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사과했다. 이날 담화에서 대통령은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고,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 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명운을 걸겠다고 결단했다. 대통령은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끓어오르는 비통한 심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상상해 봤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현실이 된 2년 후 간행된 국정교과서에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을 어떻게 기록할지를. 아마도 위와 같이 서술하고, 그 옆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대통령의 사진을 클로즈업해 배치하지 않을까요?

눈물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영국의 역사가이자 유엔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장을 지낸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기록자의 마음으로 왜곡되고 굴절된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과거의 사실이 무조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시선으로 해석한 사건만 역사적 사실이 된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카는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먼저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거듭 경고했습니다.

카의 주장처럼 박 대통령의 담화를 국정교과서를 집필하는 역사가가 기록할 경우 2014년은 팩트의 기록이 아닌 '기록자의 마음으로 왜곡되고 굴절된' 사실(史實)로 호도되고 맙니다. 이렇게 기록한 국정교과서로 배우는 후대의 아이들에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박 대통령이 어떻게 기억될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보기 드문 대통령의 눈물로 기억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시험 문제의 하나로 남을 뿐입니다.

역사는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 사실에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걸 전제해야 합니다. 그럴 때 현재의 문제를 해명하고 동시에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세워나가는 제대로 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가 명명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는 이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부터 세월호 참사를 지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르기까지 '왜?'를 제기하는 국민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부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정화 논쟁은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 대결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와 '왜?'를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 간의 대결입니다.

포스터가 던지는 메시지 '당신에게 국가란 무엇입니까?'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 포스터.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 포스터. ⓒ 시네마달


"저희는 나라를 이끄는 모든 어른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엄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고, 왜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야만 했는지에 대한 확실한 조사를 해 주시고, 보다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학교 정문에서 편지를 읽던 학생은 치솟는 감정을 견디지 못합니다.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가 대신 읽어냅니다. 이윽고 아이들을 손꼽아 기다리던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부모들이 퉁퉁 부은 눈으로 아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부둥켜안습니다. 이날은 세월호 참사 76일째인 2014년 6월 25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생존학생들이 첫 등교를 하는 날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영상단 다큐팀이 참사 이후 1년 4개월 동안 유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성스레 필름에 담은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의 오프닝 장면입니다.

영화는 세월호는 침몰했으나 진실을 침몰시키지 않으려는 필사의 안간힘을 오롯이 담았습니다. 영화는 평범한 엄마 아빠가 왜 국가에 맞서 싸웠으며, 국가의 민낯을 대면하고서도 다시 국가에 맞서온 시간들을 복기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우리에게 국가(엄밀히 말해 박근혜 정부)란 무엇인가?'라고.

이어 카메라는 배우 문소리의 내레이션을 따라 2학년 교실(현재 3학년 명예교실)로 가선 텅 빈 교실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한 남학생을 오래도록 비춥니다. 이 학생이 앉은 교실은 영화의 포스터가 됩니다. 포스터에는 영화의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단원고 교실을 정면에서 촬영한 <나쁜 나라>의 포스터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국민'과 '국가'의 관계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희생학생의 책상에 국화꽃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교실. 칠판은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과 우정으로 덮여 있습니다. 선생님 교탁도 시간표도, 게시판도 이전과 똑같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지만 교실은 비어 있습니다. 교실의 주인인 아이들만 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곳이 있습니다. 교실 정 중앙 꼭대기에 있는 태극기입니다. 생전의 아이들이 한 번은 크레파스로 꿈과 희망을 담아 그렸을 태극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태극기는, 이 기막힌 풍경을 만든 국가를 상징합니다. 영화 속 '보현 엄마'가 삭발한 채 "전 태극기가 진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싫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 권력을 가리킵니다.

'텅 빈 교실에 가만히 앉아,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카피는 밤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에게 국민들이 띄우는 편지입니다. 망각에 대항하는 기억의 약속입니다. 기억의 책임인 행동이 실천하는 만큼 역사는 기록되고, 기억한 만큼만 역사는 움직이고,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진상규명이 되는 날, 다시 만나 해원상생의 춤사위를 덩실덩실 추기 위한 기원문입니다.

'국민 말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이라는 타이틀은 발가벗겨진 대한민국을 가리킵니다. 단식 농성하는 유가족 옆에서 국악 공연하는 국회,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하는 유가족을 거들떠보지 않는 대통령, 그들만의 반쪽짜리 특별법 타결, 언제든지 찾아오라던 대통령의 말만 믿다 '경찰산성'에 갇힌 유가족의 모습 등은 괴물이 되어가는 국가의 모습입니다. 영화는 야만과 폭력으로 괴물이 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비켜가지 않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가능했던 세월호 진상규명의 시간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의 한 장면.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자식을 가슴에 묻으라고 하는데 저희들은 여기(가슴)가 아파서 묻을 수가 없습니다. 내 새끼가 죽었는데 80일이 지나도록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르는 우리들은 자식을 여기에 묻을 수 없습니다. 묻고 싶고, 잊어 버리고 싶은데 잊어 버릴 수도 없고, 묻을 수도 없습니다. 아빠니까, 엄마니까, 내 새끼니까."

'성호 아빠'가 새까맣게 탄 얼굴로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천만인 서명을 호소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찾은 엄마 아빠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서명을 받습니다. 카메라는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 국민들을 만나는 모습을 뒤쫓으며 '나쁜 나라'를 거부하는 대신 '좋은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를 실증적으로 기록합니다.

카메라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를 거부한 유가족과 진실의 이름으로 침묵을 깨고 망각과 맞서 싸운 국민이 만나 펼치는 '거리의 장정'을 촘촘히 담았습니다. 그 장면들은 진실이 가라앉지 않았기에, 잊히지 않기에, 잊을 수 없기에 글과 사진, 손 피켓과 촛불을 들고 '왜?'를 외치며 행동했던 국민들의 응원과 연대가 있었기에 유가족의 투쟁은 모진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친구 죽음의 진실을 밝히라며 국회까지 도보 행진한 1박2일, 특별법 제정을 위한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앞 농성, 530만 명의 국민이 동참한 특별법 서명,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진도까지 걸은 19박20일, 삭발한 머리로 시행령 폐기를 촉구한 서울까지의 행진 등은 모두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에 맞서 그 민낯을 목격한 유가족들이 국가에 거역하며 진실을 찾아 나설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국민'이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유가족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 온 모습도 담았습니다. '동혁 아빠'는 임·단협이 타결돼 월급을 많이 받았지만 꼬치 하나로도 고마워했던 '동혁'이는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떠난 후 처음 맞은 생일날 찾아준 아이의 친구들에게서 내 자식의 얼굴을 봅니다. 아침저녁으로 내 새끼를 눈으로 보고, 어루만지고, 살내음을 맡았던 '가족의 기억'은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나쁜 나라>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이유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의 한 장면.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우리는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한 영화는 "하지만 유가족의 투쟁으로 특별조사위원회는 만들어졌고 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시작했다"는 엔딩 자막을 통해 다시 한 번 진상규명을 향한 희망을 전합니다. 4·16 가족협의회는 지난 9월 14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21건의 피해자 조사신청을 했습니다. 그중 5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습니다.

중국 상하이 샐비지가 세월호 인양 업체로 선정됐습니다. 내년 봄에 인양을 시작, 6월 말까지는 인양을 마친다는 계획입니다. 가족협의회는 인양과정 공개와 인양 과정 참여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양의 전 과정을 공개하고 가족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9명의 미수습자 수습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은 세월호 침몰 직후 72시간의 골든타임을 중심으로 국가와 언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 작품입니다. <나쁜 나라>는 그들의 실체를 내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오는 29일 <나쁜 나라> 개봉에 맞춰 <다이빙벨>부터 다시 보길 권합니다. 얇은 옷을 걸치고 봄에 떠난 아이들이 춥지 않도록, 별빛 시린 겨울이 오기 전에 백만 명의 '국민'이 영화를 보며 밤하늘의 별들에게 따듯한 옷을 입혀주었으면 합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딧을 올리며 안산에서 생활하는 유가족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안산 중앙역 등에서 '진상규명과 온전한 선체인양' 서명을 하고, 시청 앞 시민열린공간에서 매주 '세월호 작은문화제'를 열고, 416기억저장소에서는 '기억과 순례의 길'을 떠나고, 매달 16일에는 '안산동행 0416 행동'을 함께 합니다. 진상규명을 향한 움직임은 쉼이 없었던 것입니다.

잊고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가슴 시린 시간들을 다시 소환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우리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다면, 불편함을 무릅쓰고 뼈아픈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그러고도 내가 바라는 정의롭고 '좋은 나라'가 가능하겠냐고. 그리고 답합니다. 진실이 가려진 세상의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라고. '세월호의 시대'를 아무 일 없다는 듯 살고 있다면 당신의 가슴은 폐허라고. 영화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날 아침 하늘은 기울었을 테고 친구들은 하나 둘 울었으리라 / 보고픈 엄마 아빨 불렀을 테고 어른들은 나직히 소리쳤었다 / 가만 가만 가만히 거기 있으라 / 가만 가만 가만히 거기 있으라 / 잊혀질 수 없으니 그리움도 어렵다 / 마음에도 못 있고 하늘에도 못 있다 / 잊으라고만 묻으라고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만"
- 가수 이승환 세월호 추모영상 '가만히 있으라' 중에서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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