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 ⓒ Cristaldifilm


영화 관련 과거 이야기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필름이다. 모든 과정이 디지털화되기 이전,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필름으로 영화나 광고 등을 촬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일했던 신도필름은 영화 수입과 제작, 극장 운영을 동시에 했던 곳이다. 때문에 영화사 창고엔 늘 대형 필름깡통과 작은 필름깡통들이 쌓여 있었는데, 큰 필름 통에는 영화 본편이, 작은 필름 통에는 영화 예고편이 들어있었다.

누런 색깔의 필름 통 겉에 아무렇게나 매직으로 쓴 영화 제목들이 멋스럽게만 보였다. 그 깡통 속에 바로 수백·수십 미터의 필름이 돌돌 말려서 들어있었다. 영화 한 편 당 평균 6~7개의 릴(reel)이 쓰였는데, 그것들이 큰 상자에 하나로 담겨 서울은 물론 지역극장 이곳저곳을 떠돌곤 했다. 그러다가 수명을 다 한 듯 영화사의 작은 창고에 하나둘 쌓이게 된 것이다.

그 깡통을 바라보며 한번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이 작은 크기의 필름이 어떻게 그리 큰 스크린에 비춰질 수 있을지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때가 있었다.

필름, 절대 함부로 다루지 말 것

 한국영상자료원 박물관에 전시된 필름통들.

한국영상자료원 박물관에 전시된 필름통들. ⓒ 한국영상자료원


당시 내 아버지보다도 더 연세가 많으셨던 영화사 전무님은 어느 날 내게 직접 그 깡통을 열게 했다. 흰 면장갑을 끼고 뚜껑을 열자 영화 예고편 필름이 나왔다. 그 필름을 햇살이 잘 드는 쪽을 향해 조심조심 비춰 보는데 전무님은 "한 컷 한 컷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필름을 절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셨다. 그 이후에 작은 영화든 큰 영화든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컴퓨터 작업이 일반화 됐지만, 당시엔 필름을 붙들고 있는 게 일상이었다. 자막은 동판을 이용해 필름에 직접 찍었고, 현미경으로 필름을 들여다보며 오타를 확인하곤 했다. 또 해당 영화가 심의에 통과되지 못하면 어두컴컴한 작업실에서 필름의 일부를 잘라내야 했다. 소중한 걸 다룬다는 생각에 설렜던 순간이었다.

필름 통에 대한 일화도 꽤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처음 문을 열던 시절, 한 극장에서 수십 개의 상영관을 보유하게 되면서 하나의 필름으로 동시에 여러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인터락(interlock) 시스템을 활용하게 되었다. 모 극장에서 개관 행사로 처음 필름이 돌아가던 날, 영사실에서 필름을 옮기려다가 영사기사가 실수로 필름을 바닥에 쏟고 말았다. 당연히 영화 상영은 중단되었고, 쏟아진 필름을 다시 감아 영사기를 재가동해야 했는데 40분이 넘게 걸렸다. 수백 명의 관객들이 상영관에서 쏟아져나와 항의하기 시작했고, 사과하면서 그냥 돌려보내야 했다. 관객들은 그런 내부 상황을 알 리가 없었다.

또 다른 모 회사에선 급하게 필름을 공수해 대구에서 시사회를 준비하던 중 마지막 필름의 작업이 마무리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필름의 앞부분만 먼저 대구로 보내고, 맨 마지막 릴의 필름을 영화사 막내 직원에게 맡겼는데 잦은 야근에 피로했던 이 직원이 기차에서 졸다가 부산까지 가는 바람에 결국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틀지 못했던 비화도 있다.

추억 보관함이 된 필름 통

 영화 예고편을 보관하던 작은 필름 통.

영화 예고편을 보관하던 작은 필름 통. ⓒ 김은 제공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모든 것이 데이터화 되어 디지털로 송출되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영화 <시네마 천국>처럼 필름이 돌아가는 모습을 이제는 보기 힘들게 되었다. 필름을 한 자라도 더 구입하기 위해 제작자들이 동분서주하고, 감독들은 그 필름을 아끼려고 컷 마다 심혈을 기울여야 했던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그야말로 영화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영화 한 컷에 대한 소중함이 왠지 모르게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영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필름 통에 담뱃재를 털며 여유를 부렸던 그때, 난 남아 있던 작은 필름 통 하나를 챙겼다. 그 통이 이젠 각종 영화제의 아이디카드를 모아두는 또 다른 추억 보관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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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은 대표는 한 광고대행사 AE(Account Executive)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상품 광고가 재미없다며 박차고 나왔다. 이후 1997년 단성사를 운영하던 영화사 (주)신도필름 기획실에 입사해 영화홍보마케팅을 시작했다. 지난 2009년 문화콘텐츠전문 홍보대행사 아담스페이스를 설립했다. 홍보하면서 야근 안 할 궁리, 여직원이 다수인 업계에서 연애하고 결혼할 궁리, 상업영화 말고 재밌는 걸 할 궁리 등을 해왔다. 지금까지 다른 회사가 안 해 본 것들을 직접 또는 소수 정예 직원들과 함께 실험 중이다.
김은 필름 영화 오마이스토리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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