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올해가 20주년인데 앞으로도 몇 백 년은 더 가는 영화제를 위해 함께 만들고 지키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힘든 시기고,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하는 게 맞지 않나." 배우 강수연이 밝힌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직을 수락한 이유다. ⓒ 이희훈


배우 강수연이 스무 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전격 살림꾼 역할을 자임한 그를 두고 영화계에선 정치권력의 외압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한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하는 분위기다.

그간 기자회견 등에서 "이 역시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함"이라며 당연직 수락이 배우로 오래 가고 싶은 진짜 목표와 연결돼있음을 강조해 온 그다. 자세한 내막과 속생각이 궁금했다. 영화제 업무로 바쁠 무렵 부산 영화의 전당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주어진 시간은 약 30분. 강수연 집행위원장과의 대화 전문을 공개한다.

"힘든 시기고,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하는 게 맞지 않나"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코앞에 두고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은 정신 없이 바빴다. 인터뷰에 주어진 시간은 30여분이었다. ⓒ 이희훈


- 우선 집행위원장 직의 수락 이유가 궁금하다. 이미 여러 차례 하마평에 올랐지만 고사해왔는데 올해 받아들였다. '월드스타 1호'인 강수연에게 '배우로서 첫 영화제 집행위원장'이라는 또 다른 수식어가 붙게 됐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나 마찬가지니 (이에 관련한 기록은) 거의 모든 게 처음일 수밖에 없지. 내가 집행위원장직을 맡았다지만, 안성기 선배는 여전히 영화제 부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하신지 오래 됐다. (배우 안성기는 지난 2005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직을 맡았다. - 기자 주)

본격적으로 공동집행위원장 직 제안이 온 건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님이 그만 두신 해(2010년)부터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 분들에게 요청이 갔을 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떤 직책을 갖기보단 영화인으로 참여하는 게 즐거웠지. 워낙 영화제가 잘 돌아가고 있고 다들 잘하고 있는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 마음이 바뀐 배경이?
"날 아끼는 지인과 식구들은 말렸지. 영화제라는 게 잘될 때 들어가서 맡아도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려운데 올해처럼 말이 많고 시끄러운 때 들어간다고 하니까. 지금까지 배우로 살아왔는데 안 하는 게 맞지 않냐는 말도 들었다. 그걸 반대로 생각해봤다. 이처럼 영화제가 어려울 때 내가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간단한 논리다."

- 당연직을 맡는다는 건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제 예산 삭감, 감사원 특별 감사 등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인 걸 잘 알텐데, 그런 부담마저 져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영화인으로서 부산영화제는 꼭 필요하다 생각한다. 우리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제영화제를 갖고 싶다는 영화인들의 욕심이 컸었다. 올해가 20주년인데 앞으로도 몇 백 년은 더 가는 영화제를 위해 함께 만들고 지키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힘든 시기고,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하는 게 맞지 않나."

원칙 지키면서 만만해지기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영화제를 하는 한 외부의 흔들기는 계속될 거다. 부산만 겪는 게 아닌 전 세계 영화제에서도 똑같이 겪는 문제기도 하다." ⓒ 이희훈


- 칸, 베를린 등 유수의 영화제들은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영화제가 오래 가려면 결국 정치적 압력 등에서 자유로운 독립성이 핵심이다. 최근 부산영화제가 <다이빙벨> 상영 이후 외부 압박에 독립성의 위기를 맞는 모습이다.
"안타깝지. 올해가 내부적으로 시끄러웠지만 이런 일은 사실 매년 있었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도 압박이 있었다. 그걸 견디고 부산영화제만의 색깔과 원칙을 가지고 꿋꿋하게 해왔기에 해외 영화인들에게 빠르게 인정받았다고 본다. 그게 무너지는 순간, 영화제 존폐의 위기가 온다고 생각한다."

- 타국의 압박이라는 건 결국 영화제 상영작품에 대한 것일텐데, 그간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영화계의 상징적인 보호망 역할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정치적 망명을 해서 떠돌아다니는 감독, 목숨마저 위태로운 감독들도 초대했고, 자국의 검열로 상영 금지된 작품도 개의치 않고 부산영화제에서 틀어왔다. 영화제는 영화로만 바라봐야 한다. 그밖에 어떤 요인과 상황도 적용하면 안된다. 이게 부산영화제가 20년간 지켜온 원칙이다.

물론 지역 사회 및 정치와 전혀 무관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본연의 확실함을 지킨다면 서로 소통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상대로 영화를 모아오잖나. 작품마다 다 사연이 있다. 쉬운 작품이 없더라. (독립성에 대한) 위기의식은 매년 있었다."

- 강수연 집행위원장에 대한 지지와 우려가 동시에 있다. 외부 압력이 불거지는 이 때 스스로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줄 필요는 없는가.
"오히려 만만해야지. 이젠 손님이 아닌 안주인이니까. 손님이 편하게 다가오게 하는 게 내 역할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외압은 별로 못 느끼는데 언론에서 자꾸 외압이라 하더라. 영화제에서 다양한 영화를 트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사회 이슈를 다루든, 종교성이 강하든, 예술성이 짙든, 이 모든 게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영화제지. 이런 걸 종합해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영화제의 마당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하는 한 외부의 흔들기는 계속될 거다. 부산만 겪는 게 아닌 전 세계 영화제에서도 똑같이 겪는 문제기도 하다."

"영화제 하는 한 외부의 흔들기 계속될 것... 전 세계 영화제 똑같이 겪는 문제"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외부 압력이 불거지는 이 때 스스로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줄 필요는 없는가라는 질문에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은 "오히려 만만해야지, 이젠 안주인이니까"라고 말했다. 책상 위에서는 그 안주인의 싸인이 적힌 서류 뭉치가 많이 있었다. ⓒ 이희훈


- 강수연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1회 때부터 헌신한 모습을 꼽는다. 당시 해외 게스트 의전도 하면서 부산영화제의 외연을 넓히는데 기여했다는 평이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게 불신이었다. 부산에서 국제행사를 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과연 될까, 뭘 가지고 해외시장을 공략할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걸 극복하는 게 큰 숙제였지. 1980년 초, 내가 운이 좋아 한국영화가 아직 해외에 잘 안 알려졌을 때 세계영화제를 경험했다. 어린 마음에 '우리도 이런 국제영화제가 있으면 좋겠다'는 갈증이 생겼다.

그걸 부산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영화인 모두가 함께 나선 거다. 내 일처럼 단결한 게 부산영화제의 힘이다. 올해도 영화제가 어렵다고 하니 한국-세계 영화인들이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나. 해외 게스트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자발적으로 다들 부산에 온다더라. 엄청난 감동이었다. 우릴 바라보는 기대치가 높아졌구나, 정말 잘 해야겠다고 한 번 더 느꼈다."

- 1997년, 2회 때였나. 이회창 등 대권주자와 여러 정치인들이 부산영화제 무대에 오르려다 영화인들이 몸으로 막아 무산된 적도 있다. 그때 현장에 있었다고 들었다.
"(잠시 생각) 그렇지. 그뿐만 아니라 여러 사건들이 많았지..."

- 1회 당시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은 걸로 알고 있다. 옷차림도 화제가 됐었는데.
"(웃음) 잘 기억이 안 난다. 작년까진 손님의 입장으로 참석해서 여러 옷을 입었는데 올해는 맞이하는 입장이라 고민된다. 근데 옷차림보다 더 고민스러운 건 영화제에 대한 장기 계획이다. 좋은 영화를 트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그 외에 젊은 영화인들을 교육하고 아시아 지역의 작가를 발굴해 그들을 세계에 소개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이건 1~2년의 경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진행해온 아시아영화학교(AFA, Asian Film Academy)도 벌써 11년째다. 여기 출신 중 세계 영화제에서 상 받고, 자국 영화 시장을 주도하는 이들이 꽤 있다. 이게 사실 더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올해 영화제를 잘 끝내고, 이후의 장기 계획을 짤 예정이다."

-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혹시 직접 영화제를 겪으며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너무 많다. 부산영화제에 게스트로 참석하면서 한꺼번에 한 장소에서 다양한 영화인들이 모인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다. 또 관객과 직접 부딪힐 수 있는 행사여서 좋았다. 올해 우리가 준비한 '관객과의 대화' 행사가 360개 정도다. 전 세계 최다더라. 그만큼 관객과 거리를 좁히겠다는 거다."

"상처? 아마 받은 수도 있겠지만..."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배우의 시작이 4살 때 어른들에 의해서니까 내 의지가 아니었지. 근데 하다가 내가 싫었다면 그만 뒀을 거다. 영화제 일 역시 내 계획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관련 있으니 할 수 있는 거다." ⓒ 이희훈


- 일각에선 부산영화제 자체가 변했다는 말도 들린다. 관객이 아닌 영화인만을 위한 행사가 됐다면서. 그만큼 집행위원장으로서 당면한 과제도 만만치 않다.
"100프로 만족이란 건 없다.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게 당연하다. 부족한 건 보완할 생각을 해야지. 영화제를 걱정해주시는 건 당연하다. 나도 영화제를 우려했던 사람이니까. 지금 시점에서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는 감히 말할 건 아닌 거 같다. 해보고 나서 평가받아야지. 올해는 그저 사고 없이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겠다는 마음뿐이다. 근데 걱정은 아마 내가 제일 많이 할 걸?(웃음)"

- 어린 나이에 의지와 상관없이 연기를 시작했고, 지금의 자리 역시 원래 계획은 아니라면서 맡고 있다. 강해보이지만 사실 속마음은 여린 '외강내유형'라는 평이 강한데, 혹시나 상처를 받지 않을지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배우의 시작이 4살 때 어른들에 의해서니까 내 의지가 아니었지. 근데 하다가 내가 싫었다면 그만 뒀을 거다. 연기가 좋아졌고 재밌으니 계속 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훨씬 커졌을 거다. 영화제 일 역시 내 계획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관련 있으니 할 수 있는 거다. 좋아하는 영화를 나이 먹어서까지 재밌게 하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큰 욕심이 있다. 그래서 영화제 일을 거들 수 있는 거 같다.

다들 내가 잘해주기를 바랄 거다. 이미 영화제는 잘 되던 행사지만 내가 들어온 이상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으면 한다. 상처? 아마 받을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치유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영화제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 달라."

○ 편집ㅣ이병한 기자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베니스영화제 다이빙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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