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적인 하룻밤>의 한 장면.

영화 <극적인 하룻밤>의 한 장면. 각자 전 애인의 결혼식장을 찾은 두 남녀가 서로 잠자리를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 CGV아트하우스


취업난, 전세난, 여러 정치인의 헛발질 등으로 충분히 젊음을 누려야 할 청춘들이 많은 걸 포기하는 시대다. 결혼, 연애, 출산 등을 뒤로하고 오로지 하루하루 살기 위해 분투하는 청춘. 이들에게 사랑은 정말 말 그대로 낭비일까.

오는 12월 3일 개봉할 영화 <극적인 하룻밤>은 이 질문을 가지고 들어갔다. 이미 동명의 연극 원작이 대학로에서 누적 관객 22만 명을 동원했다. 이야기 자체만으로 일단 동시대 청년층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들의 전 연인이 서로 눈이 맞는 시련을 겪었으면서도, 그들의 결혼식에 '쿨하게' 참석한 두 남녀가 있다. 특수학교 기간제 체육교사로 일하는 정훈(윤계상 분)과 푸드스타일리스트 보조로 뛰는 시후(한예리 분)다. 이들은 만난 직후 급격하게 눈이 맞았다, 아니 몸이 맞았다. 이들의 전 여자친구(박효주 분)와 전 남자친구(박병은 분)가 서로의 경제 계급에 맞춰 일종의 정략결혼을 했다면, 정훈과 시후는 전 연인에 대한 복수심 내지는 충동적으로 '결합'한 경우다.

가볍게, 그리고 쿨하게?

 영화 <극적인 하룻밤>의 한 장면.

영화 <극적인 하룻밤>의 한 장면. 하기호 감독은 청춘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문제를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일부 젊은 세대의 연애방식을 녹이면서도, 그들이 왜 하룻밤 사이만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지를 코믹하게 그려냈다. 서로를 남친과 여친이 아닌 '몸친'으로 칭하는 정훈과 시후의 모습은, 술자리에서 익히 들어왔던 우리 주변 청춘들의 실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극적 재미를 위해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을 과장했지만, 모티브만큼은 현실적이다.

하룻밤의 섹스 파트너가 아쉬워 10칸의 커피 쿠폰을 핑계 삼아 기간제 연인이 된 두 사람. 이들의 모습이 재기발랄하면서도 씁쓸하다. 여기에 유부남이 됐지만, 공공연히 자신의 경제력을 내세워 시후에게 '세컨드'가 되길 요구하는 전 남자친구 준석(박병은 분)의 모습 역시 너무 현실적이라 불쾌하기까지 하다.

<극적인 하룻밤>은 이런 진상들과 지질함의 조화를 통해 재미를 담보했다. 로맨틱 코미디로서 갖춰야 하는 덕목을 잃지 않으면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넌지시 건드렸다. <라듸오 데이즈>(2008)로 장편 영화 데뷔를 알린 하기호 감독은, 지난 25일 언론 시사 직후 그 이유를 밝혔다. "일단 관객들이 영화를 재밌게 보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하 감독은 "비정규직과 청춘의 아픔을 전면에 드러내면, 너무 프로파간다가 될까봐 이야기의 하위로 숨겼다"고 설명했다.

등장인물이 추구하는 쿨함과 가벼움의 반복을 통해, 관객들은 진짜 사랑의 의미를 스스로 물어볼만하다. 이 정도면 감독이 의도한 전략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예리를 주목하라

'극적인 하룻밤' 한예리, 극적인 포복절도 27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극적인 하룻밤>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한예리가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극적인 하룻밤>은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책임지기 귀찮은 연애보다 하룻밤 '썸'이 더 편한 2030 남녀들의 연애이야기다. 12월 개봉 예정.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극적인 하룻밤>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한예리가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 이정민


<극적인 하룻밤>의 또 다른 수확은 한예리의 재발견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이미 여러 단편 영화에 출연할 때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그다. 2012년 영화 <코리아> 직후 장편 상업영화에도 모습을 꾸준히 드러냈던 한예리는, 어느새 관계자들이 탐내는 배우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리고 충분히 그 기대에 부응해왔다.

다만 다소 강한 캐릭터를 해왔고, 워낙 정극 이미지가 박혀있어 가벼운 연기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연기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관객에게 새로운 모습을 증명해보일 필요가 있었고, 마침 도전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예상 가능한 범주를 벗어나 한예리는 이번 영화로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인물형을 제시했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 속 여성 캐릭터는 일차원적이거나 전형적이기 쉽다. 그러나 '한예리'이기 때문에 보다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시후의 대책 없는 성격이 한예리를 만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밖에도 조복래, 박효주, 정수영 등 상대적으로 상업영화에서 장점을 발휘할 기회가 적었던 이들이 등장한 것도 반갑다. 이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 연기는 영화적 재미를 더하기에 충분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에는 여러 미덕이 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삼포 세대 청춘의 아픔을 전달하려는 교훈과 장르적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흔적이 보인다. 정훈과 시후가 서로에게 화내고 갈등을 빚는 과정 역시 모호하게 처리됐다.

동시대 청춘들의 다양성에 대한 면밀한 취재가 아쉽다. 젊다고 모두가 밥 먹고 섹스를 향해 달리지는 않듯, 일부 관객 입장에선 영화가 던지는 사건 전개가 낯설어 보일 수도 있겠다.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라도 '이들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끝까지 던졌으면 어땠을까. 단순히 비정규직이니 아프다고 눙치기엔, 지금 청춘의 고민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또 하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왜 이런 재기발랄함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줬을까. 청춘 남녀의 흔한 연애방식이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누구의 말마따나 이것도 '꼰대의 품격'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영화 <극적인 하룻밤> 관련 정보

제작 : 연우무대, 스토리지
배급 : CGV아트하우스
상영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 107분
개봉 : 2015년 12월 3일
극적인 하룻밤 윤계상 한예리 섹스 파트너 원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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