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영화는 재미있다. <타짜>(2006)에서 김혜수가 "나 이래 봬도 이대 나온 여자예요!" 하고 말할 때 완전히 넘어갔다. 이대의 의미가 영화판에서 어떻게 전복될 수 있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상상력으로 친다면 <전우치>(2009)가 윗길이다.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장르의 특성을 십분 살린 영화니까.

<타짜>와 <전우치>로 1300만 관객을 모은 최동훈은 <도둑들>(2012)로 단칼에 1300만 고지를 넘는다. 호화 캐스팅도 화제였지만, 영화의 짜임새와 속도감·반전이 한국판 할리우드 영화 가능성을 보여준 덕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최동훈 영화는 재미있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암살>은 색다르다.

개봉 사흘 만에 <암살>을 보고 난 소감은 "1300만은 거뜬하겠네!" 하는 것이었다. 재미도 재미지만 영화에 담긴 문제의식이 적잖게 진지했다. 영화는 우리가 70년 동안 손 놓고 있던 문제를 묻고 있다. <암살>은 이대로 계속 갈 것인지, 추악하고 께름칙한 한국 현대사를 언제까지 덮고 갈 것인지 묻는다.

<암살>의 시간과 공간

 영화 <암살> 중 한 장면.

영화 <암살> 중 한 장면. ⓒ (주)쇼박스


<암살>의 시대는 1933년에 집중된다.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이 있었던 1932년 이듬해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 22년 지난 시점의 폭탄투척.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 대해 장개석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하다니, 윤봉길 길이 빛나리라"고 칭송한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의 심장 경성은 어땠는가?

1920년대 말 30년대 초 경성풍경은 안석주의 '만문만화'에 적실하게 드러나 있다. 그의 만화에 기대어 당대 풍속도를 재조명한 책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에서 우리는 영화의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 일본에서 들어온 의상, 유성기, 백화점 같은 신문물이 신세대를 사로잡는다. 거기서 생겨난 어휘가 '모던뽀이'(모던보이)와 '모던껄'(모던걸)이다.

<암살>은 모던카페 '아네모오네'에서 몸을 흔들어대는 군상으로 모던뽀이와 모던껄의 실상 일부를 재연한다. 춤과 '삐루'(맥주)와 퇴폐와 향락이 경성의 청춘남녀를 사로잡았다. <술 권하는 사회>(1921)와 다른 양상이 전개된 것이다. 모던뽀이와 모던껄은 조선독립과 해방에 무심한 채 부나방처럼 향락과 소비에 굴복하고 살아갔다.

<암살>에서 묘사된 공간은 풍성하다. 항주에 자리한 임시정부와 상해, 암살의 거사 장소 경성, 독립군의 거점 만주, 경성의 백화점에 묻어나는 동경. 그러니까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중국의 풍광과 사물과 인간이 경성에서 뒤얽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인들의 일상생활과 사유의 영역이었다. 하와이는 양념이다.

<암살>의 살아있는 인물군상

다채로운 공간에 입체감을 더해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조선의용대장 김원봉 같은 실존인물과 일군의 가상인물이 그들이다. 전형적인 일제부역자 강인국과 그와 대립하는 아내, 안옥윤의 쌍둥이 동생 미츠코. '아네모오네'의 마담과 일본인 기둥서방 등등. 하지만 관심을 끄는 인물은 단연코 염석진이다.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려 했던 희대의 영웅 염석진. 그는 장편소설 주인공처럼 복잡한 내면세계를 가진 중층적인 인물이다. <암살>에 염석진이 없었다면, 영화는 지금 같은 성과와 흥행을 이끌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변절사유는 간명하다. 이광수나 모윤숙, 안석주 같은 자들의 내면세계 일부를 해명해주는 염석진.

<암살>에서 관객을 긴장시키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부녀의 대결일 것이다. 조국해방의 이름으로 딸이 아버지에게 총을 쏠 것인가! 아버지가 자기생존을 위해 딸에게 총질할 수 있을까? 절체절명의 순간이 목전에 닥치고 객석은 숨을 죽인다. 이념을 위해 부모에게 총을 겨누거나, 목숨을 위해 자식을 죽인다는 설정?

여기에 낭만적인 요소가 슬쩍 개입한다. 혁명과 전장에도 사랑은 싹트는 법! <암살>의 묘미는 내부자들의 연인관계를 건너뛴다는 점에 있다. 의외의 관계에서 빛나는 사랑의 에피소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최동훈의 장기가 빛을 발한다. 그는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객석의 진지한 몰입을 차단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속도감이다.

염석진과 한국현대사

 영화 <암살> 중 한 장면.

영화 <암살> 중 한 장면. ⓒ (주)쇼박스


<암살>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반민특위' 재판정 풍경이다. 재판정에 출석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염석진. 1948년 만들어진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의 약칭이 '반민특위'다.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하고 친일 부역한 자들을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삼았던 자가 이승만이다. 이런 이승만을 두고 김무성 대표는 "국부로 예우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광복 이후 허다한 '염석진들'이 실권을 장악한다. 약산 김원봉은 모진 경험을 한다.

"경찰서에 붙잡혀 가서 대표적인 악질 친일파 노덕술한테 뺨을 맞고 욕설을 들었다. 내가 조국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들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고 모욕을 당했으니…. 의열단 활동을 같이했던 유석현 집에 가서 꼬박 사흘간 울었다." (김원봉의 회고)

영화는 약산의 고통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후반부에 상식을 뛰어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염석진 같은 일제의 주구가 맞이해야 할 최후를 선물하는 <암살>. 실제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실행된 적 없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영화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암살>은 김한민의 <최종병기 활>(2011)을 연상시킨다.

<암살>에서 읽히는 <최종병기 활>

병자호란 당시 처절하게 짓밟힌 조선의 산하와 인조의 굴욕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덧칠한 영화가 <최종병기 활>이다. 활 한 자루 가지고 막강한 청나라 대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영웅주의이거나 천우신조를 바라는 나약함과 다르지 않다. <최종병기 활>은 실제 역사와 무관한, 감독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희망 사항이었다.

<암살>도 같은 노선 위에 있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 이후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던 독립운동, 허다한 모던뽀이와 모던껄의 등장과 사회문제화. 일제에 편승한 지식인 앞잡이들과 부역자들, 이승만의 행악질로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반민특위', 온전하게 이뤄지지 못한 친일 부역자들의 단죄. 그것이 결과한 어두운 한국 현대사까지.

그러하되 <암살>은 몇몇 문제를 제기한다. 당신이라면 염석진이 아니라 안옥윤의 길을 가겠는가. 암담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는가. 민족화합이라는 명분으로 모두 용서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남북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약산은 어찌할 것인가. 청산하지 못한 100년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하여 미래로 나아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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