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뢰한>에서 거짓으로 여자에게 접근한 형사 역의 배우 김남길이 2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무뢰한> 개봉과 함께 칸 영화제 진출이라는 선물도 안았지만 김남길에겐 긴장의 연속이었다. 살인범의 애인에게 연정을 품은 형사, 대사도 얼마 없다. 게다가 연정의 대상인 룸살롱 마담 역이 전도연이다. 연기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녀 옆에 서는 게 우선 임무였고, 관객들을 설득해야 했다.

다행스럽게 칸 영화제 현장서 외신들의 반응은 좋았다. 지난달 2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남길은 이런 호의적 반응에 "아마 내 모습이 신선해서 그렇지 않을까? 기분은 좋지만 일단 한국 관객 분들이 인정해주셔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부터 보였다.

우리가 잊어왔던 사랑의 원형을 복기하다

장르적으로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무뢰한>은 거친 남성 영화라기보단 밀도 높은 사랑을 그린 작품이라는 게 김남길의 해석이었다. 상황에 대한 핑계를 대며 금방 달아올랐다 식어 버리는 요즘의 사랑에 대한 일침이라는 말이다. 김남길이 연기한 형사 정재곤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지만, 어느새 마음을 차지한 혜경(전도연 분)에게 흔들리는 자신을 직시한다.

"많은 남성들이 사랑하면서 핑계를 대고는 한다. '나 지금 힘드니까 알아줘! 이만큼 하는 것도 대단한 거야!' 이런 식인데 <무뢰한>을 통해 다른 표현에 도전하고 싶었다. 스스로 어색하다 느낄 정도로 힘을 빼고 감정을 절제했다. 사실 우리 세대만 해도 디지털 감성이 있는데 관객 분들이 여기에 나오는 아날로그 감성을 따라가실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서태지의 랩을 들려주면 뭐라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식인 거다.

나도 좀 그렇다. 지금 아이돌 노래를 들으면 뭔 소린지 잘 모르겠더라(웃음). 아련하게 1990년대에 대한 향수도 있고, 우리 문화는 그때에 멈춰있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삐삐를 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곤 했지(웃음). 소중한 사람들과 연락할 땐 카카오톡 같은 것도 쓰지 않았다. 주변에서 왜 안 쓰냐며 뭐라 하더라! 물론 지금은 쓰는데 좋은 감정을 전할 땐 뭔가 그 값어치를 제대로 지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다."

시대가 급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본질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무뢰한>을 본 관객들이 담배 한 대 피거나 소주 한 잔 하면서 사랑에 대해 얘기하게 된다면 성공!"이라며 "인스턴트 같은 사랑이 아닌 깊은 사랑의 맛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보탰다.

연기에 대해 방황했던 때..."선배들 덕에 마음 다잡았다"

 영화 <무뢰한>에서 거짓으로 여자에게 접근한 형사 역의 배우 김남길이 2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모든 배우들이 작품에 들어가기까지 결국 선택받는 입장에 놓인다지만 정말 원하는 작품이 있다면 김남길처럼 적극적이 돼 보는 것도 좋겠다. 본래 이정재가 정재곤 역에 캐스팅 됐다가 어깨 부상으로 하차한 상황에 김남길은 적극적으로 제작사에 의지를 보였다. "제목만 들었을 땐 <우뢰매>? 이러면서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싶었고, 보자마자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게 그의 작업 방식이다. 200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여러 드라마를 찍으면서 늘 연기 변신을 꿈꿨고, 깊이 있는 내면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나서서 찾아 헤매기도 했다. 무작정 밝은 캐릭터보다는 뭔가 우울하면서 아픔을 간직한 역할을 자처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던 작가 분이 내가 환하게 웃어도 눈은 슬퍼 보인다는 말을 했다. 너무 한쪽에 치우친 연기를 한 거지. 그때가 드라마 <굿바이 솔로>(2006)를 끝낸 직후였다. 몰입하느라 현장에서도 기를 잡고 있으니 주변에서 왜 그렇게 현장에서 난리 치냐는 말이 들리더라.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주변 스태프가 힘들어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땐 내가 일상에서도 캐릭터의 감정을 잘 잡고 있어야 연기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부터 탈피해야 했다. 진짜 내 현장으로 만들려면 편안하게 연기해야 하더라.

그래서 <무뢰한>에서도 뭔가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뭘 하려고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내가 내 캐릭터를 설명하지 않아도 다른 캐릭터들이 정재곤을 설명해주더라. 여기에 내가 과거에 겪었던 비슷한 사랑 경험을 뽑아내려 했다. 누구나 해봤을 법한 그 사랑의 감정이었다."

그만큼 김남길은 자신의 연기관을 다져가며 성장 중이었다. 위기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매 작품마다 깨진다"며 김남길은 "<해적>을 찍을 땐 연기를 그만 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는 사연을 전했다.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연기를 하는데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 눈치를 보며 연기하는 자신을 발견한 뒤 자괴감에 빠졌던 것이다.

 영화 <무뢰한>에서 거짓으로 여자에게 접근한 형사 역의 배우 김남길이 2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연기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현장에서 막힌 적이 없었는데 그때 계속 뭔가 막혔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두렵더라. 근데 천하의 전도연 누나도 현장에서 매번 묻는다. 본인이 어땠냐면서 말이다. 여튼 <해적> 땐 김혜수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름 구조 요청을 한 거지. 누나가 '지금 네가 치열하게 하는 거 알고 있다. 너도 그걸 알고 있다면 나쁜 상황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래서 난 선배들이 좋다! 우리가 그 분들을 보고 꿈을 키워오지 않았나. 선배들이 잘 돼야 한다. 그 분들의 존재 자체가 감사하다."

여전히 김남길은 좋은 작품에 목마르다. "<무뢰한>을 통해 연기의 재미를 새삼 깨달았다"며 그는 더욱 치열해질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든 영화에서든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며 그는 "날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만큼 작품을 빛낼 좋은 배우로 걸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뢰한>을 예로 든다면 일단 김남길은 성공적이다.

김남길 무뢰한 전도연 오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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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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