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의 포스터.

영화 <사도>의 포스터. ⓒ 쇼박스


29일, 영화 <사도>가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6일 개봉 후 13일 만이다. 추석 다음날인 28일만 67만 명이 관람하며 흥행세를 과시했다. 누적 관객 수는 426만으로 불었다. 추석 연휴를 겨냥해 맞붙은 한국영화 경쟁작인 <탐정: 더 비기닝>과 <서부전선>이 한 주 늦게 개봉해 각각 100만과 50만에 근접하는 동안 이룬 단독 질주다. 주연 송강호의 이전 사극인 <관상>의 900만에 근접하는 것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영조' 송강호와 '사도세자' 유아인의 절정의 연기력을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드러내는 관객이 적지 않아 보인다. 한국인이 유독 '애정'하는 사극이란 장르에, 웃음기나 과한 상상력을 배제한 '정통사극'이란 점도 무게감을 더했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사극 귀환이라는 점도 홍보에 도움이 됐다.

게다가 소재는 "사도세자가 8일 동안 뒤주 속에 갇혀 죽는다"가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중성(?)을 자랑하는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 아닌가. 그만큼,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드라마로 널리 알려진 소재였다. 적어도 흥행만 놓고 본다면, 이준익 감독과 제작진의 선택은 적중했다 할 만하다. 널리 알려진 소재로 대중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가족사에 집중하면서 보편성까지 획득하는 양수겸장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사도>가 던지는 화두는 쉬이 수긍할 수 없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소재를 품은 태도 면에서 그러하다. 송강호와 유아인의 명연이 마음을 흔들어도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어떻게'는 있으나 '왜'는 부족한 영조와 사도의 관계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영화 <사도>의 한 장면. ⓒ 쇼박스


개봉 전, <사도>의 최대 경쟁자는 드라마 <비밀의 문>이라 여겨졌다. <사도>의 개봉 딱 1년 전 방영된 이 24부작 드라마는 한석규가 영조를, 이제훈이 사도세자를 연기했으나 갈 길을 잃고 좌초했다.

사도세자에게 '개혁군주'로서의 면모를 과하게 투영하고, 그의 죽음을 정쟁과 기득권의 부산물로 강조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비밀의 문>은 그렇게 5%대 저조한 시청률로 별반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아마도 <사도> 제작진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았을까. 대신 <사도>는 조선 최대의 '막장'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분분한 해석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노론과 소론의 정쟁의 희생양이란 해석부터 사도세자의 광기, 사도세자의 개혁정치와 영조 탕평책의 대결 등등 의견이 분분한 역사적 해석은 (그것들은 그리 중요치 않다는 듯하게 보이는) <사도>의 사료로 너르게 반영됐다.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라는 영조의 대사로 갈무리되듯 <사도>는 아버지와 아들, 부자와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물론 여기엔 손자인 (훗날의) 정조까지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사도가 뒤주에 갇히는 첫째 날부터 그의 죽음을 명확히 한 뒤, 여덟째 날까지 사이사이에 회상 기법으로 부자의 과거사를 삽입한 구조적 형식은 더없이 효과적이다.

사도가 아비(영조)를 죽이겠다고 검을 들고 다다른 길에 목도한 장면은 세손(정조)과 영조의 다정한 한때였다. 영화 시작을 여는 이 장면은 사실 <사도>가 지향하는 바를 함축한다. 이미 광기 어린 눈으로 아비를 노렸던 아들 사도는 그 아비의 총애를 받는 자신의 아들(정조)을 해할 수 없어 결국 돌아선다. 강력한 부계혈통의 제1권력자에게 버림받은 제2권력자의 비극적 말로를 상징적으로 함축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도>는 이 조용한 모반에 이어 사도가 뒤주에 갇힌 첫째 날로부터 시간을 되돌린다. 어떻게 총명했던 사도는 영조의 눈 밖에 났고, 영조는 어떻게 사도를 궁지로 몰았나. 그리고 (사족보다는 좀 더 길게 그려진) 어떻게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나.

여기에서 <사도>는 의도적이든, 불가항력이든 어찌 됐건 더없이 중요한 '왜'를 대충 서술하고 넘어간다. 영조와 사도의 대립을 단순한 '세대갈등'으로 읽는 해석이 난무한 것도 이러한 '왜'의 축소에 기인한다.

해석의 부재가 불러온 전망의 부재 그리고 봉합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영화 <사도>의 한 장면. ⓒ 쇼박스


아니, 단순하고 보편적인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갈등을 읽어 내기 위해 구태여 아버지가 아들을 8일간 뒤주에 가둬서 죽인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을 소환할 필요가 있는가. 필연적으로 해석의 부재는 전망의 부재를 낳는 법이다.

<사도>는 끝끝내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그렇게 죽일 만큼) 미워했을까'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역사적인 해석이 중요치 않다고 판단했다면, 영화적인 해석이 더더욱 중요해질 터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저 보편적인 '세대론'인 것이다.

물론 몇 가지 단서는 있다. <사도>는 초반, 어린 사도세자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공부에 관심이 없었다로 대변되는)를 묘사하긴 한다. 그에 비해 이미 뒤주에 갇힌 사도의 고통은 시종일관 극대화된다.

아들을 (죽일 만큼) 미워한 아버지 영조. 그것이 단순한 권력욕이었는지, 탕평책을 지키려는 정치력이었는지, <사도>는 밝히거나 해석할 의도가 없다. 그저 모든 것이 비극으로 환원될 뿐이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같은 어떤 선험적이거나 선명한 전형성과는 또 다르다. 대리청정이나 선위를 시도한 영조의 의도를 읽을 수도, 사도세자의 광기에 공감할 수도 없이 비극적 인물들의 감정을 추스르기에도 벅차다. 혜경궁 홍씨와 같은 여성들의 역할 역시 이 가족사의 비극을 증명하는 증인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른다.

사도가 후궁이나 궁인들을 살해했다는 변함없는 사료를 왜곡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도 여기서 기인한다. 비극적 주인공에게 그러한 과하고 '해석불가'한 광기의 부여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 비극의 무한한 강조는 적확한 해석을 기피하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남는 것은 두 가지다. 사도가 죽기 전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상상의 (화해를 가장한) 대화는 송강호와 유아인의 절정의 연기를 통해 클라이맥스로의 기능을 다 한다. 그러나 그 상상의 주체가 누구냐는 절대적이다. 영조에게 '죄사함'을 받는 아들 사도의 자리는 거기에 없다. 아버지의 시선에 함몰된 사도는 영화 전편을 통해 나약해서 좌초한 아들로 추락한 뒤에야 '죄사함'을 받는다. 일방적인 용서와 화해는 그 결과 뜻이 다른 법이다. 

이를 이어받는 것은 물론 (소지섭이 이례적으로 길게 등장한) 정조다. 정조는 역사적으로 아비를 죽인 아들로서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인물로 기록돼 있다. 이준익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사도>가 '정(영조)반(사도)합(정조)'의 구도라 밝힌 바 있다.

그러니까 영조의 뜻대로 (아버지 사도와 똑같이 어린 나이였음에도) 신임을 얻고 왕위에 오른 정조는 그 부계 혈통을 잇는 자다. 무엇이 정반합일까. 결과적으로, 개혁적 왕이라 평가받는 정조의 왕위 계승이 합인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또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아버지' 이준익이 던져주는 비극적 힐링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영화 <사도>의 한 장면. ⓒ 쇼박스


이준익 감독은 전작 <소원> 이전까지,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중년의 아버지를 그렸어도 그들은 '남자'였다. <라디오스타>의 매니저 안성기가 그랬고, <즐거운 인생>의 밴드 멤버들이 그랬다. 철없는 아버지였고, 자식과 화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였어도, 그들은 여전히 꿈을 좇고 투쟁을 벌이는 중년 '남자'였다. <황산벌>이나 <평양성>은 전쟁을 벌이는 철없는 남자들 이야기였다.

정통사극에 가까운 <왕의 남자>나 액션활극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어떠한가. 계급투쟁을 벌이는 천민이나 혁명을 꿈꾸는 남자들이 등장할지언정 아버지의 자리는 없었다. 그랬던 그가 '은퇴 소동' 뒤 만든 <소원>에서부터 '아동성폭력' 피해자 아버지를 그리면서 '아버지의 자리'를 고민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도>는 그런 이준익 감독이 만든 '아버지'의 이야기다. 끝내 아들을 죽였지만, 그 아들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노회했지만 현명한 아버지의 이야기. 어린 후궁을 품에 안는 동시에 아들을 광인으로 내몰았으면서도 끝내 '생각할(사)思, 슬퍼할(도)悼'란 이름을 내려 준 그 아버지.

현대적인 시선으로 영조의 자식 교육을 강남 엄마들의 그것으로 보는 것은 자유다. 또 영조와 사도 세자의 게임을 세대론으로 읽는 것도 무방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도>가 철저하게 아버지의 시선과 승자의 기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리라. 그 안에서 뒤주에 갇혀 죽은 비극적 주인공이자 타이틀롤인 사도는 그 어떤 입체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정)'반'(합)의 인물로 협소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우리들의 '정조', 그러니까 진정한 다음 세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영조의 시대도 끝난 것이 아니다. <사도>의 정반합이 진정한 의미의 정반합이 아닌 아버지 세대가 권유하고 처방한 봉합으로 보이는 이유다.

만화가 이현세는 지난 2월 한 인터뷰에서 "(20대가) 50, 60대가 던져주는 '힐링'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 20대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 사회를 만든 건 저 같은 50, 60대가 만든" 거란 이유에서다. <사도>는 어쩌면 '아버지 세대'로 돌아온 이준익이 20대에게 던져 주는 의도된 비극적 '힐링'인지 모를 일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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