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경없는 아이들> 바흐만 고바디 감독

영화 <국경없는 아이들>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 ⓒ 유성호


전 세계에서 국가 없는 유일한 민족.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쿠르드족임을 늘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해왔다. 영화 <나라 없는 국기>와 <국경의 아이들>로 부산영화제를 찾은 그가 3일 <오마이스타>와 만나 한국 영화계,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털어놨다. 인터뷰는 해운대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진행됐다.

두 작품 중 하나는 연출, 다른 하나는 제작을 맡았다. <국경의 아이들>은 무장 이슬람 단체인 IS에 맞서는 파일럿 나리만과 여가수 헬리 루브의 삶을 다룬 일종의 픽션 다큐멘터리다. <나라 없는 국기>는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IS에게 쫓겨 온 쿠르드족 난민을 대상으로 문화 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직접 영화를 찍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다.

"정치영화, 원치 않지만 영화 이면에 정치가 있다"

둘의 공통점은 폭력과 억압을 반대하거나 이겨 내는 사람들이 담겼다는 것. 사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일관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취한 말들의 시간>(2000)에서 그는 이라크 전쟁 속에 사는 국경 지대 아이들의 비극을 그렸고, <거북이도 난다>(2005)에서도 쿠르드족의 실상을 진중한 시선으로 풀어냈다. 그 시선이 <나라 없는 국기>와 <국경의 아이들>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국경의 아이들>은 애초에 영화가 목표는 아니었다. (시리아 코비니 지역) 난민 캠프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갖게 된 변명이랄까. 캠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교도소 같은 곳이다. 가보면 실감할 거다. 학교, TV, 책도 없이 100만 명의 아이들이 머물고 있다. 일종의 교사로서 그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 같았다.

2년 전부터 그림과 사진 촬영, 영화 촬영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에게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길 권했다. 직접 기록하는 거다. 처음엔 상업영화로 알아봤는데 예산이 너무 많이 필요했고, 그럴 바에야 우리만의 정서를 심을 작품을 하자고 결론 내렸다.

결과물이 나왔을 때 모든 선생과 아이들이 울었다. 헤어질 때란 걸 예감한 거지. 우리의 작업은 끝났지만 아이들이 계속 자신의 가능성을 이어가길 원한다. 그들의 카메라가 총과 칼보다 얼마나 더 가치 있고 중요한지 알리고 싶었다."

 영화 <국경없는 아이들> 바흐만 고바디 감독

ⓒ 유성호


쿠르드인인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감독. 혹자는 정치적으로 너무 민감한 주제만 다루는 거 아니냐며 그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아티스트로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내 영화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아일란 쿠르디(최근 터키 해변에서 사망한 3세의 난민 아이로 쿠르드족 출신)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중에 여기저기 미디어에 노출되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거의 없다. 발화 기회도 없고. 나 역시 쿠르드인이기에 우리의 역사와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가 담길 수밖에 없지. 사실 정치가 곧 영화의 이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이나 미술 등 문화를 통해 비극을 지우려 하는데 사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 문화 중요성...엘지나 삼성보다 훨씬 위대하다

이야기는 한국의 영화제로 넘어갔다. 지난 2005년 전주영화제 심사위원 자격으로 처음 내한한 그는 이후 부산영화제의 단골손님이 됐다. <반달>(2006), <코뿔소의 계절>(2012) 등으로 영화제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거북이도 난다>(2005) 등은 일반 한국 관객에게도 잘 알려졌다.

그는 "요즘 신작 준비로 바쁘지만 부산영화제에서 초대해서 두말없이 달려왔다"면서 "주변 다른 나라와 달리 부산 관객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많이 느낀다. 영화제를 성장시킨 모든 스태프를 존경한다"고 애정을 나타냈다. 이어 20주년을 맞이한 영화제에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최근에 한국 관계 당국이 영화제에 지원을 잘 안 한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얼마 전에 중국도 갔는데 거긴 정부에서 지원을 엄청 한다더라. 한국 영화엔 영혼도 있고, 캐릭터도 살아 있는데 왜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기자들이 많이 노력해달라.

삼성이나 엘지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문화다. 이를 등한시하는 건 실수다. 그래서인지 요즘 인상 깊은 한국 영화를 찾기 힘든 거 같다. 주위에서 말하길 배급(독과점)의 문제도 있다는데, 영화의 질이 과거에 비해 훌륭하지 못한 거 같다. 문화 영역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영화 <국경없는 아이들> 바흐만 고바디 감독

ⓒ 유성호


그는 (작은 나라라도) 국가의 고유성을 인정하며,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게 핵심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국 중심주의를 추구하며 해외원조를 하는 국가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정부 등이 또 다른 국가의 상황을 바꾸려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우리에게 총과 폭탄을 파는 이들이다. 서로를 죽이게 해놓고 돕자는 거? 마치 게임 한 번 하자는 태도 같다. 그래서 어떤 형태의 원조 기관도 믿지 않는다. 현재 남북한 상황에도 우려가 크다. 우리의 미래가 어찌 될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이곳이든 아프리카에서든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언제까지 이 바보 같은 비즈니스를 계속해야 하나. 2005년에도 이 말을 한 거 같은데 변한 게 없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냄새가 나는 거 같다."

그리고 남은 말들
17살 때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쿠르드TV의 제안을 받고 자신이 사는 도시 곳곳을 찍곤 했다. 국가 없는 사람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불안 속에서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 돌아보면서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굳이 먼 외부를 찾을 필요 없다. 모든 아이디어는 자신 안에, 주위에 있다. 나와 친구, 가족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면 되더라. 자신을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화가나 음악가처럼 내 작품에 내 영혼을 반영하는 게 목표다. 둘러보면 세상엔 비극이 참 많다. 특히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비극이 많다. 작품을 통해 너무 힘들진 않게, 너무 울지만은 않게 담고 싶었다. 현실이 비극인 건 모두가 알지만 그건 나중에 설명하면 되잖나. 제대로 알기만 하면 된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부산국제영화제 바흐만 고바디 IS 이슬람 아일란 쿠르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