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오 나의 귀신님>과 SBS <너를 사랑한 시간>은 여성의 로맨틱한 감성을 설레게 하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두 드라마는 자중지란에 빠졌다. 로맨스 물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의 갈등이지만, 최근 이 두 드라마가 빠진 딜레마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 위한 갈등이라기엔 주인공의 정체성조차 흔들 정도로 치명적이다.

<오 나의 귀신님>  선우가 사랑하는 건 순애일까, 봉선일까

 오 나의 귀신님

오 나의 귀신님 ⓒ tvn

로맨스 물에서 연적은 사랑의 승화를 위한 갈등 요소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연적이 귀신이라면?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깃든 귀신이라면?

아버지와 기사식당을 하던 순애(김슬기 분)는 범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비명횡사한 처녀 귀신이다. 이제 이승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는 한을 풀거나, 남자를 만나 처녀의 한을 풀면 승천할 수 있지만 기한 내에 그러지 못하면 악귀가 되어 영원히 이승을 떠돌게 된다. 자신이 죽은 이유를 알지 못하는 귀신 순애가 택한 방법은 남자들과 하룻밤을 보내는 것. 하지만 순애의 음기를 이겨내지 못한 남자들은 응급실행이다. 그러던 중 서빙고 보살에게 쫓겨 우연히 들어간 봉선(박보영 분)의 몸으로 만나게 된 강선우(조정석 분)가 자신을 구원해줄 '양기남'인 것을 알고 결사적으로 매달린다.

하지만 봉선이 정신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던 강선우가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변한 봉선과 점차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자, 귀신 순애의 처지는 애매해진다. 강선우가 봉선과 키스한 순간 튕겨 나간 순애. 그저 악귀가 되지 않기 위해 이용하려 했던 선우에게 점점 '연정'을 느끼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선우를 짝사랑하던 봉선은 선우의 사랑을 얻고, 악귀를 피해 승천하는 길을 얻으면 된다고 했던 귀신 순애는 선우가 제안한 1박 2일에 고심하며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오 나의 귀신님>의 딜레마는 여기서 생긴다. 처음엔 셰프 선우의 말에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봉선. 그녀는 선우를 짝사랑했지만, 정작 선우는 자신감 없는 봉선을 답답해  하며 내쫓다시피 했다. 그러던 봉선의 몸에 순애가 들어오면서, 순애의 도움으로 방송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선우는 봉선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선우가 사랑하는 것은 봉선일까, 순애일까. 봉선은 사랑을 얻고 순애는 승천하면 된다 했지만, 이제 순애가 선우를 사랑하게 되면서 문제는 간단하지 않게 됐다.

여주인공은 봉선인데, 실제 여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것은 봉선의 몸에 빙의된 순애다. 결국 드라마 제목처럼 순애가 주인공이라는 것일까? 분명 박보영은 봉선과 순애가 빙의된 봉선을 연기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마치 선우가 봉선과 순애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것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극 중 실제 봉선의 비중은 현격하게 낮아지고, 그녀의 캐릭터조차 개연성 없이 들뛰다 보니 이야기는 봉선에 빙의된 순애에게 더욱 집중된다. 악귀가 되던지 승천을 하게 될 순애. 그렇다면 남겨진 봉선과 선우와 사랑을 이어가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너를 사랑한 시간> 17년의 우정을 우정이라 할 수 있을까?

 너를 사랑한 시간

너를 사랑한 시간 ⓒ sbs

대만 드라마 <연애의 조건>을 리메이크한 <너를 사랑한 시간>은 원작보다는 tvN <응답하라 1997>이 먼저 연상되는 드라마다.

30대 중반의 두 주인공. 애초 원제로 삼으려고 했던 '너를 사랑한 시간 7000일'처럼 17년을 넘게 친구로 지내왔던 둘의 이야기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교 시절 철없는 남녀의 우정과 사랑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전히 친구인 오하나(하지원 분)와 최원(이진욱 분).

고등학교 시절 철없는 소꿉장난 같은 사랑과 우정의 딜레마는 <응답하라 1997>에서 성인이 된 후 바로 '사랑'의 딜레마로 승화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더 이상 친구니 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동성 간의 사랑이건, 이성 간의 사랑이건 다르지 않다. 어른이 되어가는 가장 큰일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의 통과 의례를 겪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최원과 오하나는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직장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오하나의 행동거지는 일에 대한 지시를 내릴 때 외에는 고등학교 시절에서 하나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최원 역시 마찬가지다. 원작의 제목 '아가능불회애니'의 뜻처럼 "너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거야"라고 외친 이후, 오하나를 친구로 대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최원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는다. 30대 중반이 지났지만,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서로 오해하고 친구라고 눙치던 자존심 센 청소년이다.

마치 '키덜트'의 상징체와도 같은 오하나와 최원. 하지만 행동은 영락없는 오래 산 부부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이혼한 부부들이 함께 살며 익숙해졌던 습관을 되풀이하며 보이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서로에게 의존적인 두 사람인데, 굳이 서른 중반을 넘어서까지 친구라고 꿋꿋하게 우기는 퇴행이나 자기기만도 이해가 가지 않거니와, 3년 전 상처를 남긴 채 사라진 약혼자의 등장으로 오하나는 흔들리기까지 한다. 그의 실종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오하나인데 어떻게 17년의 우정은 그렇게 외면하는 것일까. 결혼까지 약속한 서먹한 사랑과 17년 산 부부 같은 우정. 그것이 <너를 사랑한 시간>의 딜레마이다.

귀신에 빙의된 사랑이나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여전히 흔들리는 30대의 이야기는 솔깃한 소재다. 조정석과 박보영의 설레는 사랑 연기와 하지원의 화려한 패션, 이진욱과 윤균상도 좋다. 하지만 구색만으로 16부작 미니시리즈를 이끌어 가기에 <오 나의 귀신님>과 <너를 사랑한 시간>의 스토리는 빈약하다. 심지어 개연성에 의심이 가는 설정이 난무한다. 그저 여자들이 좋아할 이야기로 구색을 맞추지만 말고, 한 번 쯤은 사랑과 인연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고민하게 하는 진심이 담겨야 하지 않을까. 사랑에 퇴행이나 탐닉을 강요하지 않고, 사랑 속에서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오 나의 귀신님 너를 사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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