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전이었다. 상반기 내내 할리우드발 외화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한국영화가 7, 8월 들어 상황을 완전히 뒤집는데 성공했다.

주역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처럼 최동훈 감독의 <암살>(쇼박스)과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CJ엔터테인먼트)이었다. 두 영화 모두 흥행감독과 스타배우를 내세운 대형배급사의 야심작이었기에 이변이라 할 것도 없었으나, 지난 반년 간 숨죽여온 한국영화계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반향이 상당했다. 국내 4대 배급사 가운데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협녀, 칼의 기억>과 NEW의 <뷰티 인사이드>가 부진한 성적을 거뒀으나 쌍 천만 관객을 동원한 앞의 두 영화가 거둔 성과는 이를 묻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아쉬운 건 여름 극장가의 판도가 4대 주류 배급사와 할리우드 대형 배급사의 작품에 좌지우지되었다는 점이다. 여름 극장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관례였던 공포물은 설 자리를 잃었고, 중소 수입사가 배급하는 작은 영화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렇듯 작은 영화가 더욱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은 멀티플렉스 위주의 상영관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영화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돌아보게끔 한다. 이에 매달 기대작 10편을 꼽음으로써 소수의 작품이 전체 영화판을 좌우하는 판도에서 선택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히고자 한다. 지금부터 9월의 기대작 10편을 꼽아본다.

① [앤트맨] 언제까지 더 크고 강한 영웅을 찾을 것인가

앤트맨 메인 포스터

▲ 앤트맨 메인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언제까지 더 크고 더 강하며 더 쿨한 것만 찾을 것인가. 이제 더 작고 더 찌질한 영웅이 등장할 때도 되지 않았나. 마블 역사상 가장 작은 히어로의 이야기를 다룬 <앤트맨>의 개봉은 시의적절하다.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 기존 영웅에 물린 팬이라면 <앤트맨>이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히어로를 연기하는 배우는 세계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운 폴 러드다. 60편 가까운 작품에 주·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존재감을 각인시킬 만한 역할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그를 설명이 필요 없는 명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와 <호빗> 시리즈에서 타우리엘 역할로 얼굴을 알린 에반젤린 릴리가 돕는다. 마블 시리즈에서 조연으로 수차례 등장한 바 있는 팔콘(안소니 마키 분)도 등장해 힘을 싣는다.

감독은 <브링 잇 온>을 통해 명성을 얻은 페이튼 리드다. 이후 이렇다 할 성공작을 만들지 못한 그에게도 <앤트맨>은 중요한 전기가 될 듯하다. 3일 개봉한다.

② [오피스] 사무실을 공포의 공간으로 바꾸기

오피스 메인 포스터

▲ 오피스 메인 포스터 ⓒ 리틀빅픽처스


<추격자>, <작전>,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의 각색가가 감독으로 데뷔한다. 각색을 맡았던 네 작품이 각색 측면에서만큼은 호평 받았기에 기대가 적지 않다. 작지만 만듦새가 좋은 영화를 주로 배급해온 리틀빅픽쳐스가 배급을 맡았다는 점도 기대를 안긴다. 각본은 2013년작 <소녀>를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은 최윤진이 썼다. 공포 영화 치고 무게감이 있는 고아성, 박성웅, 류현경, 배성우의 출연도 기대를 모은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 가운데 하나인 사무실을 공포의 공간으로 돌리려는 야심은 수많은 공포물 가운데 <오피스>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링>이 텔레비전을, <주온>이 이불 속을 공포의 공간으로 전환시킨 것처럼 <오피스>의 시도도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을까? <퇴마: 무녀굴> 등 앞서 개봉한 공포물이 고전을 면치 못한 상황에서 <오피스>가 거둘 성적이 주목된다. 3일 개봉한다.

③ [침묵의 시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 포스터

▲ 침묵의 시선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아마도 마이클 무어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아닐까.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이 3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을 본 관객이라면 관심 갖지 않을 수 없을 이 영화는 현재 안에 존재하는 과거를 포착해 그 안에 내포된 부조리함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액트 오브 킬링>이 인도네시아 군부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재연했다면, <침묵의 시선>은 피해자의 시선에서 이를 돌아본다는 차이가 있다.

감독인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지난 26일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건 그 누구도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고 과거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기 때문에 우리가 곧 우리의 과거이고 언젠가 과거는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과거가 우리를 따라잡아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음을 실감하고 있을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④ [이민자] 명품 배우들의 치열한 연기 대결

이민자 메인 포스터

▲ 이민자 메인 포스터 ⓒ 씨네룩스


1994년작 <비열한 거리>를 통해 제5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제임스 그레이의 신작이 3일 개봉한다. 연출은 물론 촬영, 각본, 연기 등 다방면에 재능을 보여 온 제임스 그레이가 2008년 이후 5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란 점에서 기대감이 적지 않다.

제임스 그레이와 <블러드 타이즈>에서 인연을 맺은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인공 에바를 연기했다. 또 호아킨 피닉스, 제레미 레너 등도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해 명품 배우들 간의 치열한 연기대결을 예고한다.

⑤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영화로부터 위안을 얻기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메인 포스터

▲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메인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감독의 이름만 보고도 어떤 색깔의 작품일지 짐작이 되는 영화는 흔치 않다. 특히 '작가'라고 부를 만한 감독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최근 동아시아 영화계에선 더욱 그렇다.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그런 의미에서 희소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1997년 일본의 어느 가족 이야기를 그린 첫 장편 <수자쿠>로 칸 영화제 황금촬영상을 거머쥔 그는 이후 <호타루>, <벚꽃편지>, <사라소주>, <출산>, <너를 보내는 숲> 등 개성이 한껏 드러난 감성적인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명성을 쌓았다. 상업적 성공보다 세상과 감독 자신의 내면이 만나는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온 그의 영화로부터 일종의 위안을 얻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일본의 전통적인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가게를 배경으로 그 가게에 찾아든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으로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을 영화화했을 만큼 감독 본인이 시나리오에 큰 매력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명배우 키키 키린이 연기한 할머니는 대체 어떤 비밀을 안고 있을까? 열흘 후면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⑥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 3부작 시리즈의 두번째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 메인 포스터

▲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 메인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임스 대시너의 소설을 원작으로 지난해 개봉해 한국에서만 280만 관객을 동원한 <메이즈 러너>의 속편이 개봉한다. 서사가 미로에 빠졌다는 부정적 평가도 받았지만 미로에서의 긴장감을 살리는 데는 성공했다는 호평도 얻은 바 있다.

전편을 감독했던 웨스 볼이 한층 노련해진 연출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대가 상당하다. 미로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벗어나 '플레어 바이러스'(플레어는 태양에서 돌발적으로 많은 양의 에너지가 발생하는 현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플레어 바이러스는 이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 가상의 질병임-편집자 주)로 폐허가 된 도시로 자리를 옮긴 만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하겠다.

3부작으로 구성된 시리즈의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작품인 만큼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전편을 능가하는 건 물론이고, 다가오는 시리즈를 위한 전기를 마련하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17일 개봉한다.

⑦ [서바이버] 밀라 요보비치가 재기를 노리다

서바이버 포스터

▲ 서바이버 포스터 ⓒ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왕년의 스타가 액션 히어로로 재기를 노린다. 제임스 맥티그 연출의 <서바이버>는 <제5원소>로 혜성처럼 등장해 <잔 다르크>,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밀라 요보비치의 신작이다.

밀라 요보비치는 30대 후반에 들어서며 액션배우로서 한계점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보다 무려 13살이 많은 탐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으로 나이를 잊은 활약을 보이는 걸 생각하면 지나치게 엄격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년에 들어선 여성 액션스타가 흔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기에, 그 스스로가 이 한계를 깨부술 필요가 있다.

어느덧 마흔이 넘은 밀라 요보비치가 액션 스타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기댈 건 오직 스스로의 실력뿐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상업영화 연출자로 재능을 인정받은 제임스 맥티그, 그리고 전성기는 지났지만 왕년의 007로 기량만큼은 검증된 피어스 브로스넌은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다. 17일 개봉한다.

⑧ [에베레스트] 실화를 바탕으로한 재난영화

에베레스트 포스터

▲ 에베레스트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아이슬란드 출신의 다재다능한 연극·영화인 발타자르 코쿠마쿠르의 신작 <에베레스트>가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96년 5월 발생한 산악사고의 생존자 존 크라카우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원작이다. 올해 말 개봉할 것으로 알려진 <인 더 하트 오브 씨>와 함께 2015년을 논픽션 기반 재난영화의 해로 만들어버릴 기세다.

2012년 <더 딥>을 통해 거대한 자연에서 위험에 처한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낸 발타자르 코쿠마쿠르의 재능이 할리우드 자본을 만나 보다 큰 작품에서 만개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주연부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존 코너 역까지 세계 영화판에 급속도로 얼굴을 알려가고 있는 제이슨 클락과 <브로크백 마운틴>의 제이크 질렌할에 더해 조슈 브롤린, 키이라 나이틀리, 샘 워싱턴, 로빈 라이트 등 재능 있는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간간이 등장하던 산악 재난영화의 맥이 끊긴 상황에서 <에베레스트>가 반전을 써내려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실제 산악인 못지않은 열정으로 촬영에 임했다는 스태프 및 배우들의 열정을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⑨ [인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말단사원이 CEO가 됐다

인턴 포스터

▲ 인턴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낸시 마이어스의 신작이 24일 개봉한다. 앤 해서웨이,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인턴>이다. <페어런트 트랩>, <왓 위민 원트>,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로맨틱 홀리데이>, <사랑은 너무 복잡해> 등 낸시 마이어스의 연출작들은 '낸시 마이어스표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만의 사랑스럽고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낸시 마이어스가 스칼렛 요한슨, 레이첼 맥아담스,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과 함께 가장 주가 높은 젊은 여배우로 손꼽히는 앤 해서웨이와 만나 어떤 영화를 찍어냈을지 기대가 크다. 최근 수 년 간 어깨에 힘을 뺀 영화에 자주 출연하고 있는 로버트 드 니로가 든든하게 뒤를 받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에게 핍박받던 말단 사원이 일약 로버트 드 니로를 거느리는 CEO가 되었다. 앤 해서웨이의 신분상승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⑩ [사도] 이준익 감독 + 송강호 + 유아인 + 문근영

 영화 <사도> 티저 포스터

영화 <사도> 티저 포스터 ⓒ 쇼박스


한국 사극에서 가장 인기 높은 소재, 너무도 유명해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영화로 만들어진다.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는 너무도 많이 다뤄져 이젠 식상하게까지 느껴질 지경이지만, 이준익 감독과 송강호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왕의 남자>로 한국 사극영화에 한 획을 그은 이준익과 '믿고 보는 배우' 설문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송강호의 만남은 단순히 기대감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감흥을 자아낸다. 여기에 <베테랑>을 통해 기량을 만개시킨 유아인과 역시 사극에 잔뼈가 굵은 동급 최강의 여배우 문근영까지 더해져 무게감 있는 조합이 완성됐다.

수없이 다뤄졌지만 추측만 무성할 뿐 누구도 속 시원히 답을 내놓지 못한 영조의 결정. 그는 왜 그토록 고통스런 방식으로 자신의 아들을 죽인 걸까. 올 여름 쌍 천만 관객을 동원한 <암살>과 <베테랑>이 휩쓸고 간 자리를 다시 한 번 뭉개버릴 유력 주자로는 이 영화만한 작품이 없어 보인다.

2012년부터 이어져온 사극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인가, 여기서 마무리될 것인가. <사도>가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 최고의 기대작은 누가 뭐래도 바로 이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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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 https://brunch.co.kr/@goldstar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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