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지난 5월 7일과 14일 < SBS 스페셜 >에는 하얀 가면을 쓴 일군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들은 바로 의사였다. '병원의 고백'이라는 2부작을 통해 의료계의 현실을 현장의 목소리로 토로했던 의사들은 자기 고발적인 프로그램의 내용 때문에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숨기고 낱낱이 의료계의 현실을 들려준 덕분에, < SBS 스페셜 >은 '의료수가'로 인해 히포크라테스 선서 대신 주판알을 튕겨야 살아남는 의료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지난 26일 방송에서 의사들은 다시 한 번 '하얀 가면'을 썼다. 바로 이날 자정을 기해 마지막 남은 메르스 환자가 격리에서 해제되며 사실상 종식된 메르스 사태를 복기하기 위해서이다.

메르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메르스는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신종 베타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병된 후 3년간 453명의 사망자를 내었지만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공포의 대상이었다.

<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는 메르스 바이러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바레인에 다녀온 첫 번째 환자를 숙주로 그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가뿐히 대한민국에 입국한 메르스, 그로부터 186명의 확진자와 6729명에 이르는 격리자, 36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시설이라 자타의 공인을 받았던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하여 몇몇 병원이 자체 폐쇄에 이르는 병원 시스템의 마비를 가져왔다. 왜 이토록 무방비하게 대한민국이 메르스에 당하게 되었는지, JTBC <썰전>의 이철희 소장과 조동찬 의학 전문 기자가 각계 전문가와 현장 의료진, 보건 당국자들을 만나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26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메르스 사태와 관련하여 전 사회가 경악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외래의 바이러스 질환에 이토록 무방비하게 무너졌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로 들어본 < SBS 스페셜 >을 통해 시청자들은, 이전의 '병원의 고백'처럼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

평택 성모병원에서 시작된 메르스, 하지만 첫 번째 감염자가 확진을 받을 때까지의 시기는 늦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장 의료진의 반응은 뜻밖이다. 고열의 환자를 이름조차 낯선 메르스라 의심했던 의사를 두고 '의대 시절 공부를 잘 했구나'란 감탄의 반응을 보이고, 확진이 늦어진 상황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란 이유로 확인조차 하려 들지 않은 질병관리본부의 늦장 대처가 짚어진다.

하지만 그건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한 매뉴얼은 있었지만, 매뉴얼대로 시스템을 가동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고 하지 않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메르스 사태를 확산시켰음이 짚어진다. 그저 병원 복도에 잠시만 앉아있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황을. 책임질 위치에 있는 그 누구도 '현장'에 나가보지 않는 안일한 태도가 결국 메르스를 확산시킨 주범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나아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는 전 국민적 경악을 낳았던 삼성서울병원의 무능도 짚는다. 원장 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사장이라는 존재가 삼성서울병원을 의료의 공익성보다는 이윤 집단으로서의 가치를 우선하게 함으로써 전염병 대응에 무능하게 대처하도록 했음을 지적한다.

이는 결국 '병원의 고백'의 연장선상이다. 대한민국의 의료체계가 공익성보다는 돈벌이에 우선하는 현실이 다시 한 번 까발려진 것이다. 또한 삼성이라는 체계가 가진 습성인 '비밀주의'가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 내에서조차 정보가 공유되지 않도록 하여, 메르스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없는' 체계로서 삼성서울병원을 만들었다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붕괴, 질병관리 시스템의 무능

 지난 26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의 한 장면.

지난 26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비밀주의'는 삼성의 습성만이 아니었다. 현장의 의사들조차 메르스에 대해 알 수 없어 감염자가 마구 돌아다니게 방치했던 상황,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의 한밤 기자회견으로 봇물이 터져버린 메르스 정보 공유의 문제도 다루어진다. 감염 분야 전문가들의 입장에 바라본 박원순 시장의 정보 공개 기자회견의 정당성 여부에서 부터 시작하여, 전염병 대응에 있어 무지하고 무능력했던 정부의 대처 시스템의 원인도 적나라하게 짚어본다. 결국 '슈퍼 전파자'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내고만 시스템의 무능을 드러낸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병원의 고백'에서부터 비판된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 의료 수가배분의 문제가 다시 한 번 지적된다. 1인당 감염 관리료 150원인 대한민국의 현실, 그 비용을 가지고 정부는 '음압 병동을 짓고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처하라'고 한다고 현장의 의료진을 입을 모은다. 이는 결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고.

질병관리본부 등 정부 측 관계자는 이 정도면 메르스라는 바이러스성 질환에 '양호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냐고 정부 측은 자부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작 '메르스의 고백'을 통해 밝혀진 대한민국 질병관리 체계의 현실은 메르스가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병원, 150원의 감염 관리료를 측정한 정부, 그리고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메르스와 같은 감염성 질환에 대해 '이 정도면'이라 자부하며, 박원순 시장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정보 공개조차 했을까 의심스러운 관료들, 심지어 정부의 발표 그 순간에조차 국민들의 건강보다 그 누군가의 이해가 우선되는 시스템은 결국 또 다른 메르스의 발병과 또 다른 슈퍼 전파자라는 희생양의 필요충분조건이 됨을 자연스레 이해시킨다.

<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은 몇 달간 겪었던 메르스 사태, 그리고 그로 인한 다수의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그저 메르스라는 우연적 요소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이미 '병원의 고백'을 통해 고발하려고 했던 영리 산업이 되어버린 의료계의 현실과 그것을 방조하는 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메르스 사태를 다루고자 한다. 달라지지 않을 현실, 여전한 시스템의 무능, 그 속에서 마지막 격리자의 해제로 '메르스 사태' 종식을 선포하려는 정부의 발표는 그저 무수한 지뢰 중 하나를 누군가의 희생으로 제거한 것에 불과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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