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스펙터> 포스터 첩보물이 범람하는 시대, 그러나 007의 제임스 본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 영화 <007 스펙터> 포스터 첩보물이 범람하는 시대, 그러나 007의 제임스 본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 UPI코리아


2012년 개봉한 007시리즈 50주년 기념작 '스카이폴'은 역대 시리즈 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북미 흥행 3억불 돌파에 전 세계 흥행 수익 10억불을 돌파하며 007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샘 멘데스 감독은 007시리즈를 완벽하게 리부트 시키는데 성공하면서 3년 만에 선보인 새로운 시리즈 '스펙터'의 연출까지 맡게 됐다.

'스카이폴'의 가장 큰 매력은 이전 007시리즈에서 보여준 황당무계한 액션 도구들 (혹자들은 이런 장치가 007시리즈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없이 오히려 아날로그 장치들을 이용해 더욱 스릴 있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들을 선보여 007시리즈의 전통을 부활시켰고, 본드걸 없이도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새로운 느낌도 전달했다. 이것은 모두 탄탄하게 짜여진 시나리오의 구성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스카이폴'을 통해 느낀 감흥과 샘 멘데스-다이엘 크레이그 콤비의 연속이라는 기대감이 맞물려 '스펙터'는 올해 하반기 헐리웃 블록버스터 중 최고의 기대작으로 내심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전작 '스카이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이미지의 여배우 레아 세이두가 새로운 본드걸로 등장하는 점도 또 다른 흥미거리였다.

영화는 죽은 자들이 되살아난다는 암시를 던져주며 멕시코의 전통축제 '죽은 자들의 날'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축제에 가면을 쓰고 묘령의 여인과 로맨스를 즐기려는 듯 보였던 제임스 본드는 언제나 그랬듯 금세 자신의 임무를 즉시 수행하기 시작한다. 멕시코시티의 대형 축제를 배경으로 헬기 안에서 펼쳐지는 격투 장면은 영화 초반 몰입도를 높여준다. 위트 넘치는 액션이 중간에 가미되면서 흥분과 유머를 동시에 선사하며 영화는 헬기를 탈취한 본드가 자신의 타켓이 끼고 있던 반지를 쳐다보면서 영화의 전통적인 오프닝 크레딧으로 넘어간다.

샘 스미스(Sam smith)가 부른 주제곡 '라이팅스 온 더 월(Writing's on the wall)'이 전면에 흐르면서 007시리즈 특유의 역동적인 오프닝 크레딧이 전개되는데, 볼 때마다 주제곡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매치된다는 느낌이 어김없이 전달된다. '스카이폴'에서는 M(주디 덴치)의 과거와 연계된 비밀조직이 영화의 갈등을 선사하는데, 이번 '스펙터'에서는 제임스 본드의 과거와 연계된 조직 '스펙터'가 정체를 드러낸다.

예고편에서 볼 때는 '스펙터'라는 조직이 본드의 과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영화 전반에 걸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선사하지만, 정작 영화에서 보여지는 '스펙터'에 대한 설명은 어딘가 모르게 생략이 많이 된 듯 싶다. 특히나 영화 초반부 본드가 자신의 손으로 죽인 적의 미망인 루시아(모니카 벨루치)와 미묘한 로맨스를 펼칠 때에는 생뚱맞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우연히 '스펙터'의 회의에 참여하는데 '스펙터'의 보스 오버하우서(크리스토퍼 왈츠)가 어떻게 본드가 그 자리에 와 있는지를 알아챘는지도 설명이 불충분하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비약이 심한 듯한 전개가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전개되는 액션과 긴장감은 다니엘 크레이그 007 시리즈 전작들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다. 또한 전작보다 더 비중이 높아진 Q(벤 위쇼)의 활약상 및 첨단 무기의 활약도 기존 007시리즈와 차별점을 두면서 특유의 첨단 무기들이 선사하는 재기발랄함을 유지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스펙터의 최고 보스 오버하우서의 카리스마가 다소 약하다는 점이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오히려 열차 안에서 제임스 본드를 거의 보낼 뻔 했던 거대한 악당 미스터 힝스(데이브 바티스타)가 더 큰 긴장감을 전달한다. 또한 '스펙터'라는 거대조직에 잠입하는 과정이 너무도 손쉽게 펼쳐지는 것도 관객들의 기대감에 역행하는 설정이 되고 말았다.

'스카이폴' 못지 않은 긴장감을 기대했다면 이번 '스펙터'는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스카이폴'은 역대 007시리즈 중 너무도 유별나게 세공된 웰메이드 작품이었다. 애석하게도 '스펙터'는 역대 007시리즈와 비교해 볼 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매력과 재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명성이 오히려 부담이라는 독이 된 듯 보인다. 본드걸 레아 세이두도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MI6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는 설정도 영화 종반부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한다.

그러나 결론은 전작 '스카이폴'로 인해 '스펙터'는 가진 것에 비해 필요 이상의 욕을 먹는 영화가 돼버리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전작보다 스토리라인이 헐거워진 것은 분명하지만 블록버스터로서 '스펙터'는 충분히 매력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아쉬운 점은 이 영화가 다니엘 크레이그판 제임스 본드 무비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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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펙터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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