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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게임 <내 꿈은 정규직>의 시작 화면이다.
▲ <내 꿈은 정규직>의 시작 화면 스마트폰 게임 <내 꿈은 정규직>의 시작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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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너무' 닮아서 문제인 게임이 있다.

비디오 게임의 역사는 어느새 40년을 훌쩍 넘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비디오 게임은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초창기에는 전용기기, 컴퓨터 등 게임을 즐기기 위한 도구나 공간이 별도로 필요했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게임은 스마트폰의 탄생과 함께 우리의 주머니 속 일상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지난 4월, 우리의 현실을 너무나도 닮은 스마트폰 게임 '내 꿈은 정규직'이 출시되었다. <내 꿈은 정규직>은 발매된 지 한 달 만에 다운로드수 50만 건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SNS에서도 이 독특한 게임에 대한 글들이 넘쳐난다.

시작부터 게임 오버... '인턴'되기도 만만치 않다

인턴이라도 하고 싶다….
▲ 시작부터 게임 오버 인턴이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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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취업준비생)이 되어 회사에 합격하고, 사장까지 승진하는 소위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이 <내 꿈은 정규직>의 목표다. 하지만 각 직급에 도달할 때마다 승진 확률이 점점 낮아진다. 지난해에 유행한 스마트폰 게임 <살아남아라! 개복치>의 돌연사처럼 수많은 정리해고 사유까지 존재해 사장까지 승진하기란 쉽지 않다(관련 기사 : 돌연사한 개복치, SNS에서 사인 논란... 왜?).

돈을 모아 스펙을 쌓으면 승진 확률이 올라가지만, 학자금 대출금까지 빚지고 있는 게임 속 주인공에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원금을 갚기 전까지 계속 이자를 갚아야만 한다). 쥐꼬리만 한 퇴직금과 쥐꼬리의 때만 한 월급으로 버텨야 한다.

낮은 확률을 뚫고 인턴으로 뽑혀도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 당한다. 시작조차 하지 못했는데 게임 오버라니 어이가 없지만 이 사회의 취준생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다.

취업준비생 박대현(26)씨는 지난해에 한 대기업에서 전환직 인턴으로 근무했다. 정규직 전환만을 바라보고 꿋꿋이 일했지만, 1년 동안의 노력의 대가로 돌아온 것은 인턴 계약 해지였다. <내 꿈은 정규직>이 출시된 후, 박대현씨도 이 게임을 핸드폰에 설치했다. 박씨는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현실을 웃프게(웃기면서도 슬프게) 구현해 놓아서 재미있다"고 게임을 평했다.

게임 속의 주인공이 해고를 당하고 다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듯이, 박씨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스펙을 쌓기 위해 스터디 모임에 가입했고,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는 중이다. "실패에 일희일비할 나이는 아닌 것 같다"며 취업전선에 다시 뛰어드는 박대현씨의 앞에는, 게임 속 주인공처럼 몇 번의 '다시하기'가 있을까.

박대현씨의 친구 양형근(26)씨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새내기' 취준생이다. 취업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변 친구들이 즐기던 <내 꿈은 정규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게임을 시작한 지 3일만에 "게임에서 이렇게까지 해야되냐"며 게임을 삭제했다. "너무 현실적으로 만들어서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 꿈은 정규직>은 기업의 생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부하 직원일 때는 상사의 경·조사비를 꼬박꼬박 내면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직급이 올라가면 승진을 위해 부하 직원들에게 산더미 같은 일을 넘겨줘야 한다. 때로는 실수를 한 부하직원을 호되게 꾸짖어야만 하며, 연차 휴가를 내겠다는 부하직원을 나무란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주인공의 모습도 변한다. 과로로 눈이 충혈 되고, 스트레스로 점점 머리가 벗겨지더니 결국에는 배까지 나온다. 양형근씨는 "내 미래를 보는 듯해서 불쾌해졌다"고 말했다. 결국 바늘구멍을 뚫는 낙타처럼 취업문을 통과해 마주하는 모습은, 멋진 양복을 입은 <킹스맨>의 콜린 퍼스가 아니라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우리 주변의 흔한 직장인이다.

깨알 같은 '꿀잼' 요소, 이 시대 모든 '미생'을 품다

<내 꿈은 정규직>에는 노예부터 상류층까지의 계급이 존재한다. 계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돈이 투여되기도 한다.
▲ 계급 시스템 <내 꿈은 정규직>에는 노예부터 상류층까지의 계급이 존재한다. 계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돈이 투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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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근씨는 "게임의 계급 시스템도 너무 현실적이라 서러워진다"고 평했다. <내 꿈은 정규직>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가장 낮은 계급에서 시작해, 차를 사거나 집을 사면 계급이 올라간다. 가장 낮은 계급은 취직을 하면 인턴부터 시작하지만, 계급이 올라갈수록 시작하는 직급도 높아진다. 사장 아들을 부장에 앉히는 격이다(현재는 패치를 통해 시작 직급이 아니라 승진 확률이 상승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계급 이름도 서럽다. 노예-천민-서민 등이다. 게임 속에서 상류층이 되기 위해서는 '알바'로 추가 수입을 얻어야 하며, 플레이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그것이 싫다면 현금 결제로 게임머니를 구매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게임 속에서도 돈 많은 사람이 쉽게 성공한다. 소위 '금수저'들이 편한 인생을 사는 반면, 서민의 자녀들은 죽어라 노력해야 성공의 문턱에 다다를 수 있는 현실과 닮아있다. 이쯤 되면 게임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많은 사람이 <내 꿈은 정규직>을 즐기고 있다. 과연 <내 꿈은 정규직>의 흥행 요인은 무엇일까? 양형근씨는 "비록 게임이지만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비록 '미생'이지만, 현실을 닮은 게임 속에서나마 성공을 이루는 것이다. 쉽게 익힐 수 있는 게임 방법과 곳곳에 숨은 깨알 같은 풍자 또한 '꿀잼'(꿀+재미)이다. 땅콩 회항, 비타 500 등 최근의 사건들을 희화화한 이벤트들은 더욱 큰 재미를 주고 있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은, 즐겁게 게임을 즐기다가도 한순간에 괴롭고 복잡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김중헌(26)씨는 "'인생은 운이다', '너네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각박한 현실을 비꼬는 듯하다"고 게임을 평가했다.

<내 꿈은 정규직>은 제작자가 직장에서 해고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 꿈은 정규직>은 현실을 모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현실을 잊고 게임을 즐기라고 강요하거나, 현실비판에만 치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 모두를 포괄하는 게임이다. 때로는 게임을 즐기고, 때로는 풍자와 해학에 웃고, 때로는 각박한 현실을 닮은 모습에 슬퍼하는 모든 것이 게임의 목적이다. <내 꿈은 정규직>의 일부이자, 인생의 일부이다.

드라마 <미생>의 성공과 더불어 88만원 세대, 3포세대 등 취업난과 여러 어려움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내 꿈은 정규직>은 이들의 애환을 놓치지 않았다. 제목은 꿈이 '정규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규직을 바라보는 계약직이나 취준생들만을 위한 게임은 아니다. <내 꿈은 정규직>은 이 시대의 미생,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스마트폰, #모바일게임, #내꿈은정규직, #내 꿈은 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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