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수첩 >의 한 장면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지난 4일 방송된 MBC < PD수첩 >에 대한 반응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세간에 '김치녀'로 통칭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과 최근 두드러진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해 다루었기 때문이다.

'김치녀' 현상으로 시작된 남성들의 '양성평등론'

시작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을 받고 수천만 원짜리 가방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자 친구에게 짜증을 내는' 속칭 김치녀 동영상이었다. 그리고 이런 '김치녀'에 대한 사이트를 운영하며 '이들이 사회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며 문제가 되는 여성'이라고 지탄하는 남성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양성평등'은 군 복무에 대한 남성들의 억울함으로 이어진다. 20~30대의 의식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80.6%가 군 복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또한 2015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군 복무에서부터 학교, 연애, 사회생활에서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남녀 공학을 기피하는 남학생들의 조류에서 알 수 있듯 어릴 때부터 여학생들의 '실력'에 밀리고 있다는 생각하는 남성들은 그럼에도 사회가 자신들에게만 군 복무, 데이트 비용, 결혼 비용 등 각종 사회적 부담을 지게 하면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과격하게는 여성의 동등한 입대 혹은 몇 주간의 군사 훈련 또는 군대에 비견되는 각종 봉사 활동 등을 예로 들며 여성도 동등하게 일정 기간을 의무적으로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달픔

 < PD수첩 >의 한 장면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 PD수첩 >은 조선 시대 이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전한 가운데, 사회적으로는 남성을 우월적 존재로 인정하여 각종 의무를 부담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이상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받을 수 없는 정서적, 현실적 괴리감에 대해 짚으려고 했다. 이런 현실이 '김치녀'를 비롯한 양성평등 등의 극단적 주장으로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심리학자와 함께 데이트로 짚어본 현실은 웃프다. 남성들은 의식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자 하며, 그 결과는 그들이 슬그머니 자기편으로 당긴 영수증으로 귀결된다. 문제는 시뮬레이션에서 드러난 남녀의 데이트 속 역할 관습이 이후 결혼까지 이어지는 남녀 간의 역학 관계를 규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취직보다는 실업과 비정규직이 익숙한 2030 세대에게 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진 이러한 성 역할은 딜레마로 작동한다. 그들은 여전히 아버지처럼 가부장적이어야 한다는 정서적 각인에 시달리지만, 현실 속 그들은 그것을 버텨낼 만큼 특권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허지웅의 말처럼 '남녀 갈등'이라는 인터넷 세상의 지옥도는 계급 갈등 등 현실 갈등의 또 다른 현상이다. 불안한 사회에서 약한 고리인 외국인 노동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반발이 드러나는 것처럼 실업이 일상화된 2030 세대는 그 불만을 남녀평등의 문제로 분출한다. 

방송 그 후...논란을 부른 것은? 

 < PD수첩 >의 한 장면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하지만 < PD수첩 >의 의도와 달리 방송 직후 프로그램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물론 각종 포털사이트는 방송 내용과 관련된 논란으로 활활 타올랐다.

무엇보다 논란이 된 것은 여성 혐오 현상의 예로 등장한 '김치녀'와 그에 대한 사이트를 운영하는 양성평등 주장 운영자의 적절성 때문이었다. 혐오 현상의 두드러진 예로부터 시작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는 오히려 '김치녀'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을 뿐이라는 반발을 불렀다. 남성 사이트 운영자 역시 보편적인 양성평등의 예로는 부적절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개 과정에서 남녀에게 가중되는 다른 부담을 설명하기 위해 '김치녀'와 비슷한 실험을 등장시킨 것도 문제가 되었다. 남성은 무릎을 꿇고 여성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하고, 그것을 보며 반색을 하는 여성과 난감해 하는 남성의 반응을 일반화한 것 역시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런 논란을 통해 평소 같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조차 남녀갈등의 문제가 되었을 때는 어느 때보다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만큼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제작진이 적절치 못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치더라도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은 오히려 남성의 성 역할의 과도기적 혼란과 사회 경제적 부조응의 문제라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반면 논란은 결론의 적절성을 차치하고 드러난 현상의 적절성 여부만을 놓고 들끓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오히려 이를 통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였던 남녀 갈등이 쑤셔놓은 벌집처럼 되어버렸다. 이는 제작진의 어설픈 접근의 문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미약한 전개가 무엇보다 큰 이유이겠지만,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남녀 갈등에 대한 대중적 인식 역시 한몫을 하고 있음은 간과할 수 없다. 불쾌함을 억누르고 생각해 볼 사회적 성숙이 아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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