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은 뭐하나>의 포스터

<귀신은 뭐하나>의 포스터 ⓒ KBS


< TV 문학관 >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KBS 단막극의 전통은 <드라마 스페셜>로 명맥이 이어졌다. 하지만 해마다 입지가 위축되는 수익 구조, 제아무리 배우들이 '봉사 정신'으로 참여한다 해도 줄어드는 제작비의 압박, 게다가 점점 뒤로 밀려가다 못해 이제는 부정기적으로 방영되는 존재감은 그나마 지상파 3사 중 단막극의 존재감을 떨치던 <드라마 스페셜>의 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오랜만에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2015> 시리즈가 찾아왔다. 다섯 편의 시리즈로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은 두 가지 면에서 신선한 기획이 돋보인다.

우선 여름 하면 한 번 쯤 보고 싶은 '납량 특집'으로 기획을 연 것이다. 첫 번째로 방영된 <귀신은 뭐하나>는 <전설의 고향>의 명맥을 잇는 귀신 이야기였다. 두 번째로 이어지는 작품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공포물로 재해석한 '붉은 달'이다. 그 뒤를 이어 스포츠 성장물<알젠타를 찾아서>, 감동 판타지물 <취객>, 아동성장물 <그 형제의 여름> 등 다양한 장르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또 하나, 수익 구조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이미 <간서치 열전>에서 시도했던 웹 드라마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열었다. TV 방영과 함께 네이버 캐스트를 통해 방영을 시도함으로써 이미 활성화된 웹 드라마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현대판 처녀 귀신 이야기 <귀신은 뭐하나>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납량 특집물'이다. 사람들은 오싹한 귀기에 더위마저 잊게 하는 이야기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올여름 찾아오는 귀신들은 좀 시원치 않다. <밤을 걷는 선비>의 뱀파이어는 폼은 잡지만 어쩐지 어설프고, <오 나의 귀신님>의 귀신은 남자에게 하룻밤만 보내자고 앙탈이나 부리는 형편이니 이 역시 면이 서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2015> 시리즈의 첫 테이프를 끊은 <귀신은 뭐하나>는 노골적으로 귀신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귀신 이야기하면 그저 컴컴한 밤 으슥한 산골에서 시작될 법한데 <귀신은 뭐하나>는 화창한 대낮, 사람들이 잔뜩 모인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귀신보다 더 오싹한 순간, 무릎까지 꿇고 한껏 진심을 담아 고백한 남학생은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런 말을 듣고 여학생에게 차인다.

그로부터 8년. 서른 줄의 백수가 될 때까지 그 남학생 구천동(이준 분)은 여학생이 한 말이 걸려 취직이며 사랑이며 되는 일이 없다. 그럴 때마다 그는 여학생의 얼굴에 잔인한 낙서를 하며 외친다. "귀신은 뭐하나 무림이 얘 안잡아가고"라고. 그런데 그의 앞에 무림이(조수향 분)가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

 <귀신은 뭐하나> 중

<귀신은 뭐하나> 중 ⓒ KBS


일찍이 <전설의 고향>에 등장했듯이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귀신들의 이유는 바로 '한'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죽음으로 이른 억울함을 풀지 못한 복수의 한이 있는가 하면, 다하지 못한 사랑 같은 애달픈 한도 있다. 구천동 앞에 나타난 귀신 무림은 후자의 한을 가졌다. 처녀 귀신의 사랑의 한을 풀어달라고, 바로 그 무림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던 구천동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귀신은 뭐하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녀 귀신의 못다 한 사랑 이야기라는 고전적 귀신 이야기의 요소를 더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죽어서 다른 사람도 아닌 구천동 앞에 나타난 무림을 보며 그녀가 찾는 애달픈 사랑의 주인공이 계속 집착하는 이름표의 의사가 아니라 구천동일 것이라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이준과 조수향의 호연 속에 그런 페이크쯤은 감내할 여유가 생긴다.

결국 도달한 곳에는 <사랑과 영혼>만큼이나 죽어서도 잊을 수 없었던 곡진한 처녀 귀신 무림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또 뒤돌아봤을 때, 무림 자신은 잊어도 천동은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있으니 지난 8년간 천동의 현실 낙마조차 설명된다. 

무서운데 웃긴 처녀 귀신 무림의 도발과 그 끝에 만난 둘의 순애보. 웃다가 울고 마는 <귀신은 뭐하나>는 <전설의 고향> 판 처녀 귀신 이야기의 절묘한 현대적 해석이다. 천동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별이 되어 떠난 그녀가 또 다른 귀신을 보내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까지. <귀신은 뭐하나>는 감동과 재미를 적절하게 배합했다. 

이렇게 여름에 어울리는 납량 특집극이지만 그저 <전설의 고향>의 반복이 아니라, 오늘날에 맞는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한 <귀신은 뭐하나>는 이야기의 참신성으로 '단막극'의 위상과 가치를 증명한다. 수익구조니, 존재의 당위성이니 해도 재밌고 알찬 드라마여야 하듯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귀신은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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