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을 넘게 화성에서 홀로 생활하는 마크 와트니는 내내 유머를 잃지 않는다.

500일을 넘게 화성에서 홀로 생활하는 마크 와트니는 내내 유머를 잃지 않는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아메리칸 조크'는 일종의 에피타이저다. 본론에 앞서 간단하게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은근히 데운다. 헐리웃 영화나 미드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한 미국인 특유의 이러한 유머는, 이른바 '빵 터지는' 유머를 추구하는 우리에게는 다소 시답잖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에서 역시 미국식 유머는 흔히 사용된다. 우주 미아가 되어버린 한 여자의 여정을 그린 <그래비티>도, 외계 행성에서 미지의 생명체와 조우하는 대원들의 이야기 <프로메테우스>도 그랬다. 영화 초반 주인공 일행이 치명적 사건에 휘말리기 전, 그들은 (여유 넘치게도) 서로 이런저런 농담들을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런 식의 '농담 따먹기'는 이후의 결정적 사건이 관객들에게 줄 충격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사전장치로 기능한다.

영화 <마션>은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재난을 다룬 SF 영화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작품 전반에 걸쳐 유머를 활용한다. 앞서 말한 에피타이저로서 그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촘촘하고 균일하게 유머를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흥미로울 수 있는 지점은, <마션>에서의 유머가 고독한 인물의 자기위안이자 스스로의 생존을 향한 절실함으로 작용하는 부분에 있다.

화성을 탐사중이던 NASA 아레스3 탐사대는 모래 폭풍을 만나 급히 화성에서 탈출한다. 이 과정에서 팀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낙오되고 NASA와 대원들은 마크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남은 마크는 식물학자로서의 지식을 이용해 기지에서의 생존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던 중 마크는 지구와의 교신에 성공하고, NASA는 마크를 구출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영화 <마션>에서 마크가 화성에서 혼자 생활하는 기간은 자그마치 1년 반 가량이다. 생존에 필요한 환경은 차치하고, 홀로 남은 자의 고독과 절망감을 견뎌내는 마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인간 승리다. 마크는 친절하게도 매일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브리핑하고, 화성을 떠난 동료들에게는 응답도 없는 농담을 내뱉는다.

마크는 원래 유난히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타입의 사람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원맨쇼' 야말로 그가 살기 위해 취할 수 있는(또는 취해야만 하는) 최선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물 생산기계 폭발로 화상을 입거나, 심지어 감자를 키우던 에어록이 통째로 날아가도 그는 어느새 어이없다며 미소를 짓는다. 절망스런 자신의 상황을 희화화는 그의 유머는 그렇게(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마크를 구하기 위한 NASA의 작전은 대중에 의해 힘을 얻는다.

마크를 구하기 위한 NASA의 작전은 대중에 의해 힘을 얻는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humor' 의 어원에 '기질, 성질' 이라는 의미가 존재하듯, 마크의 유머 속에 단지 농담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존을 동료들에게 전하지 않았다는 말에 육두문자를 서슴치 않고, 지지부진한 구출 작전에 분노를 숨기지도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된 마크의 스토리는 덕분에 전세계적 팬덤을 얻고, 대중의 관심은 마크를 구출해야만 하는 당위가 된다. 그는 화성에 혼자 남은 것과 동시에, 수십억 지구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스타가 된 셈이다. 그것도 본의 아니게, 아주 효과적인 리얼 다큐 버라이어티 방송을 통해서 말이다.

결국 영화 <마션>이 이야기하는 생존의 요건은 '과학적 지식'이기 이전에 인간적인 유머다. 생존을 담보하는 환경이 주어졌다 해도, 고독 속에 침잠해 유머를 잃은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날것으로서의 감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 당장 내 앞에서 들어줄 사람이 없다 해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농담을 던지고 화를 내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먼 바다 작은 섬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등대처럼, 그 유머는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가 닿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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