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당연한 일이고, 또 이치를 거스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들수록 원숙미가 더해가는 사람이 있지만, 노쇠해지는 기미가 드러나는 사람도 있다. 영화로 범위를 좁혀 보자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자이고 리들리 스콧은 후자다.

리들리 스콧의 신작 <마션>(The Martian)은 제법 쏠쏠한 흥행을 거두고 있다. 지난 8일 개봉한 이 영화는 16일 기준 24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우리 영화 <사도>의 610만 명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비슷한 시기 개봉한 <탐정 : 더 비기닝>, <인턴>에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리들리 스콧의 이름값에 비한다면 그다지 뛰어난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프로메테우스>, <카운슬러>, <엑소더스> 등 전작들과 비교하면 '그나마' 낫다는 데서 위로를 찾아야 할 지경이다.

리들리 스콧의 <마션>, 이전보다 낫기는 하지만...

 연달아 신통치 않았던 전작에 비해, 영화 <마션>은 분명 괜찮은 작품이다. 그러나 '무난함'에 빠진 이 영화는 어딘지 애매모호하다.

연달아 신통치 않았던 전작에 비해, 영화 <마션>은 분명 괜찮은 작품이다. 그러나 '무난함'에 빠진 이 영화는 어딘지 애매모호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먼저 영화 <마션>부터 살펴보자. 미국 작가 앤디 위어의 원작을 옮긴 이 작품은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사실 리들리 스콧은 그간 작품에서 탁월한 영상 감각을 자랑해왔다. 특히 화성의 사실적인 표현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화성 촬영은 요르단의 와디 럼에서 이뤄졌다. 그는 무인로봇 큐리오시티가 전송한 화성 사진을 토대로 장소를 물색하다가 와디 럼이 화성과 가장 비슷하다고 결론 내렸다는 후문이다. 또 화성을 빠져나온 와트니가 우주공간에서 멜리사 루이스(제시카 체스테인)와 도킹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볼거리를 빼면 무난한 수준에 그친다. 이야기의 뼈대는 간단하다. 식물학자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화성 탐사 중 사고로 낙오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그와 함께 탐사 임무를 수행했던 다른 우주인들은 그가 죽은 줄만 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그뿐만 아니다. 식물학 지식을 동원해 감자재배에 성공한다.

한편 NASA는 그가 생존했음을 발견하고 끝내 그를 구해 낸다. 리들리 스콧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 했나 보다. 와트니가 감자재배에 성공하는 이야기와 NASA의 천재들이 와트니를 구해내기 위해 머리를 짜내는 과정 둘 다 살리기 원했다는 말이다. 차라리 둘 중 하나만 취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렸으면 더 좋았으리란 아쉬움이 든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를 살펴보자.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우주공간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투쟁을 그린다. 이 영화에서 우주는 소름 끼치게 외롭고 언제 생명의 위협이 닥쳐올지 모를 공포감 가득한 공간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터스텔라>는 기약 없는 성간여행(인터스텔라)을 떠난 아버지와, 이런 아버지를 지구로 불러들이기 위해 과학자의 길을 간 딸 사이의 사랑을 그린다. 두 작품 모두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했지만, 중심은 '인간'이다.

그러나 <마션>은 어정쩡하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와트니는 외롭다. 그러나 그런 외로움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NASA의 천재들 역시 와트니를 구해낼 방법을 찾는 데 애를 먹지만, 끝내 그 방법을 발견해 내고야 만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와트니가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러다 보니 관객으로서는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다.

빛바랜 거장의 '이름값'

 영화 <마션>의 한 장면, 리들리 스콧은 분명 '배우 복'을 타고 난 감독이다.

영화 <마션>의 한 장면, 리들리 스콧은 분명 '배우 복'을 타고 난 감독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리들리 스콧이 SF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그의 1982년 작 <블레이드 러너>는 한동안 주인공 데커드가 복제인간인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에일리언>은 지금 다시 보아도 오싹하다. 그뿐만 아니라 극영화에서도 녹록지 않은 솜씨를 과시해왔다.

그는 1989년 작 <블랙 레인>에서 일본의 고속성장과 이를 시샘하는 미국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특히 이 영화가 그린 오사카의 밤거리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된 2019년 로스앤젤레스를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그러나 그는 <글래디에이터>를 정점으로 총기를 잃은 듯하다. <한니발>, <킹덤 오브 헤븐>, <아메리칸 갱스터>, <프로메테우스>, <카운슬러>, <엑소더스> 등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지만 이렇다 할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배우 복은 타고났다.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마이클 파스벤더, 러셀 크로, 크리스천 베일, 올랜도 블룸, 샤를리즈 테론, 덴젤 워싱턴 등 실로 훌륭한 배우들과 작업했으니 말이다. 주연 배우 마크 와트니 역의 맷 데이먼을 필두로 제시카 체스테인, 세바스찬 스탠, 케이트 마라, 제프 대니얼스, 숀 빈, 치웨텔 웨지오포 등 <마션>의 출연진 역시 쟁쟁하다. 그러나 연출자인 리들리 스콧은 놀랍게도 맷 데이먼과 제시카 체스테인을 제외한 다른 조연들의 존재감을 아예 없애 버린다. 또 예기치 않게 인종세탁 논란도 불거졌다.

원작에서 마크 와트니가 생존했음을 발견한 NASA의 과학자는 한국계 민디 박(Mindy Park)이고 인도계 뱅캇 카푸르가 와트니 구출 작전을 지휘한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 다르다. 민디 박이란 한국 이름은 그대로지만 캐릭터는 금발 여성으로 바뀐다. 뱅캇 카푸르는 더하다. 인종은 인도계에서 흑인으로, 이름도 뱅캇에서 빈센트로 바뀐 것이다.

사실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이런 인종세탁이 다소 불쾌할 수 있다. 그러나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말자. 소설은 할리우드의 마르지 않는 샘터다. 소설이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등장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야기 전개 자체가 바뀌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범죄를 예측해 미리 예방하는 미래사회를 그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타이틀 롤 존 앤더튼을 연기하는 배우는 할리우드의 대표 미남 스타 톰 크루즈다. 그러나 원작은 조금 다르다. 필립 K. 딕의 원작에 등장하는 존 앤더튼은 대머리 뚱보 중년남성이다.

또 존 쿠삭, 레이첼 와이즈 주연의 <런어웨이>는 빈발하는 총기사고에도 배상을 거부하는 총기회사의 음모를 다루지만 원작인 존 그리샴의 <사라진 배심원>에서 음모를 획책하는 장본인은 담배회사다. 새삼 <마션>의 인종세탁이 논란을 일으킨다니, 한국계 과학자가 영화에서 백인으로 뒤바뀐 데서 비롯된 불쾌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인종세탁 논란과 관계없이, 리들리 스콧은 이 작품 <마션>을 통해 아직 솜씨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의 이름값을 따져보자면, 무난한 작품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양산형 작품을 만들 바에야, 연출에서 손 떼고 제작자(Producer)나 총제작자(Executive Producer)의 자리에 앉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독교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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