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6일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이하 영평상)을 시작으로 이어진 국내 영화상 시상식이 20일 제52회 대종상영화제(이하 대종상)와, 26일 제36회 청룡영화상(이하 청룡상)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비슷한 시기 열리는 세 영화상은 각기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내놨는데, 일단 영평상과 청룡상은 상의 권위와 가치가 높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상대적으로 대종상은 파행이 두드러지면서 더 이상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이 들 만큼 안팎의 비난을 받고 있다.

세 영화상은 주요 부문 수상자 면면에서 각기 같거나 다른 선택을 통해 상의 수준을 나타냈다. 영평상과 청룡상은 여러 작품들이 골고루 수상했으나 나눠주기식보다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평가받았고, 대종상은 특정 작품에 몰아주기 시상으로 받는 사람까지 난처하게 했다.

우선 최우수작품상의 경우 세 영화상의 선택이 모두 달랐다. 영평상은 <사도>를 선택했고, 청룡상은 <암살>을 선정했다. 대종상의 선택은 10관왕을 차지한 <국제시장>이었다. 감독상은 영평상과 청룡상 모두 <베테랑> 류승완 감독을 선택한 데 비해, 대종상만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남녀주연상(영평상은 남녀연기상)도 세 영화상 모두 달랐는데, 영평상이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의 정재영과 <차이나타운> 김혜수를, 청룡상은 <사도> 유아인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을 수상자로 결정하면서 독립 저예산 영화에도 균등한 심사기준을 적용했다. 반면 대종상은 <국제시장> 황정민과 <암살> 전지현을 선택하며 흥행영화에만 관심을 두는 편향된 시선이라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인상은 <거인> 최우식이 영평상과 청룡상을 수상하며 대세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들 영화상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특성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외면이다. 지난해 11월 27일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주목받은 다큐멘터리였으나 영화상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내외 영화제들이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두고 극영화와 차별을 두지 않고 있지만, 국내 영화상들은 아직 다큐멘터리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나마 영평상이 차기작을 지원하는 독립영화지원상에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을 연출한 임흥순 감독을 선정한 게 유일하다. 임흥순 감독은 영평상 감독상 후보기도 했다.

[영평상] '영화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상'으로 우뚝 서다

 지난 11월 16일 열린 35회 영평상 시상식

지난 11월 16일 열린 35회 영평상 시상식 ⓒ 성하훈


"이창동 감독님이 흥행영화가 감독상을 받기 힘들다고 했는데, 나는 받았다. 돈도 있고 가오도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스태프들에게도 고맙다. 파리에서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우리가 하는 일, 영화를 통해 위안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더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지난달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영평상 시상식에 참석한 류승완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청룡상에서는 제작사 대표이자 류 감독의 부인인 강혜정 대표가 대리수상을 했으나, 영평상에서는 류 감독이 직접 나와 광화문 총궐기와 파리 테러를 언급하며 소위 '개념 수상 소감'을 남겼다.

올해 영평상 최고의 화제는 남자연기상을 수상한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의 주연 배우 정재영이다. 이 시상으로 상업영화와 다양성영화를 차별하지 않는 평론가들의 시선을 드러냈다. 또한 저예산 독립영화로 제작하기에 흥행성은 약하지만 평단의 지지를 받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위상도 보여줬다.

신인여우상을 <마돈나>의 권소현 배우가 수상하고, 신인감독상 역시 <거인>의 김태용 감독이 받는 등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향한 영평상의 균형 있는 선택은 올해도 주목을 받았다. 국제비평가연맹한국본부상은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수상했다. 반면 대종상을 휩쓴 <국제시장>은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했다.

올해는 영평상을 주관하는 영화평론가협회 설립 50주년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컸다. 공로상을 수상한 원로 정진우 감독은 신작 <여명의 눈동자>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영평상은 화려하지도 않고 TV중계도 이뤄지지 않지만, 수상자들 표현대로 "영화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으로 자리매김한 모습니다. 작품성으로만 평가하는 평론가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영화상의 가치와 비중은 한껏 높아졌다.

[청룡상] 공정성 돋보였지만 아직 짙은 조선일보의 그림자

'청룡영화상' 이정현, 수줍은 고대여신  배우 이정현이 26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서 열린 제36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입장하며 미소짓고 있다.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배우 이정현 ⓒ 이정민


올해 청룡상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2년 연속 저예산 독립영화의 여우주연상 수상이다. 지난해 <한공주>의 천우희에 이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의 수상은 청룡상이 흥행 등 외적인 조건에 흔들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수백만을 넘긴 흥행 상업영화 틈바구니 속에서 독립영화의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4만 명이 조금 넘는 정도의 관객만이 본 영화지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정현의 연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단연 돋보였다.

각본상을 <소수의견> 김성제 감독과 손아람 작가가 받은 것, 신인감독상과 신인남우상이 영평상과 똑같이 독립영화 <거인>에게 돌아간 것 역시 의미를 더했다. 상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만큼 청룡상의 선택은 박수를 받을만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사가 상의 주체라는 점은 여전히 영화계의 거부감으로 남아있다. 아직 상 자체가 이 그늘을 훌훌 털어버리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는 특히 대종상의 파행이 상대적으로 청룡상에 이득을 안겼다는 분석이 많다. 한 영화관계자는 "청룡상 주최 측은 매우 영악해 문화정치를 한다"며 "누워서 침 뱉는 심정이지만, 대종상 주최 측은 하수"라고 평가했다.

한 중견제작자도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영화상을 상대 안한지 10년이 넘었다"면서 "대종상이 저 모양으로 망가지니 남은 영화상에 기대가 큰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조선일보와 잔치를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남의 잔치에 재 뿌리기 싫어 말을 삼갔을 뿐"이라고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송희일 감독은 "대종상에 비해 청룡영화제가 공정하기도 하고 광주나 노동 문제를 담은 영화도 수상하기도 했지만, 이 영화제 주최는 조선일보다"라며 "연출력이 부족한 탓에 여기 수상자로 호명될 일은 별로 없겠지만, 만약 호명된다 하더라도 나는 저 자리에 가지 않겠다, 영화보다 실제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송희일 감독은 "영화계 내부의 축적된 힘으로 공정한 '상업 경쟁영화제' 하나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아쉽다, 언제까지 대종상 파행에 조소를 보내고 언제까지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영화제에 눈 감고 기댈 것이냐"며 "한국 영화의 100년, 아니 향후 기백 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파종 시기가 늦지 않았다"고 새 영화상의 신설을 제안했다.

[대종상] 그렇게 조롱거리가 됐는데도 변할 기미가...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대충상 영화제로 전락!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이 끝난 뒤의 모습. 이 날 시상식에는 남우주연상 후보와 여우주연상 후보 전원이 불참했다.

▲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대충상 영화제로 전락!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레드카펫이 끝난 뒤의 모습. 이 날 시상식에는 남우주연상 후보와 여우주연상 후보 전원이 불참했다. ⓒ 이정민


남녀주연상 후보자들의 전원 불참과 <국제시장> 10관왕, 김혜자 배우에 대한 나눔화합상 시상 무산은 올해 문제아로 전락한 대종상의 위상을 여실히 드러낸 부분이었다. 무모하게 밀어붙인 '대리수상 불가 방침'이 촉발한 일이었지만, 원로영화인들이 주축인 영화인총연합회의 이권다툼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도리어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다. 김구회 조직위원장은 계속 꾸려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영화인총연합회 내부에서조차 이번 파행에 대해 사과도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대종상에 불참한 일부 원로영화인들이 대국민사과를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원로영화인은 "대종상과 아무 관련이 없지만, 영화인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대종상의 근본적인 문제는 치러낼 여력이 없는 원로영화인들이 외부 인사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이권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번에도 영화인총연합회에 의해 영입된 외부인들이 행사를 주관하면서 파행을 일으켰다. 영화인총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대종상 운영 경비가 한 개인통장으로 들어가 집행돼 회의 때 문제제기가 있었고, 몇몇 단체들에게 대종상 기록영화 제작 명목으로 일정한 지원금이 지급됐다"고 말했다.

심사위원 구성에서도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올해 대종상에 출품된 작품은 44편에 불과했고, 예심 심사위원은 영화인총연합회 산하 7개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과 일반인으로 구성됐다. 본심 심사위원 역시 논란 끝에 17명 중 2명이 불참해 15명으로 구성됐고, 그나마 과반수가 영화인총연합회 산하단체에서 추천된 사람들이었다. 촬영이나 조명, 기획, 음악 등 기술 쪽 단체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흥행영화 외에는 다른 영화들에 시선이 가기 어려운 구조다. 심사 공정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종상 개혁을 위해서는 활동하고 있는 영화인들에게 영화상을 넘기고 원로들이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8개 단체가 모인 영화인총연합회가 돈이 되는 영화상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세여서 개혁은 난망한 상황이다. 존경받지 못하는 원로영화인들과 영화와 관련 없는 '철거업자'가 주는 상으로 전락한 대종상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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