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대중화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과거 유명 가수들의 노래에서 래퍼들이 뒤를 받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래퍼들의 곡에 유명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대중화된 것이 문제였을까. 관심이 커진 만큼 힙합을 둘러싼 논란도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만난 래퍼 진준왕(본명 진준현)은 일련의 인식들에 대해서 진지한 자세를 갖춘 청년이었다. 적어도 '힙합이나 하고 다니는 부랑자'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무려 힙합씩이나 하고 다니는 젊은 음악가'라면 몰라도.

보컬과 랩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는 1991년생이다. 힙합 씬의 새내기라 할 수 있지만,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고속 성장을 보여준 것으로 회자되는 '블루칩'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래퍼들의 경연인 <모두의 마이크>와 지난해 방송된 Mnet <쇼미더머니3>에서 이미 신인답지 않은 실력을 증명했고, 올해는 독자적인 레이블을 구축하여 신곡을 쉼없이 발매하고 있다.

"평범한 리스너였던 나, 군대서 바뀌었다"

 래퍼 진준왕의 프로필 사진

래퍼 진준왕의 프로필 사진 ⓒ 진준왕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래퍼 진준왕. 아직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는 음악가라는 호칭에 부담이 있어서 랩퍼로 타협을 보고 있다."

- 진준왕이란 이름이 만들어진 계기는?
"본명이 진준현이고 별명이 '준왕' 이다. 하도 왕 같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 그런 의미에서 진준왕은 자기애의 끝이다. (웃음)"

- 진준왕이 생각하기에 음악가가 갖춰야 하는 조건들이 있나보다.
"직접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무거운 타이틀인 것 같다."

- 현재 진행 중인 앨범이 있나?
"싱글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달칵'이라는 곡이 담긴 미니앨범과 아버지의 이름을 딴 '진병수'라는 싱글이 발매됐다. 지금은 이별을 주제로 한 곡을 작업 중이다."

- 현재 진준왕이 몸담고 있는 레이블 조뜰사운드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떤 이유로 함께 하게 되었는가?
"아침 '조' 에 '뜰'을 합쳐 '햇살이 비치는 뜰'이라는 의미의 굉장히 순수한 느낌인데, 발음 상 주의를 요망한다.(웃음) 레이블을 만들기 전에는 원래 프로듀서 피터유와 둘이서 작업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한계를 많이 느꼈고, 눈여겨 봐오던 친구들과 함께 조뜰사운드를 만들게 됐다."

-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개의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 나도 음악에 흥미를 갖고 조금씩 따라 부르는 정도의 리스너였다. 음악을 직업으로 진중하게 생각하게 된 건 2014년 군 제대 이후고. 군 생활을 하면서 제대 이후에는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 당시 부대 안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가 가사 쓰고 읊조리는 시간이었다."

"'내가 제일 잘났어' 식의 곡, 만들 순 있지만"

 공연 중인 래퍼 진준왕

공연 중인 래퍼 진준왕 ⓒ 구민지 iznim.res


- 활동 기간이 짧지만 많은 팬들에게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 부담감이 느껴질 것 같다.
"모호하다. 미디어(진준왕은 지난해 본명 진준현으로 <쇼미더머니3>에 출연,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B.I와 3차 예선에서 1:1 배틀을 벌였다-편집자 주)를 통해서 경력에 비해 갑작스럽게 알려진 부분이 있고, 또 운이 좋게 상승세를 탔다. 이전에 쌓아온 것이 없다보니 방송 이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음악)에 대한 강박 아닌 강박을 갖게 되더라.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 <모두의 마이크>에 참여해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날 게스트가 더블케이였다. 나의 학창시절 플레이 리스트를 책임지시던 분이었는데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걸 다 미루고 그 무대로 갔다. 덕분에 무대에서 멘트를 전부 잊어버렸지만. (웃음) 공연 시작 멘트로 (더블케이에게) '당신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는 말을 건넸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나중에 높은 데서 보자'는 답을 얻었다. 내 생의 최고의 날이었다."

- 곡 이야기로 돌아가서, '달칵'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되게 금방 완성된 곡이다. 보통 구상을 하고 가사를 쓰고 그걸 믹싱해서 곡을 내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든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보면 온통 여기에 집중해야 해서 밖에 나갈 일이 없어진다. 지하 작업실이라 창문도 없는데, 생각해 보면 한 일주일 정도 빛과 아예 차단된 생활을 하는 거다.

그렇게 밤낮도 바뀌고 몽롱한 상태에서 오랜만에 밖을 나서면 그때마다 훤한 달이 떠있었다. 가로등도 거의 없다시피한 동네라서 자연광에 의지해서 걸어야 하는 수준이다. 어느 날은 피터유와 잠깐 작업실 밖으로 나왔는데 마침 달이 떠 있었다. (달을) 감상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음악을 완성하게 됐고, 이것이 곡으로 나오게 된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해 같이 음을 만들고 드럼을 고르고 숨을 불어 넣은 곡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 '달칵'은 사실 진준왕의 이전 이미지와는 조금 다를 수 있는 곡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게 뭐냐'는 반응도 물론 있었다. '내가 제일 잘해' 식의 곡이 지금의 유행이라면 얼마든지 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곡들은 수적으로 많이 쏟아지는 만큼 잊혀지기도 쉽다. 조금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 또 다른 곡 '힙합이나 하고 다니고'는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은 곡이다. 이 곡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힙합이나 하고 다니고'는 직접 들은 말이기도 하다.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힙합이나 하고 다니고'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으니까 벙 찌더라. 그 말을 들은 뒤 담아둔 것들을 가사로 표현했다. 확실히 그때의 그 감정은 분노 그 자체였다."

- 그럼 진준왕에게 성공의 의미는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벌고 온라인 음원 사이트 차트 상단에 오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마시게 되면 항상 고 유재하의 노래를 듣는데 그 노래들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의 기억과 일상에 관여할 수 있는 것, 그게 성공인 것 같다."

"음악으로 사랑 전하겠다"

 래퍼 진준왕

래퍼 진준왕 ⓒ 구민지 iznim.res


- 평소 성격은 어떤가.
"차분하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노는 것도 무척 좋아해서 나조차 헷갈린다.(웃음) 첫 인상이 안 좋아서 좀 손해를 보는 타입이기도 하다. '여자가 많을 것 같다', '가볍다', '매일 술 먹고 노는 것만 좋아할 것 같다' 등등(웃음) 다양하게 안 좋은 평들이 있지만, 전부 그 반대다. 보이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 그럼 평소 취미생활은 무엇인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영상에 흥미가 많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최신 개봉작은 거의 다 본다."

- 영감을 얻는 창구가 있다면.
"'내 감정에 충실하자' 타입이다. 순간순간 드는 감정들을 메모한다. 얼마 전에는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웃음)"

- 올해의 가장 큰 목표가 있을까?
"역시 좋은 곡 만들기. 그런 좋은 곡들이 쌓이고 쌓인다면 서른 살 쯤 정규 앨범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지금껏 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스스로에게 실망도 제법 했다. 모자람을 딛고 더 괜찮은 곡들을 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팬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정독해 주신 분들, 그게 아니신 분들, 빠짐없이 전부 감사드린다. 이 길고 긴 대화와 생각을 시간내어 들여다 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여러분들께 계속 조약돌을 던지는 존재이고 싶다. 그 물결을 같이 느껴주실 분들께 미리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사랑을 전하고 싶다. 음악으로."

진준왕 조뜰사운드 달칵 쇼미더머니 더블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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