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스는 주체적이지만, 결국 남성에게 의존한다.

줄스는 주체적이지만, 결국 남성에게 의존한다. ⓒ 워너브라더스


아내와 사별한 후 적적한 삶을 이어가던 노인 벤(로버트 드 니로)은 우연히 접한 IT 기업의 시니어 인턴 채용 공고에 지원, 입사하게 된다. 회사의 30세 여성 대표 줄스(앤 해서웨이)의 비서 역할을 맡게 된 벤은 그녀에게 매 순간 적절하고 현명한 조언을 건네고, 덕분에 줄스는 기업의 CEO이자 아내와 엄마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70세 시니어 인턴과 30세 여성 CEO라는 영화 <인턴>의 투톱 캐릭터 설정은 실로 전략적이라 할 만하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나이 든 직원을 회사에서 내보내야 한다거나, 어린 데다 여성이기까지 한 CEO는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힘을 갖는 사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영화 <인턴>이 불러모으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대와 성별에 대한 일반적 관념을(그것도 아주 보란 듯이) 역행한다. 이미 은퇴한 지 한참인 백발의 벤(로버트 드 니로)은 IT 스타트업 기업에서 인정받는 인턴 직원이 되고, 젊은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는 남편에 어린 딸을 두고도 창업 1년 만에 벤처 신화를 이룬다.

줄스의 남편은 아내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잘 다니던 직장을 기꺼이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는데, 심지어 그는 주부 우울증을 겪고 외도까지 저지른다.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로맨틱 홀리데이>, <왓 위민 원트> 등 여성을 위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 온 '여성 시니어'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페미니즘 강박이 의심될 정도다.

 줄스와 벤은 멘티와 멘토이이면서도 여성과 남성이기도 하다.

줄스와 벤은 멘티와 멘토이이면서도 여성과 남성이기도 하다. ⓒ 워너브라더스


영화 초반부, 내내 주체적인 태도를 보이는 줄스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한다. 하지만 벤이 줄스의 생활 속에 들어오면서 그녀의 능력 뒤에 숨겨진 결함들이 발견된다. 1년을 함께한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 밥 먹듯 야근하는 비서의 노력에는 관심도 없다. 이러한 줄스의 문제를 지적하고 조언하는 벤의 모습은, 회사에 노인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적확한 증거다. 그리고 여기까지의 줄스는, 여성이기 이전에 그저 조금 서툰 청년 CEO일 뿐이다.

영화 <인턴>이 갖는 한계는 바로 '여자 줄스'를 그리는 지점에 있다. 줄스는 부하 남자 직원들과의 술자리에서 남자를 싸잡아 조롱하는 한편, 남편의 외도는 가정에 소홀했던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실수를 바로잡아 주는 벤은 줄스가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어른이면서 또한 남자다. 줄스는 분명 주체적이고 유능한 여성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녀에게서 '개저씨'와 '의존적 여성'의 모습을 발견한다. 과음 후 속을 게워내면서 벤이 내민 손수건을 받아 쓰는 줄스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건 그래서였다.

<인턴>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70세 인턴 벤의 활약상은 기대 이하다. 그의 연륜은 회사 업무와 무관한 줄스의 뒤치다꺼리에 공공연히 활용되고, 그저 시의적절한 조언을 건네 줄스가 깨우침에 다다르게 도울 뿐이다. 결국 이 영화는 제2의 삶을 살게 된 70세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명한 인생 선배 벤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한 젊은 여성 CEO의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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