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는 2005년 <왕의 남자>로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 그다지 좋은 흥행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준익 감독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흥행대박이 날 것 같다. <라디오 스타>(2006), <즐거운 인생>(2007), <님은 먼 곳에>(2008) 등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이번 <사도>는 조짐이 좋다. 역시 이준익은 사극이 특장(特長)인가 보다.

영조의 '그림자', 사도세자

 영조의 '그림자', 사도세자

영조의 '그림자', 사도세자 ⓒ 쇼박스


2.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갈급한 욕구를 가졌지만, 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극단적인 두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부딪히면 도대체 어떤 결과를 낳을까? 이준익의 <사도>는 바로 그 해답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조(송강호 분)의 아버지 숙종은 강렬한 자의식의 소유자다. 권력욕으로 똘똘 뭉쳐 자신의 아내인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렸다. 장희빈은 영조의 이복형인 경종의 생모다. 경종은 14세 때 생모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도했다. 그러한 충격적인 경험이 치유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요절케 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비록 친모는 아니지만 8살의 어린 나이에 이복형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에 죽는 것을 지켜본 영조의 정신적 내상 또한 상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영조는 출신 성분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상민 출신의 궁녀도 아니고, 천민 출신으로 궐내의 허드렛일을 하던 무수리였다.

화려한 가문 내력을 가진 사대부 출신 양반 관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영조에게 천한 무수리 소생이라는 열등 콤플렉스는 상상하기 어려운 자기모멸감을 주었을 것이다. 영조는 병약한 경종이 후사 없이 요절하면서 세자(世子)가 아닌 세제(世弟)로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경종이 붕어하기 전 병석에 있을 때 어의들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대비가 보낸 게장과 생감을 먹은 적이 있다. 역시 어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잉군(영조)이 지시하여 인삼, 부자를 쓴 적이 있다. 우연인지 진짜 독살인지는 몰라도 경종은 얼마가지 않아 세상을 떴다.

그런 연유로 세상 사람들 중에는 영조가 병중에 있는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했다고 믿는 이들이 많았다. 영조는 억울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정통성이 없는 왕이라며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몸서리쳤다. 영조의 생애는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와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동생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일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사도세자(유아인 분) 역시 아버지 영조와 닮은꼴이다. 영조 나이 42세에 얻은 늦둥이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랐다. 그러나 영조가 사도세자를 앞세워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면서 부자 간의 관계가 사정없이 틀어져 버렸다.

영조가 대리청정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자신은 형을 죽이고 집권할 만큼 권력에 눈이 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또 신하들의 충성심을 떠보기 위해서 사도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양위(讓位)소동을 여러 차례 벌이고 난 직후의 일이다.

영조는 사대부 관료들에게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학문과 예법을 숭상하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관리해 왔다. 영조 내면의 심리는 이러했을 것이다.

'나는 비록 무수리 자식이지만, 이렇게 왕 노릇 잘하잖아. 나 이복형님 죽인 적 없어. 권력욕도 없어. 그러니까 나 좀 알아줘!'

그러나 오로지 사대부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공부하고 예절을 중시하는 깐깐한 성격의 아버지 영조와 달리, 아들 사도세자는 기본적으로 학문보다는 무예에 관심이 많았고, 그림과 음악에 조예가 있는 자유분방한 기질이었다. 영조는 그런 사도세자가 마뜩찮았다.

"공부와 예법은 국시다. 일국의 세자인 네가 지금 그 따위 칼 장난이나 하고 개 그림이나 그리고 수호지 같은 잡서나 읽을 때냐?" - 영화 <사도> 중

4.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모습 중에서 남에게 보여주기 싫거나 부끄러운 혹은 자신도 마주치기 싫은 모습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의 창고에 깊숙이 처박아버린다. 이것을 융심리학에서는 '그림자(shadow)'라고 한다.

이성이 아닌 동성 중에서 괜히 주는 것 없이 미운 대상,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상대하기 싫은 밉상은 나의 그림자라고 보면 틀림없다. 문제는 나도 싫은 나의 모습이 가까운 가족, 그것도 자식을 통해 나타날 때다.

아비의 성정을 많이 닮은 아들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그림자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사이가 좋을 때는 보이지 않던 그림자가 사이가 벌어지면 자신을 사로잡아 버린다.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일상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꼬장꼬장한, 합리적이고 완벽주의 성향(*이것은 영조의 자아측면이다)의 영조에게는 뭐든지 대충대충, 설렁설렁인 것 같은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성향(*이것은 영조의 그림자 부분이다)의 세자가 미워 죽을 판이다. 그림자인 세자의 대님 하나만 풀어져도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영조에게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형식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대리청정 자리에서 세자가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거나 우물쭈물하면 분노가 폭발한다. 눈앞에 뵈는 게 없어진다. 신하들 앞이라도 개의치 않고 가차 없이 세자에게 무안을 주거나 결정을 번복해 버린다.

심지어 숙종대왕의 능으로 참배를 가는 길에 트집을 잡아 수행하던 세자를 쫓아 보낸 적도 있다. 비가 오는 것도 세자의 탓이라니 사도세자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세자 네놈이 덕이 없으니, 가뭄에 허덕이는 삼남에 내려야할 비가 한성에 내리질 않느냐?" - 영화 <사도> 중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은 바늘만 슬쩍 갖다 대도 곧장 '뻥!'하고 터져버리는 법이다. 자신도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영조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듬어 안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내치는데도 세자가 반항하진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는다. 없앨 수도 없다. 용수철처럼 눌린 그림자는 언젠가는 자신의 몸에 응축된 이상의 탄성으로 튕겨져 나오게 마련이다.

아버지 영조의 '따뜻한 눈길 하나와 다정한 말 한마디'가 그립기 짝이 없는 세자는 비통하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고, 아버지와의 소통을 갈망하는 세자의 억눌린 감정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분출한다.

"아버지가 대체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언제부터 자식으로 생각했단 말이요?" - 영화 <사도> 중

세자는 울화증이 악화된다. 세자는 원래 정신병의 소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서 증세가 악화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세자는 마음속의 화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주위의 닭이나 짐승들은 물론이고 주위의 나인이나 의관, 역관 등을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자신의 행실을 비판한 후궁 경빈 박씨마저도 죽였다. 어떤 때는 나인의 목을 베어 환관들에게 보여줄 정도로 세자의 병세는 심각했다. 심지어는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고 칼을 들고 아버지의 처소로 가려는 시도까지 했을 정도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역사적인 팩트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 신화의 비극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목마른 두 사람은 이렇게 극단을 향해 치달았다.

왜 하필 '뒤주'에 가둬 죽였을까

 영조에게 뒤주는 심리학적으로 '자궁회귀'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조에게 뒤주는 심리학적으로 '자궁회귀'의 상징이기도 하다 ⓒ 쇼박스


5.

소론의 후원을 받았던 경종이 죽고, 영조는 노론들의 지원으로 왕이 되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탕평책을 썼지만, 내심으로는 노론에 발목이 잡혀 노론으로 편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하는 아버지 영조를 제치고 소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자, 노론 측에서 가만있지 않았다. 노론인 영조 밑에서 대리청정 중에도 이 정도라면, 세자가 임금이 되면 노론을 내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버지 영조의 미움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심할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 세자. 게다가 세자는 심각한 정신질환까지 보이고 있지 않은가. 노론은 사도세자를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임금의 처소에 칼을 들고 난입하려 했다면 그것은 대역죄다.

노론 측에서는 나경언이라는 자를 시켜 사도세자를 역모죄로 고변하게 했다. 쉬쉬하며 뒤에서만 수근대던 세자의 행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정국의 핫이슈가 되었다. 특히 한 달 후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가 남편 영조에게 아들 사도세자를 죽일 것을 권유하면서 파국이 가까워졌다. 영빈은 영조에게 울면서 고했다.

"세자의 병이 깊어 바라는 것이 없사오니 소인이 차마 이 말씀을 못하올 일이로되, 성궁(영조임금)을 보호하옵고 세손을 구하여 종묘사직을 편안히 하는 것이 옳사오니 대처분을 내리소서." - <한중록>

6.

영조는 격노했다. 즉각 사도세자를 불렀다. 영조는 백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세자에게 칼을 던지며 명령했다.

"세자는 용포를 벗고 이 칼로 자결하라!" - 영화 <사도> 중

세자는 이마를 땅에 찧어 피를 흘리며 백배사죄했다.


"아바마마! 살려주소서. 제가 잘못했사옵니다. 개과천선 하겠사옵니다."
"할바마마. 아비를 살려주시옵소서!" - 영화 <사도> 중

겨우 11살인 세손(정조)까지 구명에 나섰다. 그러나 영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속 자결을 명하던 영조는 '세자를 폐하고 서인으로 삼는다'는 전교를 내리고, 세자를 가두라고 했다. 곧 이어 뒤주가 도착하고 영조는 거부하는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둬버린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역모죄로 죽인다면 '자신은 역적의 아비가 되고, 세손은 역적의 아들이 되니', 그를 피하기 위해 자결을 명했다고 치자. 폐세자하고 서인으로 강등시켜 어딘가에 귀양을 보내거나 유폐(幽閉)시키면 될 것을 왜 하필이면 뒤주에 가두어 죽이려한단 말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영조는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이지 않고 자결하라고 명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세자를 살려서 어딘가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 그 자리에서 굶겨 죽여 후환을 없애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나로서는 이러한 방법이 영화 속의 대사처럼 '대명률(大明律)'이나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법률규정을 건드리는지의 유무까지는 알지 못한다).

어쨌거나 영조는 아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뒤주에 가둬서 말이다. 원래 뒤주는 곡식을 저장하는 세간이다. 그런데 영조에게 뒤주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가 아니다. 영조에게 뒤주는 아들을 생매장시키는 무덤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도구다. 영화에서 영조가 뒤주 위에 잔디로 떼를 입히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7.

다른 한편으로 영조에게 뒤주는 심리학적으로 '자궁회귀'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래 자궁회귀는 엄마의 자궁 안의 양수에서 편안히 헤엄치던 그리운 태아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무의식적인 회귀본능을 말한다. 그러나 영조에게서 뒤주는 그러한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인 자궁회귀가 아니다.

'세자 네 놈이 세상에 잘못 나왔으니, 자궁으로 돌아가는 게 마땅하다!' 전적으로 의식적이고 강제적인 자궁으로의 퇴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사도세자에게도 무의식적인 자궁회귀의 본능이 있다. 영화에서 사도세자는 툭하면 '토굴'을 파고 그 안에서 굿판을 벌인다. 굿판이 벌어지는 동안에 그도 무당의 박자에 맞춰 춤을 추거나 북을 두드리기도 한다. 어떤 때는 세자 스스로 토굴 안에 있는 나무로 짠 '관' 속에 들어가 누워 있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상식적으로 보면 기행(奇行)이지만, 사도세자의 자궁회귀 본능을 잘 설명해 준다. 사도세자에게는 '토굴'이나 '관' 역시 '뒤주'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신비하고 아늑한 자궁을 상징하는 동일한 도구들이다. 특히 세자는 생모인 영빈 이씨의 손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중전의 양자로 입적하여 궁궐의 법도에 따라 유모들의 손으로 키워져서 어머니 품이 더욱 그리웠을 것이다.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영조의 후궁인 숙의 문씨가 사도세자를 상시로 모함하면, 영조는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조건 세자를 꾸짖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세자가 영조가 지켜보는 앞에서 죽어버리겠다고 우물로 뛰어든 적도 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여기서 '우물'은 '뒤주' "토굴' '관' 등과 마찬가지로 돌아 가야할 대상으로서의 자궁을 상징한다.

"그런 제가 저도 싫습니다"

 할아버지의 욕구를 충족 시킬 능력도, 의사도 없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비해 어린 정조는 그런 능력과 의사를 모두 갖춘 사내다.

할아버지의 욕구를 충족 시킬 능력도, 의사도 없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비해 어린 정조는 그런 능력과 의사를 모두 갖춘 사내다. ⓒ 쇼박스


8.

영화에서 청나라 왕자가 생일선물로 사도세자에게 보낸 개가 나온다. 개는 충직함의 상징이다. 이유를 묻지 않고 주인에게 순종한다. 사도세자는 이런 개를 무척 좋아한다. 심리학적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적 본능을 돌보는 것을 상징한다. 의식적인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아버지 영조에 비해 사도세자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능에 충실한 세자는 자신을 형식적인 예법의 테두리 안에 가둬 놓으려 하는 아버지 영조와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세자는 의대증(衣帶症)이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옷을 입기를 싫어하고, 한번 입기라도 할라치면 수십번을 다른 옷을 가져오라고 강박적으로 나인들을 채근했다. 맘에 들지 않느다면서 옷을 태우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세자는 이렇게 겨우 입은 옷은 또한 갈아 입는 것도 싫어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심리학적으로 옷은 세속적인 권위나 특권 혹은 마술적인 힘을 상징한다. 반대로 옷을 벗는 것은 순수한 자연성의 회복을 의미하거나 세속적인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사도세자의 의대증은 형식과 예법을 강조하는 현실로부터, 또 아버지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내면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궁도장에서 과녁을 향해 잘 명중을 시키면서 활을 쏘던 세자가 자신의 어린 아들인 세손(정조)이 보는 앞에서 하늘을 향해 화살을 날려 보낸다. 이러한 행위 역시 과녁이라는 정해진 틀이 아니라 저 자유로운 창공을 향해 맘껏 날아가고 싶은 세자의 심정을 상징한다.

여기서 화살은 대님 하나도 제대로 못 맨다고 질책하는 아버지 영조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항이요,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9.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아들 정조가 보는 앞에서 허공으로 화살을 날려보낸 사도세자가 아들에게 묻는다.

"너는 공부하는 것이 좋으냐?"
"네 좋습니다."
"뭐가 그리 좋으냐? 할아버지에게 인정 받는 것이 좋으냐?"
"네! 그런데 그런 제가 저도 싫습니다."


어린 세손의 대답이 당돌맞다. 그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가득찬 할아버지의 콤플렉스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콤플렉스 덩어리인 할아버지의 욕구를 충족 시키지 못하는 또 다른 콤플렉스 덩어리인 아버지 사도세자의 심리도 궤뚫고 있다.

할아버지의 욕구를 충족 시킬 능력도, 의사도 없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비해 어린 정조는 그런 능력과 의사를 모두 갖춘 사내다. 할머니가 아버지를 죽이라고 고발하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죽음을 수수방관하는 이 '미친' 세상에서 세손은 영리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인정받고 싶어 안달난 두 사람의 극단적 갈등의 한복판에서 중재역을 자임하는 세손의 중용적인 지혜가 슬프도록 경이롭다. 내가 보기에 이번 영화 <사도>의 주제는 바로 세손의 이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제가 저도 싫습니다!"

10.

동양사회에서 용은 남성(아들)을 상징한다. 또한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도세자는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아들 정조를 낳기 전에 태몽으로 용꿈을 꾼다. 기쁨에 들뜬 사도세자는 화선지에 용을 그린다. 그리고는 용그림을 들고 할머니 숙빈 최씨와 어마니 영빈 이씨 등이 있는 자리로 달려가 그들 앞에서 환호작약한다.

"제가 용꿈을 꿨어요. 아들을 낳을 거예요. 기뻐하세요!"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은 "귀중한 그림이오니 부채로 만들어 잘 보관 하겠습니다!"하고 말한다. 이 부채는 나중에 뒤주에 갖혀 죽게된 사위인 사도세자를 위해 홍봉한이 살짝 뒤주 안에 넣어준다. 뒤주 안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목이 마른 사도세자. 그는 이 부채를 이용해 자신의 오줌을 받아먹다가, 용그림을 보고는 비참한 신세를 자각하고는 대성통곡한다.

영화에서 용은 남성과 왕권을 동시에 나타내는 중의적인 상징물이다. 훗날 성인이 된 정조(소지섭 분)가 왕위에 오르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문근영 분) 앞에서 이 부채를 들고 부채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사도 세자 자신은 왕권을 잡고 용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들' 정조는 '왕권'을 잡았음을 상징하는 춤이다. 사도세자는 아들 정조를 통해 자신의 원한도 풀고,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것을 용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추는 춤을 통해 보여준다.

영조가 내린 시호 '사도'

 영조가 내린 시호 '사도'

영조가 내린 시호 '사도' ⓒ 쇼박스


11.

사족1 : 이준익 감독은 부채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영화 <왕의 남자> 마지막 부분에서도 주인공 공길(이준기 분)과 장생(감우성 분)이 부채춤을 추며 줄타기를 하면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사도>에서의 부채춤은 아들을 통한 현세에서의 화려한 부활을 상징하고, <왕의 남자>에서의 부채춤은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부활의 의식이라는 차이가 있다.

사족2 : 나는 영화 <사도>를 보면서 송강호의 원숙해진 연기에 다시 한 번 감탄했고, 이미 물이 오를대로 오른 유아인의 연기에도 찬탄했다. 인원왕후 역을 맡은 김해숙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카메오처럼 말미에 성인이 된 정조역으로 잠시 나온 소지섭도 유감없는 존재감을 발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영화의 유일한 미스 캐스팅은 문근영이 아닐까 싶다.

혜경궁 홍씨가 어떤 인물인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남편을 죽여야 했던 여인, 아들에 의해 친정 아버지를 비롯한 친정식구들이 몰살을 당하는 것을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다. 남편 사도세자가 죽고 50여 년을 더 살았고, 아들 정조가 요절한 뒤에도 15년을 더 살아내야 했던 비극의 주인공이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문근영의 천진난만해 보이는 동안으로는 어림없는 역할이었다.

특히 국립극단의 연극 <혜경궁 홍씨>(2014)에서 혜경궁 역을 맡아 그녀의 한많은 일생을 탁월한 연기로 절절하게 표현해 냈던 연극배우 김소희의 연기가 오버랩 되면서 더욱 씁쓸해졌다. <사도>의 옥의 티였다.

사족3 : 영화를 보면서 영조의 긴 재위기간이 떠올라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31살에 왕위에 올라 83세에 세상을 뜨기까지 51년 7개월간 통치했다. '아들을 잡아먹은 왕'이라는 소리가 그냥 들리지 않는다. 영조의 부친 숙종도 45년 10개월간 통치했다. 숙종 역시 아들 경종의 요절에 분명 책임이 있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와 그의 손자 건륭제도 60년 이상을 통치한 사람들이다. 현재 태국의 푸미폰 국왕은 69년 동안 왕위를 지키고 있으며,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영국 역사상 가장 긴 63년째 왕위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재위기간이 길다고 좋은 것 만은 아닐 텐데...

사족4 :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곳은 창경궁 문정전이라고 한다. 나는 한때 옛 창경궁 터에 자리한 건물의 '창경궁 안의 뜰이 내려다 보이는 서재'에서 몇 년간 일한 적이 있다. 멀리 나무와 건물에 가려 서재에서 문정전이 바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문정전 쪽을 가리키며 비극의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동료들과 얘기를 나눈 기억이 새롭다.

사족5 : 영화 <사도>가 히트를 하면서 사도세자와 그의 시대를 다루는 글들이 넘쳐난다. 어떤 이는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물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사도세자는 그냥 광기어린 살인자였을 뿐이라고 냉소하는 이도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영정조 시대의 왕조사에만 관심을 기울여, 당시의 민중들의 고초에 무관심한 세태를 통탄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반응들이다. 수백 년 전의 일을 오늘의 잣대로만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노릇이니 한편으로는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열정이 학문적인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족6 : 사도(思悼). 생각할 사, 서러워할 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영조가 내린 시호인 '사도'는 죽은 아들에게 내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와 화합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낸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서러워'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개인 페이스북과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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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심리학자. 의학자) 고려대 인문 예술과정 주임교수. 융합심리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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