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로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 최종 목적지가 해운대 쯤이어도, 오래걸린다.. 하고 푸념하던 판인데, 아, 이 열차가 밤새 달려 도착하는 곳은- 반대편 남도의 끝자락, 순천이었다!! 오늘 내로 도착은 할까?

▲ 해운대로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 최종 목적지가 해운대 쯤이어도, 오래걸린다.. 하고 푸념하던 판인데, 아, 이 열차가 밤새 달려 도착하는 곳은- 반대편 남도의 끝자락, 순천이었다!! 오늘 내로 도착은 할까? ⓒ 이창희


벌써 스무해가 흘렀다는 얘기다. 새파란 스물의 실험실 막내가 하늘같은 고참 박사 선배에게 과제 미팅을 부탁하고 부산행 기차에 올랐던 그 해의 이후로. 그 새파랗던 막내는-여전히 그 시간의 어딘가 언저리를 헤메고 있으나-더 이상 막내가 아니고, 누구에게도 '짐'을 대신 맡아달라 말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그 사이 영화제는 이름이 바뀌었고 (PIFF에서 BIFF로), 남포동의 좌판에서 번쩍거리는 해운대의 근사한 건물주가 되었다. 게다가 부모들의 싸움까지 겹쳐서 힘들다던 사춘기도 '씨게' 견뎌내었으니, 무조건 박수를 보내야 하겠지? 화이팅!

2일 업무를 마치고 부랴부랴 해운대로 향했다. 포항역에서 출발하여, 느릿느린 남도를 따라 움직이는 무궁화호 열차의 종착역이 '순천'이란 것을 알고는, 과연 오늘 내로 순천에 도착은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을 품고 기차에 올라탔다(별게 다 걱정이다.) 반짝이던 황금의 들판과 함께 출발한 여정은 해운대역에 가까워지며 점차 수줍은 붉은 빛으로 물든 채 바다와 이별하였고, 개막일에 맞추어 심통을 부리던 '어제의 폭풍우'와는 모르는 사이라는 듯 짐짓 딴청을 부리는 오늘의 날씨를 보니, 레드카펫에서 옷 매무새를 추스리던 배우들의 얼굴이 겹쳐져 안쓰러웠다.

어쨌든, 해운대다. 영화제의 시간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울게 만든 <이웃집 토토로>

스물 BIFF의 첫 시작은.... 토토로, 되겠습니다!!! 내가 스물이었던 그 시간쯤에, 나를 위로하던 그 덩치큰 요정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위로하게 될까? 야외 상영관의 왁자지껄한 소란마저 반갑다.

▲ 스물 BIFF의 첫 시작은.... 토토로, 되겠습니다!!! 내가 스물이었던 그 시간쯤에, 나를 위로하던 그 덩치큰 요정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위로하게 될까? 야외 상영관의 왁자지껄한 소란마저 반갑다. ⓒ 이창희


올해 영화제에서 내가 고른 첫 영화는 야외상영관에서 왁자하게 즐기는 <이웃집 토토로>이다. 개막식이 열린 야외 상영관은 주위로 대로가 위치해서인지 계속 왱왱거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까지 영화제에 끌어들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삼삼오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몰려든 많은 부모 관객들은 마음껏 소리지르고, 웃고, 박수를 치며 토토로를 즐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웃집 토토로>... 올해 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1988년 작품이니, 1996년생인 영화제의 성년식을 축하하러 이웃집 오빠의 푸근함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있으려나?

'5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자매 (사츠키와 메이)가 순수한 시절, 그들의 눈에만 보이는 자연의 존재들과 함께 그려나가는 부러운 성장기는 언제 다시 보아도 큰 울림을 준다. 영화내내 흐르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따스한 사랑에 이미 마흔을 훌쩍 넘긴 오늘의 나도 그들을 처음 만났던 스물 언저리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토토로에게 환호성을 쏟아내는 아이들의 달뜬 반응과 함께 상영을 즐기다보니 어느 덧 싸늘해진 가을의 밤바람이 영화의 끝과 함께 어김없이 현실로 돌려 놓는다. 그래서였나? 수도 없이 다시 보는 토토로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울게 만들었던 것이?

누가 뭐라 하든, 영화제는 우리가 만들어온 것

스물이 된 부산영화제는 '제대로 즐기는 우리가' 챔피언! 해운대 바닷가를 지키는 영화제 무대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팬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 그들을 저기에 있게 한 '동인'이 무엇이든, 당신들이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 스물이 된 부산영화제는 '제대로 즐기는 우리가' 챔피언! 해운대 바닷가를 지키는 영화제 무대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팬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 그들을 저기에 있게 한 '동인'이 무엇이든, 당신들이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 이창희


올해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스무살의 '제대로 된' 성년식을 맞이하고 있다. 사춘기를 힘들게 넘기느라 그랬는지, 안팎으로 삐그덕거리던 영화제는 스물의 해에 접어들자마자 이대로 성년식을 치를 수는 없다고 결심한 듯 모양을 갖추어 갔다. 오늘 저녁 도착하여 아직은 제대로 즐길 수는 없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동안 관객의 퇴장로 양쪽으로 나란히서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자원봉사자들의 활기를 보니 스윽 마음이 축제화 된다.

누가 뭐라고 하든, 부산국제영화제는 진정으로 참여하고 즐기는 우리가 만들어온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즐기자! 영화제가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느라, 오늘이 올까를 걱정하던 여러부운~ 얼른 부산으로 오세요! 벌써부터 전 세계에서 몰려든 영화팬들을 보니, 갓 스물이 된 이 처자는 앞으로도 쭈욱~ 멋지게 커나갈 것 같습니다!

나에게 올해의 부산국제영화제는, 폭신한 토토로의 손을 잡은 채 등장했다. 멋진 드레스를 챙겨 입은 채 아직은 어색한 화장을 수줍은 미소로 숨겨보지만, 처음 신어본 높은 구두에 뒷꿈치가 자꾸 다치는 소녀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녀에게는 이웃집 신령님 친구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전세계에서 모여든 '우리'도 있다. 그러니, 그녀의 앞날에 부디 더 이상의 방황은 없기를 기대한다.

화이팅, 성년이 된 부산국제영화제여!


BIFF 2015 부산국제영화제 이웃집 토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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