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의 정현민 작가가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번 드라마를 쓰며 내가 이상주의자적 경향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8~9년 정도 국회에 있다가 전업을 고민한 게 이런 부분 때문이었는데, 드라마도 그 때문에 이렇게 나온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이상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의 정현민 작가가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피를 발라놓은 것 같다."

<어셈블리>에서 백도현 역을 맡았던 배우 장현성은 정현민 작가의 대본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물과 배경 등은 허구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만큼은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말대로 <어셈블리>는 당내 계파 싸움이나 당청간의 갈등, 지역이기주의에 따른 선심성 공약의 폐해 등을 다루면서, 허구이지만 현실 같은 묘한 느낌을 줬다.

이는 실제 노동운동을 경험했고, 기자와 국회 보좌관 등을 거친 정현민 작가의 특별한 이력 덕분이기도 하다. 천직으로까지 생각했던 보좌관의 길에서 "얼떨결에" 드라마 작가로의 길로 들어서긴 했지만, 현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고민했던 과거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실패한 사람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드라마 속 '배달수 법'은 그가 지금까지 현실을 관찰한 끝에 내린 처방이기도 하다.

"나보고 '이제 현대극을 하니까 정체가 나온다', '왼쪽(좌파)이구나'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아니다. 왔다 갔다 한다(웃음). 귀도 얇고 뚝심 있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다만 규칙을 정하는 데 있어 그 규칙이 공정해야 게임이 계속되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은 그렇진 않은 것 같다. 그런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규칙이 공정해야 게임이 계속되지 않겠나"

 시청률은 4.9%, 울림은 그 이상 : 어셈블리가 남긴 말

ⓒ 고정미


- 15회, 진상필(정재영 분)에게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묻는 강상호(이원재 분)에게 진상필이 '나의 이념은 휴머니즘'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드라마 시작 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의원님들을 몇 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 중 한 분이 '가장 진보적인 정치이념은 휴머니즘이라 생각한다'고 하시더라. 그 말처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그럼에도 추구해야 할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드라마를 쓰려고 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은 늘 생각하는 화두다. 처음 쓴 습작의 기획의도가 '삶은 전투지만, 승산은 충분하다'였다. 그런데 갈수록 승산이 충분한지 모르겠다. '이게 사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9년에 (작가가 되는) 공부를 했으니까 이제 6년 지났을 뿐인데... 과연 승산이 충분하다 할 수 있을까? 승산이 충분하니 청춘들에게 덤벼보라 얘기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닐 수 있겠다는 회의가 든다.

분명 경쟁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기능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패자에 대한 배려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명박 정부 때까지 국회에 있으면서 사회의 큰 입법들을 대부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 시기에 경쟁의 패러다임이 강조됐다. 상대적으로 경쟁만 강조된 건 아닌가 싶더라. 극중에 꼭 넣고 싶었던 대사가 있었는데 '1등이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다 꼴찌다'였다. 결국 넣진 못했지만, 1등이 자신에게 뒤쳐진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드라마 내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희망을 걸어야 한다'를 강조했지만, 정말 사회가 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갖긴 어렵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그렇게(희망이 있다고) 믿고 믿지 않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옥 같은 세상을 신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구원하려고 만들어진 게 정치다'라는 최인경(송윤아 분)의 대사가 있는데, 이게 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정치관이다. 앞으로 정치가 잘 될 거다? 그건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정치는 그래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하기 때문에 내가 이런 드라마를 자꾸 쓰는 거고.

'정치에 관심을 갖자'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일 수 있는지, 나도 안다. 나만 해도 국회를 떠나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정치면을 안 보게 되더라. 선거홍보물을 봐도 투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정치가) 어느 날 갑자기 바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리더도 준비돼야 하는 거고, 법 제도적인 부분에서도 정비되어야 하는 게 분명 있을 거고, 우리 사회의 우수한 자원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들어와야 하고... 지속적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정치는 어떻게든 누군가는 하게 되어있다. 조직화된 단체들 등 정말로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누군가는 정치인들, 보좌관들을 만나며 활동하고 있을 거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그렇게 못하는 거지. 정치 외에 (세상을 변화시킬) 다른 방법이 있을까? 이제 혁명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지 않나. 거창하게 법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정치든 뭐든 작은 관심에서 시작하는 게 정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를 보고 처음으로 내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누군지 확인해 봤다, 민원을 남겨 봤다'는 반응이 온 게 가장 기뻤다."

"누군가는 계속 이상을 이야기해야 한다"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의 정현민 작가가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극중에 꼭 넣고 싶었던 대사가 있었는데 '1등이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다 꼴찌다'였다. 결국 넣진 못했지만, 1등이 자신에게 뒤쳐진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정민


- <정도전>에 비해 대중적으로 흥행하지 못했다. 한 자릿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영했는데.
"초반에 고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감독님과 훌륭한 배우들이 있어서 내가 초반에 이야기만 잘 꾸려가면 조금씩 시청률도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안올라가더라(웃음). 경쟁 드라마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청층이 겹치지 않았으니까. 어떤 분들은 '현대 정치물의 한계'라고 하시는데 굳이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글을 쓰는 데 다소 부족한 부분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작가 입장에선 '(시청층이) 들어와야 하는데 왜 안 들어오지?' 싶고, 단단한 벽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 벽이 단단하게 느껴질수록 본래의 기획의도에 충실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또 이 드라마를 소비해주는 시청자의 반응을 보면서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애초의 기획의도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해낸 것 같아 안도하는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작가로서의 많은 숙제도 받은 것 같다."

- 작가로서의 숙제?
"소위 말하는 흥행을 외면하며 드라마를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흥행이 전부가 되면 곤란할 거다. 그 가운데 나는 어떤 스탠스를 가져갈까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써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쓸 거다. 일단 연말까지는 고민 없이 지낼 거지만, 그 이후에 작가로서 내가 어떤 드라마를 해야 하는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돌이켜볼 생각이다.

사실 얼떨결에 드라마 작가가 됐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드라마를 시작했고 무지하게 다작을 했다. 이제 데뷔 5년차인데 방송 횟수만 280회다(웃음). 행복한 경험이었지만, 정체성이 다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본을 쓰려니 고민이 되더라. 대부분은 작가 지망생 시절에 고민하는 것들을 나는 일하면서 만들어가고 있는 거다.

고루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이 학생에게 권할 수 있는 드라마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작가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결국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작가로서 좀 더 치열해지고 집요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느낀다.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1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간을 갖고 2기를 준비할 생각이다."

- 앞으로도 정치 드라마를 할 생각이 있나.
"이번 드라마를 쓰며 내가 이상주의자적 경향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8~9년 정도 국회에 있다가 전업을 고민한 게 이런 부분 때문이었는데, 드라마도 그 때문에 이렇게 나온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이상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나 청와대 같은 곳을 다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곳에 정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 명이 모이면 고스톱을 치기 전에 정치가 발생한다. 정치가 직접적인 주제는 아니더라도 그런 것들을 깔고 가는 것들을 쓸 생각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도전해볼 생각은 있는데 수요가 없을 것 같다. 잘 쓰시는 분들도 많고(웃음). 부족한 재주지만 그나마 잘할 수 있고 (시청자가) 기대하는 장르가 있다면, 그 장르에 천착하는 게 맞는 것 같다."

(* 인터뷰 ③번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①] "뜨악하고 오글거리지만" <어셈블리> 작가는 왜?
[인터뷰③] "정재영, 매번 행간 살펴 애드리브 만들어내더라"
[전체영상] <어셈블리> 정현민 작가를 만나다 (35분)
[카드뉴스] 명품 드라마 <어셈블리>가 남긴 명언들

어셈블리 정현민 정재영 송윤아 장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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