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기부놀이인 '놀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개그맨 출신 배우 이정수가 29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아침부터 집이 어수선해서 눈을 떴습니다. 시간은 오전 7시 언저리. 오후 1시부터 일정이 있기에 좀 더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오전 7시에 일을 시작해야 하기에 일찍 나갔거든요. 그리고 이날 저녁엔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서, 제가 리예(딸)를 할머니 댁에 데려다 줘야 했습니다. 그래야 아내가 맘 편하게 모임에 가서 놀 수 있거든요. 아무튼 매우 바쁘다는 뜻이죠! ㅠㅠ

아내가 나가고 전 잠결에 리예 짐을 뭘 챙겨야 하고, 내 짐은 뭘 챙겨야 하는지 뇌를 가동시키려고 시동을 '부릉' 걸어봅니다. 일단, 리예가 출출해지기 전에 우유를 '뽕' 꽂아줍니다!

'헉!! 이거 뭐야! 씻어 놓은 젖병이 없잖아!'

아이 밥 위한 설거지, 또다른 복병이 있었다

 젖병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폭풍 설거지!

씻어놓은 젖병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폭풍 설거지! ⓒ 이정수 제공


에이!!! 폭풍 젖병 설거지를 합니다!! 이후 리예의 장난감과 옷, 신을 싸고, 됐다 싶을 때!  리예 반찬이 생각나서 챙겨줍니다. 아기 반찬이 따로 있거든요. 휴! 할머니가 고생 할 뻔 했네요! 그리고 제가 입을 정장과 구두를 챙기고, 리예의 짐을 바리바리 들고 리예를 어렵게 안았는데, 뭐지?! 이 냄새는?

"으아!!  똥 쌌냐?! 다 챙겨서 나가려는 지금 왜 하필!"

다시 짐을 놓고 들어와서 리예를 눕히고 기저귀 뚜껑을 땁니다. 질펀하네요! ㅠㅠ 물티슈를 뽑는 사이, 리예가 그 사이를 못 참고, 뒤집기를 하려합니다. 엉덩이를 닦지도 못 했는데... 리예가 입었던 옷에도 응가가? 안되겠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리예를 들고 화장실로 뜁니다. 지금 이 순간 리예에겐 절대 접촉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모든 게 끝장입니다. 다행히 아무런 접촉 없이 세면대에 와서, 응가를 물에 씻어 보냅니다. 그리고 리예가 입었던 옷을 벗겨서 새 옷을 입힙니다. 이제야 나갈 준비가 됐네요. 휴...

딸과 나, 그리고 내 오른팔만 아는 비밀은...?

 딸 리예와 외출하기 위해선 이렇게나 많은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딸 리예와 외출하기 위해선 이렇게나 많은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 이정수 제공


다시 한 보따리의 짐을 바리바리 듭니다. 마지막으로 리예를 한 팔에 들고 집을 나섰죠. 엘리베이터 근처까지 가는데 제 오른팔이 저려옵니다. 오른팔에게 괜찮은지 물으니 '괜찮다'고 합니다. 지하주차장입니다. 오른팔이 말을 걸어옵니다. 나...이제 한계가 온 거 같아. 리예는 너무 커!

'조금만 참아!! 곧 내 차가 나와!'

차 앞입니다. 오른팔이 '난 이제 틀렸어... 다 포기할거야!' 랍니다.

'안돼! 너에겐 내 딸이 들려있어!! 이제 다 왔어!!'

차문을 '띠딕!!' 열고 제 짐은 버리듯이 던져버리고, 얼른 리예를 카시트에 앉힙니다. 그리고 저도 운전석에 앉습니다. 히유... (잠시 긴 한숨과 정적) 해냈습니다. 이제 할머니 댁에 가기만 하면 되네요.

리예와 저와 저의 오른팔은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자! 출발 전에 사진 찍자!! 얘들아!! 하나 둘 셋!!!'

그리고 무사히 아내와 모임에 갔습니다. 아내에게 아침부터 제가 겪었던 이 일은 비밀입니다. 쉿!!

 제 오른팔이 견뎌준 덕에 무사히 리예와 차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전우애가 생겼네요.

제 오른팔이 견뎌준 덕에 무사히 리예와 차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전우애가 생겼네요. ⓒ 이정수 제공


아버지로서는 100점이지만, 남편으로서는 0점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곤 했던 우리 아버지. 열심히 일해서 가족은 지켰지만, 결국 외톨이가 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전 '결혼해도 연애시절처럼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2013년 10월 5일, 드디어 결혼했습니다. 확실히 결혼은 연애와는 다른 게 많더라고요. 심지어 결혼한 지 4개월만에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에 연애와 다른 결혼의 모습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몸도 정신도 혼자일 때보다 과부하가 많이 걸리더군요. 언제부턴가 점점 편한 것을 찾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갔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결국 그렇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이건 아니다'라며 아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법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소(小)프라이즈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특별한 날만을 위한 서프라이즈(surprise)가 아닌 평소에 아내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이었죠. 그 소소한 실천을 글로 올리려 합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효과는 실로 대단하기에 다 함께 공유해서, 우리 모두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길 기원해봅니다. <방송인 이정수 드림>

'오마이스타'들이 직접 쓰는 나의 이야기 - 오마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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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이미나 기자


덧붙이는 글 방송인 이정수는 KBS 공채 17기 개그맨으로 2002년 데뷔했다. <개그콘서트> 등에서 훈남 이미지에 특유의 유행어까지 더하며 데뷔 연도에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사랑과 전쟁>, 영화 <달콤한 거짓말> <신이 보낸 사람>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고, 최근엔 '이정수의 놀이 콘서트'의 기획과 진행을 맡아 문화기획자로까지 저변을 넓히고 있다.
이정수 소프라이즈 오마이스토리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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