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기자회견 현장.

지난 10일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기자회견 현장. ⓒ 부산국제영화제


시작은 봉만대 감독이었다. 그러니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을 하루 앞둔 9일. 그와 인터뷰를 미리 잡아놓았고, 그 기사를 끝으로 나의 모든 취재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 계획은 이준익 감독이 같이 밥이나 먹자며 봉 감독과 동행하면서 틀어졌다. 간단히 인터뷰만 하고 쉴 수 있겠다던 당초 예상보다 일이 좀 커진 셈이다.

해운대 소고기국밥 거리로 향한 우리는 봉만대 감독이 종종 들렀다던 '원조 할매 국밥'집을 찾았고, 단 10분 만에 셋이서 각자 국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전날 먹은 술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다음 코스 역시 봉만대 감독이 추천한 카페. 체인점이 아닌 직접 원두를 볶아 커피를 내리는 작은 카페였지만 커피 문외한인 내가 마셔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신선한 커피였다. 두 감독의 '엄지 척'에 카페 주인은 의기양양 "우린 갓 볶은 콩만 쓴다"며 서비스를 마다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부산에 머문 10일 동안 이 한 끼를 제대로 먹었던 기억이 없다. 매일 초저녁부터 마련된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지기 일쑤였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아픈 속을 부여잡고 오전 공식 기자회견이나 시사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는 끼니는 시사가 연달아 없다는 가정 하에 점심 한 끼뿐이었다.

첫 단편 영화 경험한 경수진..."내년에도 부산 찾고 싶어"

 배우 경수진이 부산국제영화제 AFA를 통해 단편 영화 데뷔를 알렸다. 사진은 SBS 단막극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 출연 당시 모습.

배우 경수진이 부산국제영화제 AFA를 통해 단편 영화 데뷔를 알렸다. 사진은 SBS 단막극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 출연 당시 모습. ⓒ SBS


이 한 끼니를 두고 영화제 기간 동안 몇 명의 영화인을 만났다. 우선 배우 경수진. 경수진은 AFA(부산영화제 아시아필름아카데미) 소속 학생들이 촬영하는 단편 영화를 위해 9월 30일부터 부산을 찾았다. <소희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소희 역을 맡은 경수진은 명계남, 조한선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간 두 편의 장편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경수진은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배운다는 마음으로 단편영화를 촬영했다"고 했다. 학생들과의 작업이기에 현장서 겪었던 여러 고충을 털어놓으면서도 그는 "내년엔 장편으로 꼭 부산을 찾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수수한 차림으로 만남 내내 환히 웃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더 빛나보였다. 참, 차기작도 이미 정해졌다. 국내 유명 공포 영화 시리즈물이고, 곧 촬영이시작되니 내년 초부터 스크린을 통해 경수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개막작 <주바안> 배우들의 소소한 콘서트

 부산영화제 기간 중 취재기자에게 한끼는 소중하다. 잠시 짬이난 사이 편의점을 찾았다. 따뜻한 라면 국물이 몹시 마시고 싶었다.

부산영화제 기간 중 취재기자에게 한끼는 소중하다. 잠시 짬이난 사이 편의점을 찾았다. 따뜻한 라면 국물이 몹시 마시고 싶었다. ⓒ 이선필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작은 장편 데뷔작을 내놓은 인도 출신 모제즈 싱 감독의 <주바안>이었다. 개막식 직후 이어진 리셉션 파티에서 여러 음식을 접시에 담고 대화를 나누는 주연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발리우드 영화의 새 흐름을 보여준 이들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어느 새 파티장 한 구석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에 모여 있었다.

음악 감독을 맡은 아슈토시 파탁의 연주에 맞춰 사라 제인 디아스 등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변에 둘러선 사람들 틈에서 쑥쓰러워하면서도 노래를 멈추진 않았다. 인도에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사라 제인 디아스는 기자 회견과 개막식에서도 노래를 불러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바이크 달려 내려온 김꽃비

 SNS상에서 '바이크 전도사' 별칭을 쓰고 있는 배우 김꽃비는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하려고 이틀간 바이크를 몰고 왔다. 돌아갈 때도 타고 갈 거다"며 바이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SNS상에서 '바이크 전도사' 별칭을 쓰고 있는 배우 김꽃비는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하려고 이틀간 바이크를 몰고 왔다. 돌아갈 때도 타고 갈 거다"며 바이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 유성호


배우 김꽃비를 4년 만에 만났다. 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영화제 전부터 수소문했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겠노라 답을 얻어 성사된 만남이다. 만나고 보니 이 사람. '바이크 전도사'답게 직접 애마를 몰고 이틀을 달려 영화제를 찾았단다. 인터뷰를 위해 사진기자가 혹시 바이크 복이 있는지 물었고, 흔쾌히 갈아입고 와서 촬영에 응한 그다. 독립영화계 여신이자 '트잉여'인 그녀를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함께 철지난 팥빙수를 퍼먹으며 인터뷰를 가장한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흔히 말하는 스타 배우 코스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김꽃비의 매력은 당당함과 소신에 있다. 여기에 연기력까지 갖추었으니 두 말 할 것 없다. 내년 영화제에서도 아마 난 그녀를 찾을 것이다.

독립영화는 여전히 분투 중

'한국독립영화의 밤' 행사에서 만난 김재한 감독은 한창 차기작 준비 중이었다. 맥주와 마른 오징어를 사이에 두고 그는 <오장군의 발톱>의 소셜 크라우드 펀딩 소식을 전했다. 좋아하는 희곡 작품 중 하나라 내심 반가워 했는데 "제작비가 아직 다 모이지 않았는데 십시일반 모으고 있다"며 그가 말했다.

이미 전작 <안녕, 투이>로 한국 사회 내 약자를 조망했던 그다. 베트남 이주 여성을 진지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담아낸 감독이 전쟁의 참상을 어떻게 그려낼까. 궁금증이 커졌다. 동시에 제작비 마련이 어려워 감독이 직접 동분서주 하는 모습이 열악한 독립영화계의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정창화 감독 "후배 위해 할 수 있는 일 다할 것"

 1928년생인 정창화 감독(사진의 중앙)이 부산영화제 기간에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임권택 감독이 그의 연출부로 일했고, 여러 후배 영화인들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 자리는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했고, 김동호, 강수연 등 많은 영화인들이 현장을 찾아 자리를 빛냈다.

1928년생인 정창화 감독(사진의 중앙)이 부산영화제 기간에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임권택 감독이 그의 연출부로 일했고, 여러 후배 영화인들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 자리는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했고, 김동호, 강수연 등 많은 영화인들이 현장을 찾아 자리를 빛냈다. ⓒ 이선필


앞서 말한 이준익-봉만대 감독과 저녁식사 이후 찾은 곳이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한 정창화 감독의 출판 기념회였다. 임권택 감독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그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모아 담은 책을 두고 많은 후배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간 영화감독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세대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차에 치러진 의미 있는 행사 중 하나였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등 원로를 비롯해 마침 영화제에서 <양치기들>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받은 신예 김진황 감독 등 신구영화인들이 현장을 찾았다. 정창화 감독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 하겠다"며 금일봉을 전했고, 큰 박수를 받았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며 동석한 봉만대 감독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영화 뒤풀이도 어색해 하곤 했는데 이렇게 분위기 좋은 행사는 처음"이라고. 이미 인터뷰는 안드로메다로 갔다. "차기작을 준비 중이니 그즈음에 합시다"라는 그와 여러 번 술잔을 부딪혔다. 10일 오전 3시 30분. 영화제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9일 진행된 부산국제영화제 '비전의밤' 행사. 이날 뉴커런츠상, CGV아트하우스 상등 주요 부문 시상식도 진행됐다. 전도유망한 신인 감독을 비롯해 영화계에서 주목해야 할 중견 감독들의 공로를 인정하자는 취지다. 우측에서 세 번째가 영화 <양치기들>의 김진황 감독.

9일 진행된 부산국제영화제 '비전의밤' 행사에서 뉴커런츠상, CGV아트하우스 상등 주요 부문 시상식도 진행됐다. 전도유망한 신인 감독을 비롯해 영화계에서 주목해야 할 중견 감독들의 공로를 인정하자는 취지다. 사진은 각 부문 수상자들. 우측에서 세 번째가 영화 <양치기들>의 김진황 감독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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