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로 시작해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할만큼 반향이 뜨거운 드라마 MBC <그녀는 예뻤다>는 특정한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하나같이 공분을 하는 캐릭터는 존재한다. 바로 민하리(고준희 분)다. 민하리는 여주인공 김혜진(황정음 분)의 가장 친한 친구다. 또한 김혜진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캐릭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할은 시청자들에게 좀처럼 예쁨을 받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민하리는 김혜진과 대비되는 캐릭터로 복잡한 가정사는 있지만 부자에 예쁘고 날씬하며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뒀다. 멋지고 당당한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가 남자 주인공인 지성준(박서준 분)에게 마음이 생기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게 변했다. 친구의 첫사랑을 몰래 좋아하고 있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추억의 물건을 이용해 지성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는 등, 선을 넘는 행동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먹는 그녀'는 과연 억울함이 없을까. 민하리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자.

 <그녀는 예뻤다>에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는 캐릭터가 된 고준희

<그녀는 예뻤다>에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는 캐릭터가 된 고준희 ⓒ mbc


한국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의 라이벌은 남자 주인공의 라이벌보다 훨씬 더 비호감일 확률이 높다. 남자 주인공의 라이벌은 시종일관 멋진 모습으로 여자 주인공과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지만, 여자 주인공의 라이벌은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하리는 엄밀히 말해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아니다. 김혜진은 지성준과 사귀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극 초반부터 지성준이 김혜진에게 해서는 안되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 악연과도 같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민하리가 지성준을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민하리가 가장 비난받는 부분인 '거짓말' 역시, 사실은 김혜진의 부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민하리는 자신에게 실망할까 두려워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 김혜진을 대신해 지성준을 만날 정도로 김혜진을 아꼈다. 게다가 김혜진의 부탁대로 '영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말하며 지성준과 다시 만나지 않을 핑계를 만들기까지 했다. 사실 호텔에서 우연히 지성준과 마주치지만 않았어도 민하리는 영원히 지성준과 보지 않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그런 민하리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사실 지성준이다. 민하리를 김혜진으로 착각해 잘해주기 시작한 것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사랑을 믿지 못했던 민하리에게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지성준은 단연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싸늘하고 차가운 지성준이 김혜진인 줄 알고 있는 민하리에게'만' 지나치게 친절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게다가 민하리는 지성준에게 마음이 갈수록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며 수차례 지성준과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물론 대부분의 노력은 망설임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독하게 마음먹고 김신혁(최시원 분)에게 결혼할 남자인 척 해달라고 말하며 지성준과 멀어지려고 했다. 김혜진의 비밀도 지키고, 자신도 지성준을 포기할 수 있는 아주 기발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하필 그 타이밍에 지성준이 갑자기 빗속에서 트라우마를 일으킨 탓에 그 계획 역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건 민하리 탓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성준은 민하리에게 더 잘해줬고 마음은 더 깊어져만 갔다.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안 되니까 마음인 것이 아닌가. 머리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본능적으로 끌리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민하리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물론 김혜진임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퍼즐조각을 훔쳐 지성준에게 건네며 호감도를 쌓은 행동은 결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실수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지성준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을 친구인 김혜진에게 쉽게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 자신의 좋은 친구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지성준을 좋아하게 된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그가 아직도 '김혜진인 척'하고 있는 상황인데, 처음에는 친구인 김혜진을 위해서, 이제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한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 두려운 마음에 그 말을 하기 힘든 갈등이 생기는 것 또한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해야 옳기는 하지만, 그 인간적인 망설임에 돌팔매질을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본인의 입장이라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일까.

민하리는 결국 김혜진을 위한 포석일 뿐이다. 결국 그는 지성준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나쁘지 않다. 자신도 어쩔 줄 모르는 첫사랑에 잠시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이 이 캐릭터를 욕하고 있지만, 그는 악인은 아니다. 단지 너무나도 인간적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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