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출신의 테너 황건식 성악가 출연한 오페라 무대 포스터

인천 출신의 테너 황건식 성악가 출연한 오페라 무대 포스터 ⓒ 인천오페라단


오페라하면 떠오르는 첫 마디는 무얼까. '아, 너무 어려워', '황금 같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거길 같이 가자고?', '어디 외국 공연단이 들어왔나' 등일 것이다. 기자 또한 지역 신문사에서 문화부 3년 생활을 거쳤지만, 지금까지 오페라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 오페라 역사도 근 10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오페라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낯설다.

이렇게 대중들에게 익숙지 않은 예술 장르인 오페라 무대를 2대에 걸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황범구 인천오페라단 단장. 지난 24일 오후 2시, 인천오페라단 사무실에서 만난 황 단장은 그의 아버지가 켜켜이 쌓아 놓은 30여 년의 오페라 무대를 대중 눈높이에 맞춰 활성화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40세에 인생 엑소더스... 50세에 오페라에 생애를 바친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7년 설립된 '인천오페라단'은 인천 출신의 테너 성악가인 황건식씨가 1990년 '인천음악문화원'을 건립하면서 창단됐다. 이후 '인천소년소녀합창단'과 '인천오페라합창단'도 연이어 창단했다. 황 단장의 아버지 황건식씨는 당시의 문화예술의 암울한 분위기를 접하고, 인천을 예술의 도시로 키워보겠다는 의지로 자신의 평범한 삶을 40대에 완전히 바꿔 놓는다.

황건식 성악가는 서울대 농대,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이탈리아 아트 아카데미아(Arts Academia)를 졸업, 뒤늦게 소리 공부에 뛰어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인천 토박이로 1940년대 이후의 생활상이 그의 머릿속에 온전히 역사처럼 담겨있다. 그만큼 인천의 자긍심을 갖고 살아왔으며 누구보다 인천 예술을 발전시키려는 욕심과 열정이 넘쳐났다.

"아버지는 50세가 넘어 노래의 본고장 이탈리아에 유학해 4년간 전력투구하며 성악의 길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귀국 후 바로 오페라단을 인천에 창단하고 매년 그랜드오페라를 기획해 무대제작부터 콘서트, 합창, 오케스트라 등을 육성했습니다. 가산도 거의 탕진하다시피 전념했으니 아버지의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이해가 가시겠죠."

황 단장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덤덤했다. 그만큼 아버지는 넘을 수 없는 큰 산 그 자체였기 때문. 그는 아버지가 항상 강조하신 "겸허하게 마음을 비워서 젊은이들에게 소망을 품도록 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메시지를 노래를 통해 남겨주고 싶다"는 신념을 하루도 잊지 않았다고 전했다.

100회 이상 오페라 공연... 공공기관의 눈높이는 점점 작아져 아쉬움

 오페라 스태프 표제 중 황건식 성악가와 황범구 단장의 사진

오페라 스태프 표제 중 황건식 성악가와 황범구 단장의 사진 ⓒ 인천오페라단


황 단장은 지난 24일부터 예술회관에서 열린 오페라 무대 <라보엠> 홍보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보헤미안의 자유와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푸치니의 3대 걸작 중 최고로 손꼽힌다. 황 단장은 작품 구상에 바쁜 시간임에도, 요즘 하루하루 걱정만 쌓여갔다. 이유인즉슨 작년까지 시에서 지원해주던 예산이 대폭 삭감됐기 때문이다.

황 단장에 따르면 오페라 무대는 미술, 문학, 무대장치, 음악, 무용 등이 수반되는 종합예술로써 스태프 인력만 수백 명이 동원된다. 기획부터 홍보, 공연까지 과정이 모두 만만치 않은 장르이다. 예산부터 지원 부문까지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황 단장의 속사정이다.

인천오페라단은 지금까지 100회 이상의 각종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17번째 정기 오페라 공연과 더불어 합창단 무대, 전국 순회공연 연간 80회, KBS 열린음악회 메인, 공공기관 행사 초청 공연. 학교와 기업체 공연 등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황 단장의 아버지가 해온 것처럼 그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아버지의 이름을 쉽게 져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지역의 작은 콘서트 행사에 갔는데 모텔이 너무 허름하고 지저분해서 단원들한테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무대에선 화려한 의상에 내로라하는 노래를 부르고, 정작 지낼 곳은 한 칸 오두막 같은 곳이었으니…. 지금이야 웃고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옵니다. 그래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쳤기에 그 많은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힘이 되지 않았나 싶은 거죠."

황 단장은 행정기관의 지원 확충의 바람을 에둘러 표현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스케일이 큰 무대를 소화해내려면 그만큼 손과 발을 많이 내밀어야 하기 때문. 그러나 황 단장은 어려움을 겪고 보니까 자신의 위치도 보이게 됐다고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동안 몰랐던 관객들의 소중함과 지인들의 고마움도 새삼 알게 됐다는 그만의 깨달음이다.

황 단장은 서울로 집중되는 공연 포화현상과 대구 등지에서 벌이고 있는 오페라페스티벌 등에 대한 부러운 마음도 전했다. 다른 예술 장르도 그러하겠지만 오페라도 지역 속에서 더욱 시민과 만날 수 있도록 기관에서 문턱을 낮추게 하는 행정지원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끝으로 황 단장은 오페라가 예습 공부만 조금만 하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 공연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가 전하는 '오페라 쉽게 즐기기' 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해당 공연의 전곡 음반의 이해도를 높이고, 한글 대본을 구해 미리 감상해 보는 것. 이어 오페라 해설서가 있다면 작품의 시대 배경, 중요한 이슈와 사건들, 대강의 줄거리를 미리 알아두면 즐거움이 백 배 증가한다. 또 줄거리를 보면서 아리아, 중창, 합창 부분을 나눠 예상하면 공연의 재미가 올라간다. 교향악 등 순수한 연주용 악곡들은 악장마다 박수를 치지 않고 막이 끝날 때마다 갈채를 보낸다. 매우 감동한 경우 '앙코르', '브라보' 등을 외쳐도 무방하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17회 인천오페라단 정기 공연
12월 24~26일 오후 7시 30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황범구 단장 인천오페라단 인천음악문화원 테너 황건식 인천오페라합창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