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치외법권>에서 은정 역의 배우 임은경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명 'TTL 소녀'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임은경이 영화 <치외법권>으로 돌아왔다. 열일곱 소녀가 어느새 서른 초반의 여인이 됐다. ⓒ 이정민


TTL 소녀. 짧은 머리에 초점 잃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으로 스타덤에 오른 임은경의 별명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일렉트로닉 뮤지션 Aphex Twin의 'To Cure A Weakling Child'를 배경음악으로 신비감이 한층 더 강조됐던 기억이 대중들의 뇌리엔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임은경이 영화 <치외법권>으로 돌아왔다. 열일곱 소녀가 어느새 서른 초반의 여인이 됐다. 2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같은 N 세대"임을 강조하니 "나도 그간 잊고 있던 단어"라며 크게 웃는다.

27일 개봉인 <치외법권>은 본격 코믹 형사물이다. 임창정-최다니엘이 개성 넘치는 형사로 호흡을 맞춘 가운데, 임은경은 연쇄 실종 사건의 피해자이자 실종된 동생을 구하려는 언니 은정 역을 맡았다. 애초 주인공들과 애정 전선도 있고 비중이 큰 캐릭터였으나, 막상 완성된 영화에선 분량이 꽤 줄었다. 11년 만의 영화 복귀라 아쉬움이 클 법도 한데 임은경은 오히려 "조금이나마 내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모습이었다.

연착륙 시도

 TTL 소녀 - 임은경의 별명이다. 1999년 짧은 머리에 초점 잃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 이미지로 그는 그야말로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그녀에게 이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기도 했다.

TTL 소녀 - 임은경의 별명이다. 1999년 짧은 머리에 초점 잃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 이미지로 그는 그야말로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그녀에게 이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 임창정과는 영화 <시실리 2km> 이후 11년 만의 재회다. 복귀작에서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이고 교제설 기사까지 났는데 당황스럽진 않았는지.
"애초에 임창정 선배님이 감독님에게 제 얘길 해주셔서 역할을 하게 됐다. 현장에서 연기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많이 지도해주시기도 했는데 열애설까지 났다(웃음). 워낙 잘 챙겨주셔서 그런 거 같다."

- 이 영화가 다시 배우를 시작하려는 임은경에겐 연착륙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과거 임은경은 신비스럽다는 이미지에 부담을 느끼는 거 같았고, 그걸 깨고자 부단히 움직이곤 했다.
"지금은 훨씬 편하고 행복하다. 예전엔 나 혼자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워낙 당시 광고 때 이미지가 강했는데 억지로 깨려다 보니 부작용이 있었던 거 같다. 과감한 의상도 입고, 나름 색다른 역할도 했는데 역효과더라. 무리수였다. 과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있다지만 내겐 너무도 힘들고 불안한 시간이었다. 그때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 그 불안함이 곧 연예인에 대한 부담감이지 않았나. 본래 활달한 의리파라고 들었다. 특히 1999년 당시 경쟁 통신사에서 거금을 준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 병원비 800만원만 갚으면 충분하다. 데뷔시켜 준 곳과 의리를 지키겠다' 말한 건 임은경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TTL 광고로 날 알렸기에 앞으로도 감사함은 잊지 않겠지만 너무 이쪽 생리를 몰랐다.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학생 땐 친구들과 도시락도 까먹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나 역시 적극적이고 능동적일 수 있는 사람인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작아지더라.

집에서 계속 생각하고 고민했지만 촬영 현장에서 그 고민의 결과가 드러나지 않더라. 결국 나 스스로 만든 불안감이었다. 내가 불안해 하니 보시는 분들도 '어? 쟤 왜 저래?' 했을 거다. 결국 그건 숨길 수 없는 거였다. 그래서 서른이 빨리 왔으면 했다. 지금은 내 성향도 좀 바뀌었지만 많이 편하다. 오히려 내가 더 낯선 사람에게 적극 다가서기도 한다."

- 알려진 대로 당시 배우 이병헌의 팬 사인회에 갔다가 한 연예기획자에게 캐스팅됐다. 스타덤에 올랐다가 돌연 사라졌고, 다시 대중 앞에 서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쭉 승승장구한 건 아니었다. TTL 광고에 출연하기 전까지 네 번의 낙방이 있었다. 화장품 광고 등 여러 광고에서 떨어졌다. '너무 어리다', '남자 같이 보인다' 등이 이유였는데 많이 속상했다. 다시 활동하게 된 건 주변 분들과 팬들의 응원 덕이다. 본래 연예인이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쉽지않나. 그럼에도 날 처음부터 좋아해주셨던 분들이 있더라. 스스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출발선 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서른이 빨리 왔으면 했다"던 그녀, 이제 그 나이가 됐다

 영화<치외법권>에서 은정 역의 배우 임은경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치외법권>에서 은정 역의 배우 임은경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조심스럽지만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임은경의 데뷔작이면서 동시에 당시 100억 원대 대형 상업영화로 출범했지만, 결국 참패했다. 신인에겐 큰 숙제였을 거다. 이 작품이 남긴 교훈이 있다면?
"내겐 훌륭한 작품이다. 그런 기회 아마 다시는 없을 거다. 대작이라 부담도 컸지만 첫 영화였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연출한) 장선우 감독님을 꼭 찾아뵙고 싶다. 제주도에 계신다는 소식은 알고 있다."

- 그 직후였나, 2002년 부산영화제 당시 <러브레터>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받기도 했다. 이때부터 해외 진출의 꿈을 키웠던 건지.
"직접적인 연락은 없었다. 건너서 듣기만 했는데, 그저 감사했을 따름이다."

- 그리고 중국으로 떠났다. 2005년 중반이었는데 당시 중국 드라마 <정애보험> 한 편을 찍고 소식이 없었다. 사실상 공백기였고 짧게 잡아도 8년의 시간 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2005년 맞다. 5개월 동안 촬영했다. 그 직후 한국으로 왔다, 한 3, 4년은 진짜 힘들게 인생 공부했다. 사람도 만나기 싫었고, 정말 고슴도치가 된 기분이었다. 모두가 날 건드리는 거 같았고, 무슨 말에도 쌈닭처럼 내가 쏘고 있더라. 그래서 지인들을 안 만나게 된 거지.

그러다가 앞으로 인생을 한참 살 텐데 내 편이 아무도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부터 발레도 배우고 등산도 다니고, 서점도 가고, 날 위한 시간을 보냈다. 아까도 말했지만 원래 밝은 아이였다. 학창시절은 다른 아역 배우 출신보다 잘 보낸 거 같다. 친구들과 수련회도 가고 춤추고 노래하며 나름 즐겁게 보냈다."

- 그 과정을 거치며 자신을 치유하는 법을 익혀왔을 거 같다.
"(잠시 생각) 그냥 부딪히는 거다. 예전엔 누가 내게 다가오는 걸 기다렸다면, 이젠 지인들이 낯선 사람을 데려와도 먼저 관심을 보이곤 한다. 그러다 보니 좋은 친구들도 생기더라. 생각해 보면 당당하게 내가 고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TTL 소녀'인 걸 공개했을 때 오히려 더 도움을 받았다. 학교에 기자들이 찾아와도 친구들이 그냥 가시라고들 했다. 광고 계약에 겁먹어 비밀에 부쳤던 처음 한두 달 땐 여러 오해를 받곤 했지. 위약금 이런 게 무서웠는데 그냥 눈 감고 말하니 친구들이 더 비밀을 끈끈하게 지켜주더라."

임은경은 이후 웹드라마 <유명산 진달래>를 통해 대중과 만난다. 예지력이 있는 순수한 산골 소녀가 도시로 내려오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당장 중국과 일본에서 먼저 방영 예정이고, 국내 공개 시점은 미정이다.

임은경은 지금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서서히 땅으로 발을 뻗고 있다.

 영화<치외법권>에서 은정 역의 배우 임은경이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3, 4년은 진짜 힘들게 인생 공부했다. 사람도 만나기 싫었고, 정말 고슴도치가 된 기분이었다. 모두가 날 건드리는 거 같았고, 무슨 말에도 쌈닭처럼 내가 쏘고 있더라." 그녀는 힘들었던 20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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