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더 비기닝 포스터

▲ 탐정: 더 비기닝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 흥행세가 멈출 줄 모른다.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거장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낸시 마이어스의 <인턴>이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탐정: 더 비기닝>과 <사도>의 기세도 그 못지 않다. 앞선 <암살>, <베테랑>의 쌍천만 흥행을 잇는 두 영화의 선전은 한국영화가 적어도 국내에서는 할리우드 작품과 견줘도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과 10여 년 전 상당수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사투를 벌였던 걸 떠올려본다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스크린쿼터제는 유명무실한 제도나 다름 없다. 아직도 한국영화와 관련한 기사의 댓글란에선 스크린쿼터제와 관련한 맹목적인 비난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와 전혀 다른 것이다.

지난 2006년 7월 1일부로 기존 146일에서 73일로 줄어든 스크린쿼터제가 시행 중(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9조 1항에 따라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연간 상영일 수의 5분의 1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하여야 한다)이지만, 상당수 상영관에서 한국영화의 상영일수는 100일을 훌쩍 넘어서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10월 8일 현재 한국영화 상영일수 100일을 넘어선 국내 상영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즉 잇따른 한국영화의 흥행은 결코 스크린쿼터, 즉 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에 힘입은 게 아닌 것이다.

이 같은 한국영화의 선전 뒤엔 제작·배급·상영 등을 수직계열화한 대기업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CJ, 롯데, 쇼박스 등으로 대표되는 영화계의 공룡들이 지난 2012년을 전후해 한국영화계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2012년 이전까지 할리우드 외화가 확보한 스크린수에 비해 대형 한국영화가 차지한 스크린수는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75% 정도였는데 이것이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변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시리즈나 <어벤져스>시리즈 등이 1000개 내외의 상영관을 잡는 게 일반적이었던 상황에서 <도둑들>(쇼박스), <광해>(CJ 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CJ 엔터테인먼트), <관상>(쇼박스) 등이 1000개의 스크린을 훌쩍 넘어섰고 2014년 최고의 화제작 <명량>(CJ 엔터테인먼트)은 무려 1587개의 상영관을 홀로 독차지했으니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짐작할만 하다.

상영관을 다소 적게 잡더라도 상영일수는 길게 가져가며 흥행을 이어갔던 과거의 방식과 달리 초기부터 상영관을 대대적으로 확보해 물량공세로 나가는 현재의 전략은 대형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대작과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토양을 조성했다. 하지만 한 편에선 가뜩이나 설 곳 없는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대형 한국영화가 빼앗고 있다는 비판도 들려온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으나 한국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강자독식의 풍토가 영화계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은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CJ가 내놓은 또 한 편의 흥행작

탐정: 더 비기닝 무능력한 가장을 연기할 때조차 잘 관리된 체형을 보여주는 권상우

▲ 탐정: 더 비기닝 무능력한 가장을 연기할 때조차 잘 관리된 체형을 보여주는 권상우 ⓒ CJ 엔터테인먼트


<탐정: 더 비기닝>은 앞서 서술한 한국 영화계의 풍토를 최전방에서 이끌고 있는 CJ의 배급작이다. 10월 7일까지 216만 여 명의 관객을 모아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 있는 이 영화는 <사도>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631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박스오피스 11위부터 20위까지 10편의 영화가 확보한 스크린 수를 모두 합쳐야 겨우 이에 근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나 많은 수치다. <탐정: 더 비기닝>보다 7일 하루 동안 3만 여 명의 관객을 더 모은 <인턴>도 이보다 14개 적은 617개 스크린을 차지했으니 스크린 배정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사실 <탐정: 더 비기닝>은 꽤나 잘 만들어진 영화다. 전형적인 형사버디물로 두 주인공의 아기자기한 연기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추리극의 재미가 유쾌하게 어우러졌다. 강우석의 <투캅스>시리즈 이후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형사버디영화로 배급사에서도 어찌나 자신감이 넘쳤는지 '더 비기닝'이란 제목을 이마에 박고 나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권상우와 성동일이라는 다소 가볍다는 선입견이 들 수 있는 배우를 기용했음에도 오락물로서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와 매끄러운 연출로 관객들의 평가도 상당히 우호적이다. 할리우드엔 <리썰웨폰>, <러시아워> 등 성공적인 형사버디 시리즈물이 나온 바 있었지만 한국에선 <투캅스>, <조선 명탐정>시리즈 말고는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었던 만큼 영화팬들의 기대가 상당하다.

뻔하지만 잘 만들어진 팝콘무비

탐정: 더 비기닝 우려를 딛고 형사버디영화의 교범을 보여준 성동일과 권상우

▲ 탐정: 더 비기닝 우려를 딛고 형사버디영화의 교범을 보여준 성동일과 권상우 ⓒ CJ 엔터테인먼트


추리소설 장르에선 익히 알려진 트릭을 사용하고 있지만 영화에는 거의 적용된 바 없었던 결말은 관객들의 구미를 자극하기 충분하고,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캐릭터에 잘 녹아들고 있어 무난한 관람이 될 것이다. 따져보면 허술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의문점이나 생각할 점이 특별히 남지 않는 후련한 팝콘무비라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주역인 두 캐릭터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과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의문점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 아내와의 관계가 불안한 데서 오는 긴장감까지 지루해질만 하면 세 가지 상황을 리볼버 권총의 실린더를 돌리듯 교차하며 전개시켜 나가는 솜씨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상당부분을 이끌고 가는 이유노(조복래 분)라는 인물의 무게가 다소 가벼울 수 있는 부분도 그의 캐릭터 색깔을 강화해 극복하는 노련함도 보인다. 온갖 클리셰로 뒤범벅되어 있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오래된 기법들을 이만큼 잘 활용한 영화도 드물다는 건 분명하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표정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요컨대 <탐정: 더 비기닝>은 잘 만들어진 뻔한 영화다. 역시 CJ의 영화인 <성난 변호사>와는 전반적인 흐름과 몇몇 에피소드, 결말 등에서 유의미한 유사점까지 있어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마치 같은 부품을 두 영화에 나누어 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이는 영화가 더는 예술의 영역이 아님을 보여주는, 다시 말해 잘 만들어진 공산품에 가깝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 공산품은 태평양 건너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공산품과도 견줘볼 만한 듯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의 기분은 참으로 미묘했다. 한국영화계의 왜곡된 생태계를 만든 주범이 도리어 한국영화계의 자존심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게 비단 나 혼자일까. 당신은 과연 한국영화계가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탐정: 더 비기닝 결코 화목하지 않았던 부부생활을 보여준 두 커플(왼쪽부터 권상우, 서영희, 이일화, 성동일)

▲ 탐정: 더 비기닝 결코 화목하지 않았던 부부생활을 보여준 두 커플(왼쪽부터 권상우, 서영희, 이일화, 성동일) ⓒ CJ 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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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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