나요?
"음반은 1월 중순이면 끝나서 3월 초에 발매할 생각입니다."

○ 편집ㅣ이병한 기자


홍순관 C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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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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