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김경익은 영화에서 김영호(설경구 분)에게 고문을 당하는 대학생 박명식 역을 맡았었다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김경익은 영화에서 김영호(설경구 분)에게 고문을 당하는 대학생 박명식 역을 맡았었다 ⓒ 이스트필름


무대작업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천형(天刑)입니다. 현실 너머를 엿본 자는 현실에 발붙일 수도,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저공비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에 날개가 녹을 것이고, 발을 땅에 대는 순간 유랑은 끝이 납니다.

28살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우연히 시작한 연극은 2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며 제 삶의 필연이 되었습니다. 길거리 포스터 부착부터 연기, 연출, 극작까지 다양한 작업 속에서 연극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객석에서 무대를 보지 않고,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저공비행의 풍경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배우 김경익 드림>

이제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무대 의상보다 더 화려하고 독특한 패션이 거리를 휘젓고 다니고, 연극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별다방(스타벅스)의 사람들은 쇼윈도 마네킹처럼 유리 앞에 앉아 행인들에게 자신을 '전시'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쥐고 있는 손바닥만한 전화기 속에는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많은 앱(App)들로 가득하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살아간다. 거대한 욕망의 용광로다.

'미친 짓'이라 말린다

 로버트 드 니로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 역할 소화를 위해 실제로 하루에 12시간을 택시 운전을 했다. 그의 택시 면허증 사진

로버트 드 니로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 역할 소화를 위해 실제로 하루에 12시간을 택시 운전을 했다. 그의 택시 면허증 사진 ⓒ en.wikipedia.org


이것도 충분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진짜 연기'를 시작하고 싶다고 물어본다. 배역에 '미쳐서' 영혼을 불사르는 열정의 시간을 꿈꾼다. 그렇게 자기만의 개성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한다. 그들이 조언을 구하면 하지 말라고 말린다. 왜냐하면 진짜 할 사람이면 내가 말린다고 그만두지 않는다. 그때 도와줘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연기자로 산다는 것은 불규칙적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일이며, 끝없는 기다림과 저임금의 고통, 4대 보험의 부재, 차비가 없어 밤거리를 걸어 집에 오는 '미친 짓'이다. 물론 속칭 '뜬' 배우들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한해 약 9000명 정도의 연기 관련 학생들이 졸업을 하는데 우리가 기억하는 연기자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당첨확률이 현저히 낮은 로또와 같다. 게다가 명당도 왕도도 없다. 오죽하면 레전드급 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뉴욕 예술대 졸업식에서 "졸업생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X됐습니다"(You made it. And you're f***ed!)라고 했겠나?!

그래도 이 길을 선택하려 한다면 우선 자신이 미쳤다고 인정해라. 미친 짓을 선택하는 사람이 바로 미친놈이다. 인정하라. 오죽 별나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는 직업을 택하려하겠는가? 큰 소리로 속 시원히 세상에 선포하라! '푸하하하!~ 이제부터 나는 미친놈이다!~~', 미친 연놈들이 못할 것이 뭐 있는가? '이제부터는 자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연기자의 광기, 이렇게 정의한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한 장면. 배우라는 직업에는 '피범벅이'의 열정과 냉정한 계산이 동시에 필요한 직업이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한 장면. 배우라는 직업에는 '피범벅이'의 열정과 냉정한 계산이 동시에 필요한 직업이다 ⓒ 폭스코리아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다. 연기라는 정신 병원에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입원시키진 않는다. 누구나 미쳤다고 소리 지를 순 있지만, 입원에 진짜 필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미친 짓이다.

미친 사람은 예쁜 척, 잘 생긴 척, 착한 척 하지 않는다. 뭐가 안 된다고 징징거리지도 않는다. 옆 사람이 나보다 잘 나간다고 질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미친' 일에 즐겁게 집중한다. 집요하게 파고든다.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미쳐도 곱게 미치라는 말이 있다. 연기자의 광기(madness)는 그냥 미친 짓이 아니라 곱게 미치는 짓이다. 미친 행동에 방향성도 없고 목적도 없고 자기 절제의 헌신이 없다면 그냥 '미친 널뛰기'와 다를 게 없다. 몇 번 뛰어보다가 잘 안되면 금방 포기한다.

연기자의 광기(미친 짓)는 자신의 관습적 일상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표현의 도구로 자신을 사용할 자격증이다.

이것은 허점 투성이의 평범한 한 인간이 감동이란 불가사의한 시간을 창조하는 원동력이다. 습관에 젖어 흘러가는 시간을 매순간 붙들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미친(?) 작업이다. 사랑을 욕정으로, 인간을 돈으로, 삶을 죽음으로 내모는 거대한 자본의 톱니바퀴의 심장을 찌르는 나무칼이 되는 일이다. 그래서 미친 짓이다.

그러니 곱게 미쳐라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1997년 선보였던 연극 <사랑의 힘으로> 출연 당시 모습.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뼈대로 재구성했던 작품이다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1997년 선보였던 연극 <사랑의 힘으로> 출연 당시 모습.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뼈대로 재구성했던 작품이다 ⓒ 김경익 제공


자신을 버리고 맡은 역할에 피와 뼈를 내어주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공간과 인간을 육화시키는 일이다. 어떨 때는 하늘 같이 넓다가도, 어떨 때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엄격한 외로운 선택들이다. 그렇게 연기자의 미친 짓은 스스로 통제 가능(method)하고 반복 가능한 의지의 결과물이다.

그래도 이 일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특별한 존재다. 당신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세속의 손익을 넘어선 그 곳을 향해 자신을 던지기 때문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미쳐도 곱게 미치자!

* 배우 김경익의 '무대에서 저공비행'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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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배우 김경익, 한국의 대표적인 햄릿 배우. 거목 이윤택의 연희단거리패에서 12년 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내공을 쌓았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 <박하사탕> <남극일기> <헨젤과 그레텔> 등에 출연했다.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김혜수 분)을 지키는 금이빨 보디가드, 빨찌산 역으로 친숙한 얼굴이기도 하다. 현재 극단 <진일보> 대표로 연극 <봄날은 간다> <바보 햄릿> <아리랑 랩소디> 등을 연출하는 등 배우 겸 연출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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