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방송인 이정수.

방송인 이정수. ⓒ NXT 인터내셔날


리예가 10개월 정도 되었을 때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보통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지만, 우리가 너무 늦게 들어오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리예를 부모님 댁에 데려다 주어야 합니다. 저희 집은 인천, 부모님 댁은 상계동입니다. 외곽순환도로를 타면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죠. 그동안은 리예가 떼를 쓰는 바람에 아내가, 동승해서 안고 있거나 카시트 바로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자, 예전 상황은 이렇고요. 이제부터 초보 아빠의 공포스러운 드라이빙 일화가 시작됩니다. 그날은 리예가 할머니 댁에 있다가, 다시 인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둘 다 스케줄이 있어서 둘 중에 하나가 상계동에 가야 했죠. 저는 마치 육아고수인양, (허세 가득한 상태로!) "리예를 혼자 데리고 오겠다!"며 상계동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허세를 부린 것은 나름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출발 직전에 리예 배를 든든하게 해준 다음, 리예가 슬슬 졸려하면 카시트에 눕히는 거죠. 그럼 리예는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 계속 자게 되는 겁니다.

혼자 데리고 오겠다!

 자리에 앉히면 우는 리예.

자리에 앉히면 우는 리예. ⓒ 이정수 제공


훗, 계획대로 쭈쭈를 아주 잘 먹더군요. ㅋㅋㅋ 좋았어!! 순조로워. 그리고 여유 있게 카시트에 눕혀서 출발!

15분간 자기 혼자 뭐라고 중얼댑니다. 잠들기 전 최후의 발악이랄까?! 그래도 네 녀석이 별 수 없지!!

그런데... 갑자기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음악을 틀어줘도 안되고, 공갈 젖꼭지를 물려줘도 안 되고, 쓰다듬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심지어 카시트의 안전띠를 벗으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헉!! 어쩌지?

안 되겠다 싶어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리예를 안아서 달랬습니다. 고속도로인지라 옆에는 대형 화물트럭들이 지나다닙니다. 안아주면 살짝 진정되긴 했지만, 조금만 카시트에 눕히려 하면 다시 울었습니다. 심하게 고민했습니다. '안고 운전할까?'

하지만 너무 위험하죠! 30분이나 더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니까요. 멘붕입니다. 그리고 점점 분노게이지가 상승했습니다. 미치겠더라고요.

멘붕... 분노게이지 상승... 에잇

에잇, 모르겠다!! 전 그냥 억지로 리예를 카시트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채우고, 아이가 울든 말든 분노의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5분 후!! 울던 리예가 잠들더군요. 진심으로 이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5분은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어휴! 결국 잘 거면 진작 주무시지.

집에 도착해서 15분 동안 리예랑 대화도 안했습니다! 진짜 완전 눈도 마주치기 싫었죠! 그러면서 또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아닌 아내가 리예를 데리고 왔다면?'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내가 이런 일을 겪었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냥 아내는 제 곁에서 평생을 순탄하게 살았으면 하거든요. ㅋㅋㅋ 

그때부터였습니다. 리예와 혼자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무조건 제가 합니다. 카시트에 적응시키기 위해 진짜 고생 많이 했습니다. 크~ 그 인고의 세월! 덕분에 주변에 SNS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네요. 이제는 카시트가 자기 자리인 줄 알고, 의젓하게 앉아있는 리예가 대견합니다.

 카시트에 무사히 앉은 리예와 찰칵.

카시트에 무사히 앉은 리예와 찰칵. ⓒ 이정수 제공


아버지로서는 100점이지만, 남편으로서는 0점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곤 했던 우리 아버지. 열심히 일해서 가족은 지켰지만, 결국 외톨이가 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전 '결혼해도 연애시절처럼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2013년 10월 5일, 드디어 결혼했습니다. 확실히 결혼은 연애와는 다른 게 많더라고요. 심지어 결혼한 지 4개월만에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에 연애와 다른 결혼의 모습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몸도 정신도 혼자일 때보다 과부하가 많이 걸리더군요. 언제부턴가 점점 편한 것을 찾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갔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결국 그렇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이건 아니다'라며 아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법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소(小)프라이즈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특별한 날만을 위한 서프라이즈(surprise)가 아닌 평소에 아내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이었죠. 그 소소한 실천을 글로 올리려 합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효과는 실로 대단하기에 다 함께 공유해서, 우리 모두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길 기원해봅니다. <방송인 이정수 드림>

'오마이스타'들이 직접 쓰는 나의 이야기 - 오마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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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방송인 이정수는 KBS 공채 17기 개그맨으로 2002년 데뷔했다. <개그콘서트> 등에서 훈남 이미지에 특유의 유행어까지 더하며 데뷔 연도에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사랑과 전쟁>, 영화 <달콤한 거짓말> <신이 보낸 사람>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고, 최근엔 '이정수의 놀이 콘서트'의 기획과 진행을 맡아 문화기획자로까지 저변을 넓히고 있다.
이정수 소프라이즈 오마이스토리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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