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과 바늘, 골무와 헝겊만으로 옷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좋은 옷은 그 안에 만든 사람의 혼이 담긴다. 시장에서 파는 중국산 원피스와 베르사체, 혹은 지안프랑코 페레의 여성복은 형식상으론 같은 옷이지만, 옷 안에 담긴 철학과 디자인 감각은 같을 수 없다.

재벌과 결탁해 사과박스에 담긴 불법 정치자금 수백억 원을 어두운 골목에서 건네받는 정치인, 노동자의 피땀으로 쌓아올린 거부(巨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회와 국세청, 검찰과 법원에 천문학적 규모의 떡값을 제공하는 기업인, 재벌과 정치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세 치 혀와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붓으로 제 이익만을 챙기는 언론인. 이들은 우리가 드물지 않게 보아온 한국사회의 '괴물들'이다.

그러나 이 괴물들만으론 영화나 소설이 만들어질 수 없다. 단시간에 성장한 자본주의의 그늘과 일그러진 한국형 정경유착을 다룬 소설들은 드물지 않게 있지만, 그것 모두가 일정한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자칫하다간 "빤한 소재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쉽다.

우민호 감독의 어려운 도전

 영화 <내부자들>의 주연·조연급 출연진들. 이 영화에서는 주연들 뿐 아니라 조연들도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내부자들>의 주연·조연급 출연진들. 이 영화에서는 주연들 뿐 아니라 조연들도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 쇼박스


그런 이유로 <파괴된 사나이>와 <간첩>의 연출자 우민호의 선택은 위험할 수 있었다. 그의 신작은 최근 개봉한 <내부자들>. 이병헌, 백윤식, 조승우 등이 주연한 <내부자들>의 소재는 앞서 언급한 타락한 정치인과 재벌 그리고, 언론인이다.

우민호의 경쟁상대는 이 '악의 삼위일체'에 카메라를 들이댄 그간의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 유럽 영화와 제3세계 영화 전체였다. 정말 '잘 만들지' 않으면 유치한 동어반복이란 이야기를 듣기 딱 좋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부자들>을 연출한 우민호의 선택은 절반쯤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언급처럼 식상한 소재로 '웰메이드 필름'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일. 하지만 이제 겨우 3번째 장편영화를 감독하는 신진답지 않은 감각과 나름의 영화철학이 <내부자들>에선 발견된다.

매체의 힘이 가진 공신력을 이용해 제 친구를 정치권에 데뷔시키는 유력언론사의 논설주간(백윤식 분)과, 의기 있는 검사였으나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검은 돈의 유혹에 시달리는 정치인(이경영 분), 이 둘의 위에 서서 보다 거대한 '부의 탑'을 축조하는 재벌(김홍파 분)이란 <내부자들>의 구도는, 영화 속에서 겉돌지 않고 자연스레 관객들 내부로 녹아든다. 억지스럽지 않은 설정 탓이다.

탁월한 완급조절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

연출의 힘을 집중할 때와 느슨한 유머와 위트로 완급조절을 해야 할 때를 체득하고 있는 우민호의 카메라. 비록 미완이긴 했지만, 탄탄한 이야기 구조로 이름 높은 윤태호의 원작 웹툰에 기반했다는 것도 <내부자들>의 조밀하고 꽉 짜인 구성에 힘을 더한 듯하다. 영화 속 한국 사회 악인들의 지저분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밀실에서의 성접대 장면 등이 거슬리긴 하지만, 그것이 좋은 플롯을 가진 <내부자들>의 본질을 해치지는 못한다.

또 하나. 우민호가 치른 이번 전쟁에서 최고의 지원사격자가 돼준 이들은 바로 배우들이다. 사생활 문제로 영화팬들의 손가락질을 받긴 했지만, 이병헌의 연기가 발군이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런데, <내부자들>에선 이병헌만이 아니었다.

불법 비자금 3천억 원을 조성하는 악덕재벌을 연기한 김홍파와 서울지검 부장검사 역의 정만식, 이병헌의 부하 박종팔 역을 맡은 배성우, <조국일보> 논설주간 역의 백윤식 등이 더해져 <내부자들>은 더 할 나위 없는 연기조합을 보여준다. 조연들의 연기가 원체 빼어난 탓에 주연이라 할 우장훈 검사 역의 조승우가 초라해 보일 정도다.

잘 만들어진, 그러나 보는 내내 불편한

 2시간이 훌쩍 넘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때론 의분을 때로는 실소와 한숨을 부르는 영화 <내부자들>.

2시간이 훌쩍 넘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때론 의분을 때로는 실소와 한숨을 부르는 영화 <내부자들>. ⓒ 쇼박스


2시간이 훌쩍 넘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때론 의분을 때로는 실소와 한숨을 부르는 영화 <내부자들>. 영화를 본 30대 초반의 후배 하나가 이런 물음을 던졌다.

"분명 잘 만들어진 것 같은데, 왜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불편했는지 모르겠어요."

필자가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50대 초반의 선배 하나가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세상 모든 예술은 현실을 모사해. 영화도 마찬가지야. 그런 이유로 <내부자들>은 영화가 아냐. 또 다른 현실이지. 우리가 처한 한국사회의 현실이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거잖아."

내부자들 이병헌 재벌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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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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