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에서 지난 7월부터 연재 중인 웹툰 <단지>는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만화임을 밝히고 있다.

레진코믹스에서 지난 7월부터 연재 중인 웹툰 <단지>는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만화임을 밝히고 있다. ⓒ 레진코믹스


"괴롭다. 시종일관 괴롭다."

고양이 귀를 가진 귀여운 여자 아이의 그림체에 속아(?) 클릭한 후에야, '괴로운 만화'라는 리뷰를 이해하게 된다. 호러 만화보다 섬뜩하게 그려진 엄마의 얼굴과 '송곳으로 눈깔을 콱 찔러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말, 초등학생 여동생의 배를 걷어차던 오빠, 늘 양보하게 만드는 나이 어린 남동생, 맨 위에 군림하는 아빠로 이뤄진 가족은 딸 '단지'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고양이 인간으로 등장하는 만화가 단지가 그리는 일상은 '가정으로부터의 폭력'이다.

웹툰 전문기업 레진코믹스에서 7월 8일부터 연재중인 <단지>는 16화가 올라온 현재까지 인기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유료결제 회원 가운데 60%가 여성인 만큼 로맨스와 학원물이 인기 있는 이 사이트에서 일상툰, 그것도 전혀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보려는 사람이 많은 건 좀 이상한 일이다. 레진코믹스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료로 웹툰을 볼 수 있는 부분 유료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기다리지 못해 코인(웹툰을 볼 수 있는 가상화폐)을 충전했다"는 사람들 덕분에 <단지>는 레진코믹스 창업 이래 최단 기간 최다 조회수(44일 만에 300만)를 기록했다.

 웹툰 <단지>의 한 장면. 단지는 아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엄마를 같은 여자로서 위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작가는 "어릴 때는 내가 받는 대우가 학대이거나 차별인지 인식하지 못해서 엄마를 더 원하고 사랑받길 원했다"고 말했다.

웹툰 <단지>의 한 장면. 단지는 아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엄마를 같은 여자로서 위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작가는 "어릴 때는 내가 받는 대우가 학대이거나 차별인지 인식하지 못해서 엄마를 더 원하고 사랑받길 원했다"고 말했다. ⓒ 레진코믹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괴롭다"면서도 이 만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폭로'라는 이야기의 특성상 작가는 본명을 숨긴 채 극 중 캐릭터로서 '단지 널 사랑해'라는 페이스북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 중인데, 현재 이곳은 '상담소'를 방불케 한다. "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지는 만화"라고 밝힌 작가에게 "힘내라"는 응원글부터 "나도 그렇게 자랐다"며 구구절절 장문의 편지를 남기는 독자들도 있다.

"만화에 대한 반응이 생각 이상이었다"고 놀라며 "마치 <복면가왕> 출연자처럼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작가와 서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서른하나, 독립한 지 10개월째. 생각해 보니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가족을 겪어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그들에게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으며 바보같이 버티기만 해왔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일기장에만 꾹꾹 눌러 담아왔던 마음속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작가 주)

 웹툰 <단지>의 한 장면. 단지의 가족 구성원.

웹툰 <단지>의 한 장면. 단지의 가족 구성원. ⓒ 레진코믹스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인 가정과 그 안에서 차별당하는 구성원 특히 여성이 적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단지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다만,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이를 공개한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독립을 통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됐고, 이야기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그 방법으로 만화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만화를 보며 드는 생각은 '가족이 보면 어쩌지?'라는 오지랖이다. 일부 독자들은 "차라리 가족들이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작가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 자세히 설명할 순 없는데, 지금은 그저 '보여줄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굳이 가족을 이해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그래도 이 문제에 관해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의문점이 따라다닐 것 같아서 해결을 봐야 할 것 같긴 합니다. '이해'까지는 아니지만 그저 왜 그래야만 했냐는 '호기심'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 같습니다." 

 웹툰 <단지>의 한 장면.

웹툰 <단지>의 한 장면. ⓒ 레진코믹스


처음에는 어린 시절 기억을 가둔 일기장을 열어보기조차 두려웠다지만, 이를 풀어내는 단지의 만화는 비극적이지만은 않다. 일단 귀여운 모습을 한 캐릭터가 내게 조곤조곤 고민을 털어놓는 형식과 자주 등장하는 '달달한' 군것질 장면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친밀감을 준다.

덕분에 "작가의 한풀이 만화"로 시작했던 <단지>는 독자들에게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는 같은 상처를 가진 독자들의 사연을 페이스북에서 비공개로 받았다. "차마 가족들 앞에서 아픔을 얘기하지 못해 만화로 그려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화로 그려서 그 아픔을 대신 말해주고 싶었다"는 그는 "그분들의 이야기는 [독자 사연제공]이라고 따로 표시해 부록 형식으로 연재될 것이다"라고 예고했다.

"'난 왜 이렇게 힘들지? 나만 이렇게 사나?'라고 생각하는 단지들이 많을 거예요. 고민하지 마세요.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맞습니다. 내가 힘들면 힘든 게 맞는 거고, 내가 슬프면 슬픈 게 맞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부정하더라도 말이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세요. 그리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것만 기억하고 있어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의 길이 좀 더 쉽게 보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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