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수 년 전 모 대학에서 연기 수업을 하고 있을 때다. 학생 한 명에게 대사를 읽게 했는데 다 죽어 가는 모기 같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게 아닌가?

"잠깐만!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 읽지? 3시간 수업해도 네가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은 3분도 안 되잖아?! 그 귀한 걸 왜 그렇게 쓰니?!"

잠시 주저하더니 학생이 대답했다. "선생님...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것 아니에요?", 주위 학생들의 작은 동요가 느껴졌다. 그들 역시 궁금했던 것이다. 자신들이 '자연스럽다고 표현한 것'이 밖에서 볼 때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는 이유를!

'이 자식아, 그 정도 해서 밥 먹고사는 일이 세상에 있는 줄 알아?!'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거긴 대학 강의실이었다. 난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를 삭히며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으으음...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깊은 한숨을 숨기며 창 밖을 봤는데 때마침 울창한 창경궁 숲이 눈에 들어 왔다. 그 푸른 숲이 나에게 컨닝 페이퍼를 보여주었다.

"대충 대충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잖니?"

 영화 <남극일기> 출연 당시 모습

영화 <남극일기> 출연 당시 모습 ⓒ 김경익 제공


"저∼어기 창경궁 초록색 숲이 보이지?", "예."
"저거 자연스러워 보이지?", "예."
"자연스러운 것 보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편해지지?", "예."
"그럼 네 연기도 자연스럽다면 보는 사람들이 기분 좋아하겠지?", "예."
"네 연기도 저 숲처럼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지?", "예."
"그럼 자연은 어떤데?". "........"

"저 창경궁 숲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 자연스럽게 사는 것들을 자세히 한번 보자. 소나무는 전나무 피해서 햇빛을 더 받으려고 수 십 년을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고 자라고 있지? 남의 속도 모르고 그걸 멋있다고 말하네? 걔네들은 옆에 나무 원망하지 않고 뿌리에서 머리끝까지 온몸으로 숨쉬고 있네? 그 밑의 잔디는 어때?

관람객이 모르고 밟고 가서 허리가 '뿌러졌어도'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밤새 들고양이는 쥐 잡으러 돌아다녔고, 쥐는 죽어라 도망 다니면서도 땅파서 벌레 잡아먹고...모든 생명들이 죽는 그 날까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 그게 밖에서 보니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 속에 있는 생명이 대충 대충 사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잖니?! 자!~ 이번엔 자연스럽게 한번 읽어보자!"

일상의 나, 자연스러운 나

 우리는 전철에서 좀 부딪쳤다고 플라잉 니킥을 날리진 않는다. 듣기 싫은 소리를 좀 했다고 바로 멱살잡이를 하진 않는다. 좀 안 좋아도, 좀 더러워도, 참고 무난히 지나가려 한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운전 중 자신에게 행패를 부린 폭주족을 폭행하는 선우(이병헌 분)의 모습

우리는 전철에서 좀 부딪쳤다고 플라잉 니킥을 날리진 않는다. 듣기 싫은 소리를 좀 했다고 바로 멱살잡이를 하진 않는다. 좀 안 좋아도, 좀 더러워도, 참고 무난히 지나가려 한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운전 중 자신에게 행패를 부린 폭주족을 폭행하는 선우(이병헌 분)의 모습 ⓒ CJ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종종 '일상의 나'를 '자연스러운 나'로 착각한다. '일상의 나'는 나의 전부가 아니다. 어떤 일면이다. '일상의 나'는 가능하면 갈등을 만들지 않고 불온한 평화라도 유지하려는 '나'다.

예를 들면 아침 국이 짜다고 곧바로 상을 뒤엎진 않는다. 전철에서 좀 부딪쳤다고 플라잉 니킥을 날리진 않는다. 듣기 싫은 소리를 좀 했다고 바로 멱살잡이를 하진 않는다. 좀 안 좋아도, 좀 더러워도, 참고 무난히 지나가려 한다. 왜냐하면 갈등(Drama)이 생기면 많은 에너지를 써야하고 그건 피곤한 일이니까. 이 패턴에 익숙해져 있는 게 '일상의 나'다.

'자연스러운 나'는 훨씬 다양한 모습이다.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고군분투해서 극복하려는 '나'다. 적당히 대충 내 편할 만큼 하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소나무가 10미터나 넘게 자랐으니 '이젠 좀 적당히 살자'라고 하지 않는다. 자랄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성장한다. 나보다 고양이가 강하다고 쥐는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죽기 전까진 죽어라 도망친다.

'자연스러운 나' 역시 그런 존재다. 변화 불가능한 상황은 인정하되 꿈을 위해 기꺼이 투쟁하고 있는 존재다. 아무도 몰라줘도 어제보다는 나아진 '나'를 위해 온몸으로 던지는 '내가' 바로 자연스러운 나다. 이런 '나'를 밖에서 남이 바라보면 기분 좋고 행복해 지는 것이다.

인생이란 대본의 리딩법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한 장면. 영화에서 강원도 도계 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한 현우(최민식 분)는 한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폼 잡지 마, 음악은 폼으로 하는 게 아냐".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한 장면. 영화에서 강원도 도계 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한 현우(최민식 분)는 한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폼 잡지 마, 음악은 폼으로 하는 게 아냐". ⓒ 청어람


주로 일상이란 틀 속에서 생활하기에 익숙해져버린 '일상적인 나'의 선택을 자연스러움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은 적당히 평회롭게 지내려는 힘이 아니다. 기꺼이 변하는 용기와 결단을 가진 힘, 내일 베어질지라도 오늘 할 일을 실천하는 존재가 '자연스러운 나'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인데 왜 그 힘이 없겠는가? 누구나 맘 깊은 곳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걸 꺼내면 고생스럽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누구나 피할 수 없이 한번은 읽어야 하는 삶이란 대본이 있다.

'일상적으로 읽을 것인가, 자연스럽게 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무대작업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천형(天刑)입니다. 현실 너머를 엿본 자는 현실에 발붙일 수도,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저공비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에 날개가 녹을 것이고, 발을 땅에 대는 순간 유랑은 끝이 납니다.

28살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우연히 시작한 연극은 2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며 제 삶의 필연이 되었습니다. 길거리 포스터 부착부터 연기, 연출, 극작까지 다양한 작업 속에서 연극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객석에서 무대를 보지 않고,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저공비행의 풍경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배우 김경익 드림>

'오마이스타'들이 직접 쓰는 나의 이야기 - 오마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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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김경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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