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한 장면.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배다른 가족'은 불행할까? 적어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린 이들은 불행하기 십상이었다. 불륜을 저지른 부모는 자식의 상처가 되기 일쑤였고, 형제들은 서로 죽일듯 다투며 극의 갈등을 고조시키는데 기여하지 않았나. 그런데 사실 평범한 가족도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오죽했으면 일본 배우이자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을 두고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로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을까.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말을 듣는다면 아마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등을 통해 그는 미숙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족 구성원을 묘사해왔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출품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세 딸을 버린 아빠, 그에 절망해 집을 나가버린 엄마. 남겨진 아이들은 부모가 남긴 집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아빠의 부음을 듣고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배다른 막내 동생을 만나, 자기네 집으로 데려온다. 네 자매의 본격적인 성장기의 시작이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배다른 막내 동생을 데려오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프레젠테이션 초청작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나가사와 마사미가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이복자매의 존재를 알게 되는 세 명의 자매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프레젠테이션 초청작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나가사와 마사미가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이복자매의 존재를 알게 되는 세 명의 자매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 유성호


분명 막장 요소가 있는데 영화는 그것들을 영리하게 빗겨갔다. 원작인 동명 만화 역시 부모의 부재 이후 이야기를 다룬 만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를 해치지 않은 채 은은하게 자신의 색깔을 채워나갔다. 감독은 흔히 생각하는 극적 요소를 절제하며, 최대한 네 자매의 삶 가까이에 다가갔다. 이 불완전 가족의 또 다른 가능성을 위해.

책임감 강한 맏언니 코우다 사치(아야세 하루카 분)와 철없어 보이는 둘째 코우다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분)와 셋째 코우다 치카(카호 분), 속 깊은 막내 아사노 스즈(히로세 스즈 분)은 일본의 유명 관광지이기도 한 바닷마을 카마쿠라를 터전 삼아 사는 이들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이들의 일상이 채우고 있다. 그러니까 같이 요리하고, 매실을 따며, 직장생활과 연애에 대해 얘기하는 등이다.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기에 다퉈도 금방 화해할 수 있다. 부모로부터 '독립당한' 자신들의 처지를 알기에 상처를 주고받아도 금방 화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림으로 치면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수채화다. 강렬한 원색으로 보는 이의 감정을 휘두르진 않지만 은근하게 관객의 마음을 설득한다. 네 자매가 한데 모여 사는 일상 혹은 각자의 직장이나 학교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은 그 자체로 관객들에겐 잔잔한 위로로 다가갈 법 하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물론 이 위로는 '괜찮아 다 잘 될거야' 같은 무책임한 토닥거림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언니들에겐 상처일 거라며 괴로워하는 스즈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건네는 맏언니의 말이나, "아버지의 옛날 모습에 대해 알고 싶다면 언제든 몰래 자신에게 들으라며 웃어 보이는 동네 카페 주인아저씨의 모습을 보자. 상대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한 뒤 건네는 이런 진솔함이 이 영화의 힘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가족이란 공통된 소재로만 묶기엔 아쉽다. 담백하게 써내려간 일기를 한 장씩 넘기며 자신을 쓰다듬듯, 영화는 일상의 언어를 통해 관객에게 치유의 감동을 전하는 경지까지 나아간다.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 우리의 일상도 곧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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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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