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윤형빈

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윤형빈 ⓒ 이충섭


지난해 겨울 개그맨 윤형빈이 격투기 링 위에 올랐다. 사람들은 기대보다 우려의 시선을 먼저 보냈다. 윤형빈은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지인들을 경기장에 초대했지만, 선뜻 경기를 보러 가겠다고 나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윤형빈이 링 위에서 상대 선수의 펀치를 받아내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최근에는 MBC <복면가왕>에서 수준급 노래 실력을 선보이며 또 한 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룹 '오버액션'의 리더이자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는 가수로서도 변신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웃음'이라며, 부산에 이어 홍대에 소극장을 열고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를 만났다.

끈임 없는 도전의 원천, 웃음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기자와 작가로 인연을 맺고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큼지막한 손으로 악수를 청해오는 사람 좋은 얼굴은 변함이 없다. 부산에 소극장을 만든다고 했을 때, 링에 오른다고 했을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부산의 지리적인 위치와 개그 공연의 한계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 홍대에 '윤형빈 소극장' 2호점을 오픈했다. 1호점을 대학로가 아닌 부산에 만든 이유는?
"개그맨은 웃음의 힘을 받아야 한다.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개그맨은 소수였고, 공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과 해외 공연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그럼 어디에서 하지? 서울은 극단과 공연장이 넘쳐났지만, 당시 부산은 변변치 않았다. 틀림없이 부산에도 개그 공연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개그 무대와 공연이 많지 않았던 곳이라 자리를 잡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3년 만에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연말 예매율 1위를 차지했고 공연을 본 관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났다. <컬투쇼> 같은 공연을 많은 개그맨들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그 공연의 콘텐츠 공장이 필요했다. 웃고 싶은 사람들은 웃고, 웃기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껏 웃길 수 있는, 그런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 후배와 개그지망생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다.
"개그지망생에게 무대는 간절하지만 조건은 무척 열악하다. 선배로서 우리는 너무 미안하다. 꿈과 열정을 갖는다고 해서 무조건 무대에 오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에 소극장을 열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거다. 지방에 있는 지망생들은 서울에 올라와서 어렵게 생활한다. 그중에서도 공채에 합격해야만 겨우 살아남는다. 그래서 부산 소극장에 있는 개그맨과 개그지망생들에게는 숙소를 따로 만들어주고, 개그만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웃고 싶은 사람은 웃고, 웃기고 싶은 사람은 마음껏 웃길 수 있는"

윤형빈 소극장 자신의 이름을 딴 극장에서 만난 윤형빈

▲ 윤형빈 소극장 자신의 이름을 딴 극장에서 만난 윤형빈 ⓒ 정보훈


개그맨, 가수, 파이터, 공연기획자. 그는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는 윤형빈.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오르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반드시 자신만의 꿈을 위한 도전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도전에는 후배들을 위한 배려가 있고, 주변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 MBC <복면가왕>에서 보여준 뛰어난 노래 실력이 화제가 됐다.
"항상 음악에 대한 꿈이 있었다. 개그맨들은 끼와 재능이 많아서 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 하지만 그 끼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매년 나왔던 코미디 캐롤도 이제는 우리 몫이 아니다. 노래하고 싶은 사람에겐 음반을 내주고, 공연하고 싶은 사람에겐 무대에 오르게 해 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분명한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 이제는 왕비호가 아니라 파이터로 많이 알아본다고.
"원래부터 운동을 무척 좋아했고 꾸준히 하고 있었다. 경미(개그우먼 정경미)랑 결혼할 때, 격투대회에 나가는 것 하나만 허락해 달라고 했다. 개그맨을 하면서 최고의 MC가 되고 싶었던 만큼 링 위에도 오르고 싶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최고 MC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 파이터 머니를 전액 기부했다. 큰 금액이었던 만큼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부터 내가 좋아한다는 것에 초점을 뒀다. 사실 나정도의 신인 파이터가 받는 파이터 머니는 매우 적다. 그래도 대표님과 주최 측에서 나를 배려해 준다며 입장료 수입의 절반을 준다고 했다. 돈을 생각하고 한 게 아니라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냥 하겠다고 했다. 주최 측에는 파이터 머니를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기부하자고 부탁했다."

-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고 경기가 있었는데, 아내는 허락했나.
"경미는 내가 하는 일을 항상 응원해준다. 파이터 머니를 기부한다는 것도 좋은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지지해줬다. 우리 결혼식 때 받았던 쌀 화환을 기부하자고 했던 것도 경미의 제안이었다. 항상 고맙고, 또 미안하다."

"이길게요, 꼭 이길게요, 응원해 주세요!"

윤형빈 <복면가왕>에 출연한 개그맨 윤형빈

▲ 윤형빈 <복면가왕>에 출연한 개그맨 윤형빈 ⓒ MBC


연예계는 참 말이 많은 곳이다. 좋은 말 보다는 나쁜 말이 더 많다. 하지만 개그맨 윤형빈 혹은 인간 윤형빈과 함께 작업했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 중 뒤에서라도 그의 이야기를 안 좋게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는 정말 예의 바르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 어려운 이웃을 초청해 소극장 공연을 열고, 재능 기부 활동도 하고 있다.
"나눔은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없는 돈을 빚내서 남을 돕지는 못해도 개그와 공연으로 좋은 일을 하면서 힘을 얻는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을 돕고,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또 어떤 모습이 나올지 기대된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앞으로도 꾸준히 웃음을 만들고 싶다. 개그맨들에게는 정말 큰 재산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다. 재력이 많은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건 유머와 웃음이다. 돈이 많은 사람과도 친하고 싶지만 재밌는 사람과도 친해지고 싶다. 다양한 모습으로 더 많은 웃음을 드리도록 노력하겠다."

돌이켜보면, 파이터로 변신한 윤형빈의 경기를 보러가는 것을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그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준비했고, 링 위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는데 말이다. 결국 윤형빈은 로드 FC 데뷔 무대에서 강력한 카운터펀치로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장에 오는 것을 망설이던 우리에게 전에 없던 진지한 표정으로 그가 건넸던 이야기.

"이길게요. 한 대도 안 맞을 거라고 약속은 못하지만, 꼭 이길게요. 그건 약속할 테니 꼭 와서 응원해 주세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hstyle84)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예능작가의 세상읽기 윤형빈 윤형빈 소극장 복면가왕 윤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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