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결혼 전,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시월드'인데요. 저희 엄마는 무적의 리더이십니다. 아무도 이길 수가 없죠. 캡틴아메리카가 와도, 조종해서 캡틴코리아로 만들 분이십니다. 대단한 분이죠. 이런 대단한 엄마를 둔 제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죠. 그래서 전 강한 결심을 합니다.

'결혼하면 우리 엄마 말보다는 아내의 말을 더 잘 들어야지!!!'

그렇지만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기분이 나쁠 테니, 요령껏 제가 중간에서 잘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중대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바로 우리 아기의 이름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은 이상하게 엄마가 외가 쪽 조카들과 손자들의 이름을 모두 지어주셨습니다. 용한 작명소가 있으시다나...

"내 새끼 이름은 내가 짓는다!"

 기부놀이인 '놀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개그맨 출신 배우 이정수가 29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개그맨 출신 방송인 이정수. ⓒ 이정민


그래서 그런지 신기하게 족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지어오신 이름은 이정현, 이정수, 박정혁, 박정훈, 박정환, 박정열. 모두 가운데 '정'자가 들어갑니다. 아버지도 어머니의 작명욕망은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평온한 가족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엄마!! 우리 아기 이름은 우리가 지으려고."
"너!! 그게 무슨 말이니? 이름은 막 짓는 게 아니야!! 내 새끼 이름은 내가 짓는다!"
"이름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에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내 새끼 이름은 항상 엄마가 지었어."

그때 용감한 아버지께서 저희를 지원 사격 해주기 위해, 구원등판하셨습니다.

"그~ 얘들이 그냥 알아서 하..."
"에이 참!! 당신은 가만히 좀 있어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버지는 타석에 서자마자, 초구 내야 땅볼 아웃 되셨습니다. 평온했던 식사 시간은 냉랭하게 마무리가 되었고, 전 아내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이 이름을 우리가 짓자는 것이었죠. 엄마와 아내 사이의 줄다리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어떻게 하면 한 번도 놓지 않으셨던 엄마의 작명권을 받아올 수 있을까요?

'사전작업'은 모범생 형에게

 이정수의 딸 이리예의 태아 때 사진(좌).

이정수의 딸 이리예의 태아 때 사진(좌). ⓒ 이정수


전 아내를 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웠습니다. 일단 엄마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모범생인 형에게 엄마에게 '지들 아기 이름은 지들이 짓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운을 띄워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제게 부탁해야 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생겼습니다. 엄마가 본가가 있는 인천에서 상계동으로 빨리 넘어가야 할 일이 생긴 거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자가용을 타면 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아들!! 엄마가 상계동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 혹시 일 없으면 엄마 좀 데려다 줄래?!"
"아...일 있는데...어쩌지...에잇!! 아니다. 엄마 모셔드리고 다시 하지 뭐. 바쁘지만 어쩔 수 없지!"
"어?! 진짜? 그래 줄래?"

이렇게 엄마를 차에 태워서 상계동으로 넘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엄마가 저에게 고마워하는 상황이 됐죠.

마침내 작명권을 가져오다

 우리 딸 리예의 모습! 이름처럼 당당하게 여유있게 자라다오!

우리 딸 리예의 모습! 이름처럼 당당하게 여유있게 자라다오! ⓒ 이정수


"엄마! 우리 아기 이름 있잖아."
"내 새끼 이름은 내가 지어준다니까 그러네."
"엄마! 내가~ 엄마 새끼지? 내 새끼는 내 새끼지! 나도 처음 생기는 새낀데, 내 새끼 이름 나도 지어주고 싶은 '새끼'(엄마의 새끼인 날 뜻함)의 마음도 이해해 주세요."

엄마가 웃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이렇게 해서, 결국 엄마는 저에게 작명권을 허하셨고, 저는 아내에게 당당히 돌아가서 작명권을 받아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게 딸은 우리가 지은 '이리예'(성경에 나오는 '이레'에서 따온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 해 놓았다는 뜻입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히 여유 있게 살아달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라는 예쁜 이름을 얻었답니다.

* 이정수의 '소프라이즈' 3편으로 이어집니다.

아버지로서는 100점이지만, 남편으로서는 0점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곤 했던 우리 아버지. 열심히 일해서 가족은 지켰지만, 결국 외톨이가 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전 '결혼해도 연애시절처럼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2013년 10월 5일, 드디어 결혼했습니다. 확실히 결혼은 연애와는 다른 게 많더라고요. 심지어 결혼한 지 4개월만에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에 연애와 다른 결혼의 모습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몸도 정신도 혼자일 때보다 과부하가 많이 걸리더군요. 언제부턴가 점점 편한 것을 찾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갔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결국 그렇게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이건 아니다'라며 아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법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소(小)프라이즈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특별한 날만을 위한 서프라이즈(surprise)가 아닌 평소에 아내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이었죠. 그 소소한 실천을 글로 올리려 합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효과는 실로 대단하기에 다 함께 공유해서, 우리 모두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길 기원해봅니다. <방송인 이정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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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방송인 이정수는 KBS 공채 17기 개그맨으로 2002년 데뷔했다. <개그콘서트> 등에서 훈남 이미지에 특유의 유행어까지 더하며 데뷔 연도에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사랑과 전쟁>, 영화 <달콤한 거짓말> <신이 보낸 사람>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고, 최근엔 '이정수의 놀이 콘서트'의 기획과 진행을 맡아 문화기획자로까지 저변을 넓히고 있다.
이정수 소프라이즈 이리예 최윤영 오마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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