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은 지금까지 아이들 앞에서 한 번도 같은 작품을 내 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애들은 다 안다. 어른들은 그저 스쳐가는 기억으로 남지만 아이들은 기억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김영만은 그의 말대로 "아버지가 혼내면 몰래 와서 따뜻하게 위로해 주던 고모부나 이모부"의 느낌을 준다. 물론 그의 일부 모습임에 분명하다. 그가 걸어온 30여 년의 종이 접기 외길, 해당 방송에서는 도저히 담지 못하는 '묵음'이 있기 마련이다.

1988년 <TV 유치원 하나둘셋>으로 처음 불특정 다수 어린이들 앞에 섰던 김영만은 사실 지난 2012년까지 꾸준히 종이접기 프로를 진행해 왔다. 지상파에서 케이블이나 지역 방송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여기에 더해 직접 미술체험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보폭을 넓혀왔다. 

어린이들을 향한 일관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이 관심의 뿌리는 단순히 그가 종이접기의 달인 내지는 전문가로서가 아닌 교육자로서의 책임감과 맞닿아 있다. 29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위치한 미술체험박물관 '아트오뜨'에서 만난 김영만 선생은 "아이들이라고 모르는 거 같죠? 다 알아!"라고 한껏 강조했다.

"단 한 번도 아이들 앞에 같은 작품 내 보인 적 없어"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과거 방송에서 그는 웃는 얼굴로 아이들 앞에서 "잘하고 있어요"라고 북돋아주면서도 "양치질 잘 해야 해요", "지금까지 자고 있는 코딱지들 이제 일어나요"라는 등의 훈육을 덧붙이곤 했다. 당시 어린이들 중 몇몇은 정말로 종이접기 아저씨가 실제로 보고 있는 줄 알고 벌떡 일어나곤 했다는 증언들이 심심찮게 전해진다. 그만큼 어린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그에 들어맞는 가르침을 전해왔다는 증거다. 

- 지금까지 아이들 앞에서는 한 번도 같은 작품을 내 보이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애들은 다 알아요, 똑같은 걸. 당장 안 하고 1년 후에 하더라도 눈치를 채죠. 어른들은 그저 스쳐가는 기억으로 남지만 아이들은 기억합니다. 제가 지상파를 떠나 대교방송 등 케이블 채널에 있을 때도 예전 걸 섞어서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템 개발을 꾸준히 하려고 해요. 제 입장에서야 1년 단위로 같은 걸 하면 편하고 좋죠. 근데 그건 아이들과 약속을 깨는 거고 기만하는 거예요.

머리 싸매면서 생각해 낸 아이템을 들고 방송 녹화 직전 아이들 앞에 섭니다. 한 번씩 따라해 보도록 해요. 10명중에 7명이 비슷하게 만들면 방송에 발표하고, 4명밖에 못 만들면 빼죠. 또 걸리는 시간도 중요하죠. 1분만에 만들 수 있는 거, 10분은 투자해야 하는 거 이렇게도 구분해요. <마리텔> 때 우리 백주부(백종원)님께 선물 한 거 있죠? 그건 서너 시간 걸리는 겁니다(웃음)."

-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작품 수가 만 개가 넘는다고 들었어요. 아이디어들은 대체 어떻게 얻나요.
"안 그래도 요즘 인터뷰를 하니까 한 번 헤아려 보려고 했는데 도중에 포기했어요(웃음). 이 일을 하자 마음먹은 뒤 처음 1, 2년은 애를 많이 먹었죠. 만들어 보고, 찢고, 폐품을 활용하기도 하고. 하루 중에 연구하는 시간을 딱 정해놨어요. 밥 먹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수저를 놓고 연구하러 들어갔죠. 한 3년째까지 억지로 개발하곤 했는데 그 시기가 지나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요. 6년 지나면서 경지에 올랐다고 느낀 거 같아요."

- 하루에 몇 시간씩 연구하신 건지.
"대중없어요. 두 세 시간일 때도 있고, 한 번 들어가서 15시간 동안 안 나온 적도 있으니까. 그러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여행을 떠나기도 했어요. 제가 프리랜서잖아요. 시간은 딱 정하지 않고, 어떨 땐 전화기를 다 끄고 3일 넘게 여행 다니기도 했어요. 그러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디어가 막 생각나기도 했고."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은 기자가 즉석에서 연인에게 호감을 받을 수 있는 종이접기가 있으면 보여달라고 부탁하자, 3분도 채 안돼 공룡을 뚝딱 만들어냈다. ⓒ 유성호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종이 접기에 앞서 머릿 속에 떠오른 작품을 그린 구상도. ⓒ 유성호


경직된 과거 방송 문화 경험..."후회는 없어"

- 종이접기의 시작은 우연이었잖아요. 본래 사업을 준비하다가 방향전환을 한 건데.
"멋지게 광고 기획사를 차리려고 했죠. 자료 수집 차 일본에 10일 정도 머물 계획이었는데, 7일이 지났을 무렵 투자하겠다던 친구가 주식이 반 토막 났다며 포기했어요. 일본에 살던 다른 친구가 그냥 한국 가지 말고 놀고나 가라고 해서 그 집으로 들어갔죠. 친구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다가 우연히 본 게 종이접기였고, 우리나라 애들은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분야인 거예요.

한국에 와보니 교수든 누구든 이쪽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문방구엔 질이 안 좋은 색종이 뿐이고.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지. 근데 밥벌이는 해야 하잖아요. 아내도, 자식도 있으니. 초등학교 교사로 취직했고, 미술학원을 다니다가 소문이 나면서 방송에 출연하게 된 거죠."

- 그렇게 1988년에 방송을 시작했는데 잘 나가던 때에 돌연 하차 통보를 받았어요. 고위 간부가 너무 나이든 사람이 어린이 프로에 나오는 걸 싫어했다고. 당시 담당 PD가 울면서 그 소식을 전했다는데. <마리텔> 때 울컥하신 것도 그때의 한 때문이었죠?
"자세히 언급하기가 하하. 그땐 굉장히 경직된 분위기였잖아요. 어린이 프로는 젊고 잘 생긴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말에 그렇게 된 거죠. 높은 사람이 하라면 해야 하는 때인데, 그렇다고 (방송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TV 유치원>을 관두고도 이후 KBS2 <혼자서도 잘해요>를 7년 정도 했어요. KBS에서만 햇수로 16년이나 했네요(웃음). EBS나 케이블 채널 출연은 지난 2012년까지 해왔고요."

- 어린이 프로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이를 보면서 참 안타까울 거 같습니다.
"안타깝죠. 너무 현재만 바라보는 건 아닐지. 물론 제작비 문제도 중요해요. 그런데 다른 프로의 제작비를 좀 아껴서 어린이 프로를 하면 어떨지 아쉬움이 커요. 지금 당장 돈은 안 되더라도 아이들의 인성을 위한 방송인데 그 아이들이 나중에 컸을 때 그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거든요. 현재에 안주하려는 부분이 안타깝죠."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은 잘 나가던 때 고위 간부로부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돌연 하차 통보를 받은 것에 대해 "그땐 굉장히 경직된 분위기였다"며 "그렇다고 (방송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 유성호


[인터뷰 1] '마리텔' 김영만 "내 말에 감동? 미안했다 나는"
[인터뷰 3] '영맨'의 고백 "상처받기 전에 손 떼야죠"

○ 편집ㅣ이정환 기자


김영만 마리텔 종이접기 마이 리틀 텔레비전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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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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