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배우 조수향을 만나고 순정만화 한 편이 떠올랐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난 한 소녀가 운명처럼 연기에 이끌리고, 자신의 재능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물론 조수향에게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그를 늘 지켜보는 '보라색 장미의 사람'도 없고 하나의 배역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 가는 또래의 라이벌도 없다. 하지만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갈 데가 마땅히 없었던 나를 이곳이 반겨준다"는 생각에 연습실에서 밤을 새웠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교 졸업공연 당시의 "'내 마지막은 여기구나, 그래도 무대 위에서 멋있게 죽겠구나' 싶었다"는 일화를 들어 보면 그에게 연기란 처음부터 만나야 했던, 그리고 만날 것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드러지게 잘 하는 것이 저에겐 없었어요. 외모가 튀지도 않았고, 성격이 대장부 스타일이라 (친구들을) 다 이끌고 간다든가 하는 일도 없었죠. 스스로도 '뭔가 애매하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존재감이 없는 것 같아, 뭔가 제대로 된 것을 하나라도 갖고 싶었죠. 그게 연기가 된 것 같아요. 연기로 나를 채워야겠다, 그런 생각인 거였죠."

"'후아유' 강소영, 많이 보듬어줘야 하는 인물이었다"

 배우 조수향

KBS 2TV <후아유-학교 2015>에서 강소영을 연기한 배우 조수향. ⓒ 매니지먼트 이상


최근 종영한 KBS 2TV <후아유-학교 2015>(이하 <후아유>)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은 주인공 이은비(김소현 분)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강소영. 점점 가속도가 붙는 강소영의 악행에 그를 연기하는 조수향도 내심 부담감을 느낀 듯했다. "끝나고 나니 일단 좋다, '해방이다' 싶다"고 입을 연 그는 "워낙 (혼자) 끙끙대며 모든 것들을 다 갖고 있던 캐릭터라 빨리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누가 한 마디만 해도 부들부들하고, 집에 가서도 공부하다 말고 그 일을 생각하는 캐릭터였잖아요. 처음엔 (강소영의 악행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점점 극으로 치닫는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죠. 그저 은비와 화해를 한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극중 인물들에게도, 심지어 시청자 사이에서도 공공의 적이었던 강소영을 조수향은 이해하려 애썼다. 물론, 악행을 변명하려거나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강소영은)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보다도 자신보다 불쌍하다고 여겼던 이은비로부터 '불쌍하다'는 말을 듣는 게 가장 수치스러웠을 것"이라고 입을 연 그는 "실제로 강소영이 나쁜 일을 많이 한 만큼 '강소영을 불쌍한 인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의견에 반박하고 싶지 않다"며 "다만 그 친구의 삶을 들여다보고 생활한 입장에선, 강소영도 많이 보듬어 줘야 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계속 몰아닥치면서 강소영이 그렇게 (나쁘게) 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안 좋은 생각이 더 안 좋은 생각을 낳는 것처럼요. 그런 가운데서 상황을 긍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도 제 3자니 강소영을 보면서 때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렇게 극단적이어야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아이의 삶으로 돌아가 보자면, 자존심과 인생이 걸린 문제였을 거예요. 강소영의 18년 인생 안에서 최고의 시련이었겠죠."

"연기의 매력,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것"

 배우 조수향

"<눈길>로 (방송에서) 처음 저를 써 주셨는데, 알게 모르게 힘이 돼 주고 도움이 돼 주신 분들이 있어요. 그 분들이 제 감사한 마음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눈길>은 정말 좋은 작품이고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에 많은 분들이 한 번 더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 매니지먼트 이상


2014년 가출소녀들의 삶을 그린 영화 <들꽃>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고,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였던 KBS 1TV <눈길>과 '올해의 악녀'라 불려도 충분할 만한 <후아유>를 거쳤다. 이 외에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 출연했던 단편 및 독립영화까지 훑어보면 조수향은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인물만을 연기해 왔다. 그를 두고 "센 느낌이 아닌 둥글둥글하고 무난한 느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던 이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수향은 안다. 굳이 자신의 이미지와 상반된 역할을 찾을 이유도, 그런 역할을 찾아 더 깊숙이 파고들 이유도 없다는 것을. 오랜 시간 노력해왔던 스스로를 믿고, 또 다른 자신을 찾기 위해 또 그날의 땀을 흘리면 된다는 것을. "이제는 그런 부분에 대한 욕심이 많이 사라졌다"는 조수향은 "로맨틱 코미디부터 멜로,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싶다"며 "그 중에서도 영화 <미쓰 홍당무>나 <김씨 표류기> 속 주인공과 같이 밝은 느낌이면서도 그 속의 아픔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해 본다면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도 몽우리가 다 피지 못하고 닫혀 있는 느낌이에요. 조금은 더 시간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중학교 때 과학을 좋아해서 우주정복이 꿈이었는데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점에선 과학과 연기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의 꿈도 우주정복이에요. 연기로 우주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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