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수의견>에서 국선변호인 윤진원 역의 배우 윤계상이 2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국선변호인 윤진원 역의 배우 윤계상이 2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찍어놓은 영화가 2년간 개봉하지 못할 때, 답답함은 감독 못지않았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진실을 좇는 변호사로 분한 윤계상은 "본래 투자 배급사였던 CJ E&M 쪽에도 물어보면서 나름 상황을 체크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국선 변호사 윤진원 역을 맡았다. 공권력에 희생당한 시민과 거기에 얽힌 진실을 좇으며 권력에 책임을 묻는 인물이다.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윤계상을 만나 <소수의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수의견> 속 사건은 가짜...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소수의견>은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공권력의 다양한 횡포를 조합했다. 윤계상은 연기에 헛갈릴까 봐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다. 출연에 특별한 정의감이나 공명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가 재밌었다. 적나라하게 고발해 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는 그렇게 서서히 이야기에 젖어갔다.

"이야기는 가짜지만 사실상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권력이 작심하면 벌일 수 있지 않나. 법의 허점을 노리면 반드시 일어날 일이기에 설득됐다. 영화로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는 거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을 모르시더라."

손아람 작가의 말을 인용해 윤계상이 말한 모티브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용산참사와 더불어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사건, 지율 스님의 조선일보 10원 소송 사건, 제주지검 압수수색 사건, 국가기록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고소 사건 등이다.

이 정도면 대형 투자 배급사에서 맡기에 부담스러울 법하다. 윤계상 역시 "처음에 CJ E&M의 투자 배급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좋은 세상이 오는구나' 싶었다"면서 "(배급사가 2015년 초에 바뀌긴 했지만) 감독님이 타협하지 않고 깔끔하게 만들어서 모든 배우가 다 좋아했다"고 전했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국선변호인 윤진원 역의 배우 윤계상이 2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윤계상은 촬영 당시 김옥빈의 팔에 멍을 남길 정도로 몰입했다. 재판에서 이겨야 하는데 공수경 기자(김옥빈 분)가 기사를 쓰겠다고 하니 미웠던 거다. 국가 정의를 운운하면서 진실을 가리려는 홍재덕 검사(김의성 분)에 대한 분노 역시 극에 달했다. 감독이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법정 장면에서 윤진원은 홍재덕을 바라보며 씩 웃는다. "나도 왜 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속상해하던 나머지 쑥 나왔던 것"이라고 윤계상이 비화를 언급했다.

"감독님이 내 감정을 좀 누르라고 할 정도였다. 연기하는 나도 억울했는데 실제 겪는 사람들은 오죽했겠나. 영화 홍보를 하다 보니 이게 사실일 수 있다는 걸 많이 모르시더라. 영화를 통해 자세한 내막을 아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면 역사가 이뤄지잖나. 모른 채 두지 말고 알기에 힘쓰셨으면 한다."

"연기 배우고 싶어 연극배우들 쫓아다니기도"

그런 의미에서 윤진원은 윤계상과 닮았다. 단순히 성격이 비슷한 게 아니라 처한 상황과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닮았다. 지방대 출신의 2년 차 국선 변호사인 윤진원은 법조계에서도 가장 무시당하는 인물. 그렇기에 열등감 또한 매우 강하다. 모나지 않게 살다가 국가를 상대로 싸우려는 박재호(이경영 분)의 변호를 맡은 것은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스타가 되려는 생각도 있었다.

"변호의 계기는 그렇게 정의롭지 못했지. 막상 뛰어드니 진흙탕이고. 아마 사람이라면 같이 싸울 수밖에 없을 거다. 공권력이 압박한다는 걸 느끼는 순간 싸우는 거지. 나 역시 연기를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면 배우가 되고 싶기도 했고, 상업적인 성공도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소수의견>을 두고 고민이 깊었다. 강한 작품이잖나. 그러다 하게 됐다. 선택의 지점이 윤진원과 비슷했다. 김성제 감독님 역시 굉장히 유명한 제작 PD다. 다른 좋은 기회가 많았는데 이걸 하려고 타협하지 않고 쭉 밀고 갔다. 그 지점이 비슷하지 않나."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 (주)시네마서비스


윤계상이 언급한 배우와 상업적 성공의 갈림길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영화 <풍산개> 무렵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에 그 역시 "정확하다"고 동의했다. 상업 영화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지만 당시 윤계상은 저예산 영화인 <풍산개>에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당시 그는 배우로 빨리 인정받고 싶었고, 그룹 god의 멤버에서 한 단계 도약하고 싶었다. 

"솔직히 연기를 처음 했을 땐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 원래 연기를 하려고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기에 가볍게 본 면이 있었다. 그러다가 칼침을 엄청 맞았지.(웃음) 오만했다. 그 이후 스스로를 괴롭혔다. '야, 너만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연기에 목숨 건 사람이 태반이야'라고 다그쳤다. 그만큼 시간이 걸리더라. 결국 견디는 놈이 이기는 것 같다. 어찌 한순간에 인정받겠나.

숨은 고수들이 진짜 많다. 그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로드 넘버원>이라는 드라마를 찍을 때 함께 했던 배우들이 다들 무대에서 날고 기는 분들이었다. 그 중 진선규 형에게는 3개월간 수업을 받았다. 매일 연기를 연습하라고 하더라. 연극도 너무 좋아서 무조건 보러 갔다. 고수들은 칭찬도 평가도 정확하게 하신다. 무조건 뭉개거나 욕만 하진 않는다. 좀 부족해도 열심히 한 게 보이면 알아주시더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인터뷰 중 윤계상이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은 '감히' '내가 어찌' 등 겸손의 표현이었다. "연기가 뭐라는 등 과거에 내뱉은 말을 다 취소해버리고 싶다"고 민망해하기도 했다. 고수들 틈에서 더욱 부족한 자신을 발견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소수의견> 촬영 때도 이경영, 권해효, 김의성 틈에서 오디션 보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국선변호인 윤진원 역의 배우 윤계상이 2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확실히 연예계는 치열하다. 공조하고 협조하는 일이 드물지. 결국 기회의 문제니까. 그래서 작품에서 좋은 동료를 만나면 더 오래 깊이 사귀게 된다. 난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다. 기회를 얻었고 사랑도 받아왔다. 근데 연기에 내 얘길 덧붙이는 건 건방진 거지. '왜 날 알아주지 않지?' 이런 생각이 필요 없는 게 자신의 결에 맞는 옷을 빨리 입게 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결에 안 맞는 옷을 입을 수도 있다. 이걸 억울해하는 게 웃긴 거다. 쌓이면 대중은 인정해주는 것 같다. 기막히게도 빈틈을 알아내더라."

연기를 안 하면 죽을 것 같다던 윤계상은 지금이 도약기다. 가수보다 배우의 기운이 훨씬 짙게 느껴진다. 그의 성장을 반가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재미 또한 누려보자.

윤계상 소수의견 이경영 김옥빈 김의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