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로 멜버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한경수 PD와 진모영 감독.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로 멜버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한경수 PD와 진모영 감독. ⓒ 진모영


영화제를 호기롭게 즐길 시간도 없었다. 말 그대로, 고강도 체력전이자 강행군이었다. 7월 30일 밤에 인천공항을 출발, 다음날 아침 호주 시드니 공항에서 바로 멜버른 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31일 오후 1시 상영에 맞춰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은 바로 호주 국립대 초청상영회가 예정된 수도 캔버라로 이어졌다.

그날 하루 밤 잠을 청했다. 이튿날, 영화 상영과 강연을 마친 후, 영화제 두번째 상영을 위해 멜버른으로 복귀하는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상영도 상영이었지만, 한국인 교수가 호의로 마련한 초청상영회를 져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진모영 감독은 그렇게 호주 대륙을 누볐다. 제64회 멜버른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 덕분이었다.

독립 PD로 활동했던 그가 '영화감독'의 이름으로 호주 멜버른과 미국 LA, 캐나다 토론토를 누볐다. 해외 국제영화제 참석도 처음이었다. 영화제의 여독이 풀릴 즈음이던 8월 중순, 진모영 감독을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님아>를 보는 해외 관객들도 "다큐라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다"며 영화제 참관기를 들려줬다.

다큐에 대한 시트콤 같은 반응..."깜짝 놀랐다"

 제22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Hot Docs Canadian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에 참석한 진모영 감독.

제22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Hot Docs Canadian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에 참석한 진모영 감독. ⓒ 진모영


작년 11월 말 개봉, 전국 480만 관객을 동원한 <님아>는 8월 현재까지 총 16개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 상영됐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제16회 올해의 영화상을 제외하곤 전부 해외 국제영화제거나 유수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였다.

그 중 진모영 감독은 세계 최대의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손꼽히는 제22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Hot Docs Canadian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와 제21회 로스앤젤레스영화제(LA Film Festival), 제64회 멜버른국제영화제(Melburne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 직접 참석했다. 앞으로도 독일 라이프찌히 국제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영화제와 중국 광저우 영화제 상영이 예정돼 있다.

성과도 남달랐다. <님아>의 진모영 감독은 관객상과 다큐멘터리 부문의 단골 수상자였다. DMZ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스위스 니옹의 비전 뒤 릴(Visions du Reel)과 핫독스에서는 관객상을, LA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님아>가 거머쥔 트로피 수는 총 10개. 그런 진모영 감독이 해외에서 체감한 <님아>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멜버른은 남반구 최대 영화제로 알려져 있어요. 시드니 영화제와 멜버른 영화제가 <님아>를 상영하려고 경쟁이 붙었었는데, 결국 두 영화제 모두 상영하게 됐죠. 멜버른은 작은 상영관을 예상했는데, 가장 큰 400석 규모 대형극장을 배정해줘서 깜짝 놀랐어요. 2회 상영 모두 매진이 돼서 고마웠고요.

의외로 교민들보다 백인 관객들이 다수더라고요. 호주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술도 많이 마시고 성정이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님아>는 굉장히 학구적으로 질문도 길게 하고 진지하게 봐 줬어요. 프로그래머 역시 굉장히 신경을 써줬고요.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본 서구 관객들의 반응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의 포스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장편을 제외한 단편만을 경쟁으로 삼는 멜버른 영화제는 대신 관객들이 직접 투표하는 관객상을 선정한다. 8월 16일 폐막 이후 현재까지 인터넷 투표가 진행 중인데, 12편의 앙코르 상영작에 포함된 <님아> 역시 강력한 후보작이다. 진모영 감독은 멜버른을 포함해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낯선 <님아>에 대한 해외 관객들의 반응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LA영화제에서는 관객들이 거의 시트콤 수준으로 울고 웃고 하더라고요. 반면 호주 관객들은 그에 비해 조금 수줍었고요. 어떤 보편성이 느껴졌어요. LA가 특히 그랬죠. 강원도 횡성에서 상영할 때 어르신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하고 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느낌이랄까. 낙엽 가지고 놀고 하는 부분에선 엄청 오버를 하는 것 아니냐고 제가 생각할 정도였거든요.

관객이 감독과 같은 편에서 마음의 허리띠를 풀고 유쾌하게 감상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둘째로는 딱히 다큐멘터리라고 취급하지 않더라고요. 우리에겐 다큐가 어떤 문화적인 허영이랄지, 선입견이 있는데, 북미나 유럽 모두 그런 구분이 전혀 없는 것 같았어요. 좋은 영화, 재밌는 영화가 우선이고, 울고 웃으면서 보는 그냥 영화인 거예요.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런 말을 했어요. '다큐멘터리라고 말하지 마라, 그냥 영화다'. 다큐라고 말하는 순간 감독들이 자꾸 장르를 의식하고 표현하면서 이상한 걸 한다는 거죠. 오히려 서구 관객들은 그런 구분 없이 영화를 그대로 즐긴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어요."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자의식이 충만한 진모영 감독이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던 영화제는 단연 핫독스였다. 다큐멘터리 계에 있어서 핫독스는 유럽의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함께 양대 산맥으로 꼽히며, 업계에선 '다큐멘터리의 칸'이라 불린다. 북미에 핫독스가 있다면, 유럽엔 암스테르담이 있다고 보면 맞다. 여기서 <님아>는 관객들이 뽑는 톱5에 선정됐다. 그간 한국의 다큐멘터리들이 회고전이나 특별전의 형태로만 초청됐기에 <님아>의 공식초청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핫독스에서 감동적이었던 게, 다큐멘터리 영화제인데도 불구하고 예산과 관객이 엄청나다는 거예요. 다큐를 보기 위해 남녀노소가 상영 1시간 전부터 줄을 서기도 하고요. 자원봉사자도 노인들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핫독스의 관객들은 극영화나 다큐라는 장르에 대한 구분을 두지 않아요. 또 영화를 보고 난 뒤 엄청난 동질감을 느끼더라고요.

쑥스럽고 웃겼던 게, 감독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그렇게 줄을 서요. 자기 인생에 있어 감동적인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살면서 단 한 번도 시상식에서 상을 타 본적 없었지만, 수상보다 그런 관객들을 만나는 게 더 감동적이었어요."

"해외 영화제 경험은 보편적 시선의 회복"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진모영 감독은 올 한 해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님아>의 종영 이후에도 밀려드는 영화제 초청과 강연 등을 소화하는 중에도, 차기작 <이방인>의 촬영에 매달려야 했다. 탈북자 잠수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방인>은 2년 간 촬영을 진행했고, 내년 봄 후속 촬영만을 남겨 두고 있다. 진모영 감독은 <이방인>은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 2015 다큐멘터리제작지원 부문에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향후 <님아>의 전 세계 상영을 염두에 두고 있고, (또 다른 작품을 두고) 국제 공동제작을 타진 중인 진모영 감독. 그에게 2015년은 해외 관객들의 눈높이를 확인하고 국제적인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올 가을 열리는 광저우 국제영화제에서는 중국 측 투자자와의 구체적인 미팅도 계획 중이고, 이미 사전 접촉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상태다.

감독이라면 누구라도 후속 작품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모영 감독도 그랬다. 하지만 올 한해 국제영화제의 경험을 통해 생각을 바꾸고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영화제 경험도, 수상 경험도 없던 그에게 <님아>가 준 선물이었다.

"촬영이 1순위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영화제 일정에 촬영 일정을 맞추는 거 같아서 부담스러웠는데, 돌아보니 <님아>의 출발점을 재확인하고 동기에 충실할 수 있던 기회였던 거죠. 보편적인, 국제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초심 말이에요.

투자나 배급 영역에서 실질적인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고요. 또 그간 한국 다큐멘터리들이 해외 영화계와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됐어요. 핫독스 등 여러 영화제에 피칭 부문이나 프로젝트 마켓에도 꾸준히 한국 다큐멘터리들이 진출하고 있어요. 여러 동료 다큐 감독들도 이런 기회를 잘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님아그강을건너지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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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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