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니스 모리셋 Jagged Little Pill 20주년 기념반 표지

앨라니스 모리셋 Jagged Little Pill 20주년 기념반 표지 ⓒ 워너뮤직코리아


1995년 전 세계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음반 한 장이 발매 20주년을 맞아 최근 새롭게 공개됐다(미국 기준 10월 30일, 국내 11월 발매). 여성 록커 앨라니스 모리셋의 메이저 데뷔작이자 정규 3집 <재그드 리틀 필(Jagged Little Pill)>은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무려 1600만 장 이상, 세계 3300만 장 이상이 팔린 메가 히트 앨범이었다.

새롭게 리마스터링 된 1디스크 버전, 미공개 데모곡을 담은 2디스크 버전, 2005년 뒤늦게 공개된 <재그드 리틀 필 어쿠스틱(Jagged Little Pill Acoustic)>, 그리고 1995년 영국 런던 공연 실황 등 총 4장의 디스크로 제작된 디럭스 버전 등 다채로운 구성은 여타 명반들의 재발매에 견주어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 음반이 등장했던 1995년은 록 음악계, 특히 그 무렵 주류를 이뤘던 얼터너티브 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었던 해이다. 너바나의 <네버마인드(Nevermind)>, 펄 잼의 <텐(Ten)>, 앨리스 인 체인스의 <더트(Dirt)> 등 걸작 음반들이 쏟아지면서 기존 헤비메탈로 대변되던 록 음악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시애틀을 중심으로 언더그라운드 위주로 저변을 넓히던 얼터너티브 록/모던 록이 지배하는 시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1994년 갑작스런 커트 코베인(너바나)의 사망 이후 짧은 시간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얼터너티브 록은 점차 또 다른 후발 주자들에게 인기의 왕관을 내놓게 되었다. 스톤 템플 파일럿츠, 부쉬 등 새로운 감각의 밴드들이 그 틈을 비집고 음악계의 신흥 강자로 등장했고, 포스트 펑크 사운드의 그린 데이, 오프스프링 등의 밴드 역시 만만찮은 위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변화와 혼돈의 시기에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던 작품이 바로 <Jagged Little Pill> 였다. 앨라니스 모리셋의 <재그드 리틀 필(Jagged Little Pill)>는 여러 면에서 기존 록 음반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기존 주류 음악계의 치밀한 기획력 성공... 새로운 여성 록커 탄생

 앨라니스 모리셋 Jagged Little Pill 오리지널 버전 표지

앨라니스 모리셋 Jagged Little Pill 오리지널 버전 표지 ⓒ 워너뮤직코리아


예나 지금이나 여성 뮤지션은 록 음악계에선 그냥 변방의 주변인에 지나지 않았다. 고(故) 재니스 조플린, 윌슨 자매가 이끌던 하트, 제퍼슨 에어플레인/제퍼슨 스타쉽/스타쉽을 거친 그레이스 슬릭 같은 걸출한 여성 록커가 없진 않았지만, 여전히 록 음악은 남성들의 몫이었다.

이런 한계점을 앨라니스 모리셋은 이 앨범 한 장의 성공으로 가볍게 뛰어넘는데 성공했고, 후일 다양한 스타일의 국내외 여성 록 보컬리스트들의 등장에 발판이 됐다. 그런 점에서 모리셋의 등장은 단순히 충격 차원을 넘어선 대사건이었다. 모국 캐나다에서 2장의 댄스-팝 음반을 내놓았던 아이돌 성향의 가수가 홀홀 단신 미국으로 건너와 고생하며 일궈낸 성공담을 바탕에 둔, 1990년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팝 음반으로 기록되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았으니까 말이다.

<재그드 리틀 필(Jagged Little Pill)>은 여러 면에서 그 무렵 인기 록(얼터너티브/모던 록) 음반들과는 음악적인 면에선 유사하지만 제작/기획 방식에선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여성 뮤지션의 놀라운 작업물이면서 아이돌-댄스 음악으로 데뷔했던 가수의 파격 변신 외에도 기존 주류 음악계의 치밀한 기획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수록된 모든 곡을 모리셋과 함께 작곡한, 이제는 팝/록 음악계의 거물급 프로듀서가 된 글렌 발라드만 해도 1980년대 마이클 잭슨, 포인터 시스터스, 폴라 압둘, 윌슨 필립스, 패티 오스틴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팝/댄스/R&B등 록 음악과는 거리가 먼 작업물을 내놓았던 인물이다. 게다가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린 첫 성공작은 마이클 잭슨의 No.1 히트곡 "맨 인 더 미러(Man In The Mirror)"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그드 리틀 필(Jagged Little Pill)>은 그 무렵 얼터너티브 록/모던 록 음악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 명곡 '유 어더나 노우(You Oughta Know)', '아이러닉(Ironic)', '핸드 인 마이 포켓(Hand In My Pocket)'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 특유의 목소리 꼬는듯한 창법을 접목시켜 음악팬들의 귀를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더군다나 얼터너티브 록과는 거리가 먼, 일반 팝/록 음악 작업으로 경력을 쌓아왔고 국내 가요 녹음에도 수차례 참여했던 세션 기타리스트 마이클 랜듀, 마이클 톰슨과 모던/얼터너티브 록 뮤지션들인 플리(레드 핫 칠리 페퍼스), 데이브 나바로(제인스 어딕션)의 연주를 한 음반에 담아낸다는 건 사실 쉽게 생각할만한 기획은 아니었다.

이 음반을 처음 발매했던 레이블이 팝스타 마돈나가 설립한 매버릭이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댄스-팝 성향의 마돈나와는 음악적으론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얼터너티브 록 음반이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리라곤 회사 창업주 마돈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심지어 매버릭의 창업 첫 발매/히트 음반 역시 얼터너티브 록 밴드 캔들박스의 데뷔 앨범이었다).

이듬해 열린 38회 그래미 어워드 4관왕 수상, 2003년 미국 롤링스톤 매거진이 뽑은 최고의 음반 500장(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중 327위 선정 등 비평가들의 연이은 극찬은 결코 <재그드 리틀 필(Jagged Little Pill)>에 대한 과분한 대접이 아니었다.

기대 이상의 대성공, 하지만 뮤지션에겐 큰 짐

이렇듯 상업적/음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앨라니스 모리셋의 미래 역시 장밋빛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워낙 큰 성공은 그녀에게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3년의 공백기를 거친 후 공개한 정규 4집 <서포우즈드 포머 인퓨테이션 정키(Supposed Former Infatuation Junkie)>(1998년)은 나름 괜찮은 작품이었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전작과의 비교를 통해 아쉬움을 피력했다.

결국 모리셋은 또 한차례 휴식 후 2002년이 되서야 5집 <언더 러그 스웹(Under Rug Swept)>를 내놓을 수 있었다. 그 뒤론 2004년 이후 사실상 4년 주기로 정규 음반을 내놓는 상황이라 지난 2012년 <헤이복 앤 브라이트 라이츠(Havoc and Bright Lights)>를 잇는 새 음반은 내년 정도는 돼야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여전히 해외 음반 시장에선 록 음악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장르지만 R&B/힙합, 그리고 여기에 영향 받은 다양한 팝 음악들의 득세에 밀려 예전 같은 힘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 음반의 20주년 재발매는 한동안 대중들이 잊고 있었던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향수를 되살려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냥 기억 저편으로 흘려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음반이 바로 <재그드 리틀 필(Jagged Little Pill)>이다.

덧붙이는 글 본인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앨라니스 모리셋 얼터너티브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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