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와의 소통은 없다? 영화진흥위원회(김세훈 위원장. 이하 영진위)가 영화계의 반대가 큰 지원 사업 개편을 밀어붙이면서 갈등 양상이 오는 8월 임기가 만료되는 영진위원 후임자 선정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영진위는 지난 23일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요강'을 발표했다. 위탁단체를 통해 1년에 최대 48편의 영화를 선정하고, 이중 24편을 정해진 방식에 따라 상영하는 극장에 일정 비율의 지원금을 주는 게 해당 사업요강의 핵심이다.

영진위 측은 "한국 예술영화의 상영 횟수를 늘리고 관객의 접근이 용이한 상영 시간을 편성하기 위함"이라며 "지속적인 상영 기간 확보를 통해 창작자의 권리 확보 및 예술영화 관객 저변을 확대하여 궁극적으로 예술영화 유통·배급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영화계는 기존 예술영화관들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없앤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이건 영화관 지원 사업이 아닌 극장 대관사업"이라고 잘라 말했다. 

프로그램 자율성 침해 vs 민감한 소재라도 충분히 가능

 국내 주요 독립예술영화관들

국내 주요 독립예술영화관들 ⓒ 독립예술영화관 모임 제공


박 프로그래머는 "이 사업 신청의 주체는 제작자와 감독이 되는 것이지 예술영화관이 아니다"며 "예술영화관 지원을 규정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내용과는 다른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영비법 제38조 2항은 '지역 영화 향유권 향상을 위하여 지역 영화상영관 지원, 원활한 영화 배급, 공공 상영 및 영상문화교육시설 구축 등에 대한 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박 프로그래머는 또한 "영진위 측에서 전체 선정작을 처음 계획했던 24편에서 48편으로 늘렸다고 프로그램 자율성 침해가 아니라는 것 같던데, 어불성설이며 조삼모사 해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존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은 아예 없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위탁단체에서 상영관 선정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나 독립예술영화관들이 참여하고 안하고 할 사안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영화계는 영진위의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이 정부 비판 영화를 봉쇄하는 방안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이빙벨>이나 <천안함 프로젝트>같이 민감한 현안을 담은 영화의 상영을 어렵게 만들기 위한 조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진위 김종호 팀장은 "상영작은 위탁단체에서 구성한 심사위원회가 선정한다"면서 "민감한 소재라 할지라도 충분히 선정될 수 있다"며, 영화계의 우려를 부인했다. 또 다른 영진위 관계자는 불통 논란에 대해 "선정작을 48편으로 늘린 것은 독립예술영화관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업요강에 따르면 '별도 심사운영세칙 및 심사위원회 구성은 (영진위) 위원회와 협의 하에 결정'하도록 돼 있다. 영진위의 개입 여지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영진위가 직영하는 독립영화관인 인디플러스의 경우도 일정기간 위탁을 통해 운영됐으나 <다이빙벨> 상영이 이뤄지지 못했다. 독립예술영화관모임은 대관사업으로 변질된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파행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영진위원 후임자 물밑 접촉? 당사자 "나에 대한 음해"

 지난해 12월에 임명된 김세훈 영진위원장(왼쪽 두번째), 김종국 부위원장(오른쪽 끝) 등 영진위원들. 이들 모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가운데)과 학연이 겹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12월에 임명된 김세훈 영진위원장(왼쪽 두번째), 김종국 부위원장(오른쪽 끝) 등 영진위원들. 이들 모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가운데)과 학연이 겹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오는 8월 임기가 만료되는 3명의 영진위원 후임자 선정을 특정 인사가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영진위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대목이다. 영진위원은 문화부 장관이 선정하게 돼 있으나 장관과 친분이 있는 영진위 관계자가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 영화계 인사는 "최근 영진위 쪽 관계자가 영진위원 후보자들을 물색하고 다니는 듯, 일부 인사에게 영진위원 제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깨끗한 인물을 찾는다는 것 같던데, 아마 집회나 시위, 각종 성명 발표에 참여한 경력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사 타진을 한 걸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당사자로 지목된 영진위 쪽 관계자는 자신에 대한 "음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누군가 나를 음해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업무적인 것 외에는 영화계 사람들과 술 한 잔 마시거나 어떤 접촉도 없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불쾌해 했다.

또한 "문화부 장관도 자칫 오해를 살까봐 신경 쓰는 상황인데, 그런 일을 내게 맡기겠냐?"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나 위치가 안 된다"고 거듭 부인했다. 이어 "누가 새로운 영진위원으로 선임되는지 결과를 보면 될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문화부 측의 한 관계자는 "산하기관 인사 문제의 경우 장관이 늘 어떤 인물을 생각해 두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친분 있는 사람에게 마땅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금껏 그런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갈수록 커지는 불신..."이명박 정부 때 엉망됐다"

하지만 영화계는 "신망이나 능력보다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을 밀실에서 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새로 선임된 일부 영진위원들이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각종 논란만 일으키고 있는 상태에서 비슷한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말에 선임된 영진위원 중,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을 주도하고 영화제 지원 예산 6억 원을 불용 처리한 김종국 부위원장은 영화계의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다른 일부 영진위원들 역시 문화체육부 장관과 학연이 겹치는 인물이 많고 자질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는 등, 영화계의 불신을 사고 있다.

김혜준 전 영진위 사무국장은 "영화 단체의 추천을 받고, 내용적 검증을 거쳐 선임되는 경우와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비공식, 비선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보니 힘을 써준 사람을 바라볼 뿐, 영화계의 현실과 목소리에 신경을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 중견 영화평론가는 "참여정부 시절의 영진위원 인선과 위원장은 진보와 보수 양측에서 추천을 받고 그렇게 추천 받은 이들이 모여 호선으로 위원장을 선출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완전히 엉망이 됐다"며, "교체되는 영진위원들을 편향성 있는 인사로 채워 넣을 경우 영진위와 영화계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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