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누군가 "너는 어떤 업보가 있기에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하는 자들 뒤에 가려진 조력자가 되었느냐"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짧은 기억입니다. 연재 제안을 받고 적지 않게 고민이 됐습니다. 보이는 직업이 아니고 스타는 더욱 아니니까요.

관객도 배우도 아닌 중간자의 입장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막연하게 이쪽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일련의 과정을 쉽게 전하고, 궁극적으론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지난 필름의 추억과 행복함을 나누고 싶습니다.

뭔지 모를 일에 야근하고 늘 바빠하는 동료들 그리고 내 모자람을 채워주는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작은 사죄의 마음을 담고자 합니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담담한 흑백필름처럼 살아가는 작고 소박한 '야심녀'. 전 문화콘텐츠를 홍보하는 아담스페이스의 김은입니다. <김은 드림>

 영화 개봉이 다가올수록 홍보를 위한 각종 행사에 집중하게 됩니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고녀석 맛나겠다2> 관련 행사 현장.

영화 개봉이 다가올수록 홍보를 위한 각종 행사에 집중하게 됩니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고녀석 맛나겠다2> 관련 행사 현장. ⓒ 김은 제공


최근 개봉작들은 대단위 규모의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어 흥행 여부를 다투게 된다. 예매가 언제 열리는지 그 시기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보통은 개봉 주 월요일 경에 예매가 열리고, 해당 주 목요일부터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극장'이라고 검색하면 포털사이트에는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프리머스, CGV라는 체인명이 뜨고, 거기서 '지역별 영화관' 이름도 줄지어 뜬다. 지역은 다른데 극장 이름은 대부분 같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 E.T. >를 처음 만난 그곳...환상의 세계를 알다

어느새 대한민국의 극장은 다 같은 이름에 동네에 따라 지점명만 다른, 모양도 색깔도 같은 극장이 되었다. 그 극장만의 개성도 특성도 찾아볼 수 없는. 극장 내 직원들은 대부분 계약직 아르바이트생들이며, 매표도 무인 발권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각 체인마다 팝콘의 맛과 각자 밀고 있는 영화는 다르지만 관객들에게 멀티플렉스는 그 장소만이 가지고 있는 멋과 맛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

어린 시절 내가 처음으로 찾은 극장과 첫 직장으로 만났던 극장의 이미지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영화 <E.T.>는 극장에 대한 강렬한 추억이 됐다.

영화 는 극장에 대한 강렬한 추억이 됐다. ⓒ 유니버셜 스튜디오


영화 < E.T. >를 봤던 초등학교 시절, E.T.의 자전거가 하늘을 나는 순간 나도 날아가는 줄 알고 극장 의자를 꼭 잡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극장 앞의 큰 간판이 아주 대단해 보였다. (어렸을 때 서울 은평구에서 자랐기에 아마 '도원극장'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학교 단체 관람으로 본 <스플래시>엔 톰 행크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톰 행크스와 대릴 한나의 마지막 다이빙 장면에서 반 전체가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등학교 땐 또 어떤가. 음악시간 활동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 <메리 위도우>를 보고 남자 무용수들의 댄스실력에 감탄해 박수와 감탄을 연발했다. 이 모든 기억들은 내게 극장에 대한 좋은 추억이자 호기심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의 직업을 선택한 내게 첫 도장처럼 '각인'이 됐다.

'업'이 된 영화...행복했던 단관 극장의 기억

20대 초반 나의 첫 영화사였던 신도필름은 당시 종로에 위치했던 단성사와 허리우드 극장을 운영하며 영화 수입과 배급을 담당했던 굴지의 영화사였다. 직장 내 막내였던 나는 종종 상사들의 심부름으로 극장에서 틀어야 할 예고편 필름을 충무로의 사무실에서 종로의 극장으로 전달하는 일을 도맡았는데, 그때마다 무서운 매표소 언니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긴 머리를 흩날리던 매표소 왕언니는 "뭐야! 예고편이야?"라는 톡 쏘는 말투로 나를 긴장시켰고 난 너무도 수줍게 "네..."라고 대답하며 순진하게 극장 문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은 단성사 입구에서 영화 개봉 당일 첫 입장 관객들에게 선물로 줄 포스터를 들고 있기도 했다. 눈은 오는데 극장엔 오지 않는 관객들을 기다리며 한숨짓던 기억, 관객이 잘 들던 날은 극장 매표소에 줄 서는 관객들을 시간 단위로 세어서 흥행을 예측하는 기막힌 계산법을 배우기도 했다.

 1990년대 극장 단성사와 대한극장의 표. 영화 <미지왕>과 <롱키스 굿나잇>은 1996년 12월에 중순 개봉했는데 일주일 차이로 개봉한 경쟁작이었다.

1990년대 극장 단성사와 대한극장의 표. 영화 <미지왕>과 <롱키스 굿나잇>은 1996년 12월에 중순 개봉했는데 일주일 차이로 개봉한 경쟁작이었다. ⓒ 김은 제공


인근 극장이었던 서울극장, 피카다리, 대한극장,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등도 마찬가지였다. 극장 또는 작품 담당자들이 토요일(당시엔 영화 개봉일이 대부분 토요일이었다)에는 모두가 극장으로 출근해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경쟁작의 추이를 지켜보며 서로를 견제하곤 했다.

근처 극장 맛집에서는 첫 회 상영이 끝나고 낮부터 흥행을 자축하는 술자리가 늘 벌어졌고, 바로 옆에서는 흥행작에 밀린 다른 영화 담당자들도 서로 위로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게 극장은 그런 곳이었다. 경쟁도 승부도 없이 영화를 보는 관객도,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들도 모두가 행복했던 그런 공간.

지금은 당신은 어떠한가? 자신만의 극장을 간직하고 있는가? 아마 있다면 당신은 소중한 추억 하나를 얻은 것이다. 만약 없다면 지금이라도 가까운 동네 극장을 한번 찾아보자. 어딘가에 나만의 추억을 만들어줄 작은 공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오마이스타'들이 직접 쓰는 나의 이야기 - 오마이스토리

[김은의 '컬러풀 흑백필름' 1편] "네가 하는 일이 뭐?" 영화 홍보하는 김은이라고!

덧붙이는 글 김은 대표는 한 광고대행사 AE(Account Executive)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상품 광고가 재미없다며 박차고 나왔다. 이후 1997년 단성사를 운영하던 영화사 (주)신도필름 기획실에 입사해 영화홍보마케팅을 시작했다. 지난 2009년 문화콘텐츠전문 홍보대행사 아담스페이스를 설립했다. 홍보하면서 야근 안 할 궁리, 여직원이 다수인 업계에서 연애하고 결혼할 궁리, 상업영화 말고 재밌는 걸 할 궁리 등을 해왔다. 지금까지 다른 회사가 안 해 본 것들을 직접 또는 소수 정예 직원들과 함께 실험 중이다.
김은 오마이스토리 극장 미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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